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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Jan 22. 2024

하루키와 굴튀김

소소한 오늘의 밥상

"음식의 맛은 추억의 시간으로 이끄는 타임머신이다."



몇 해 전 트위터를 하면서 친애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팔로워를 하게 되었다. 매일 올라오는 하루키의 피드는 늘 설레게 했다. 어느 날 굴튀김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하루키는 바삭한 굴튀김과 얇게 채 썬 양배추에 맥주를 마시는 건 행복이라고 했다. 굴튀김을 좋아하는 나는 하루키와 굴튀김을 먹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야호, 하루키 작가님을 만나면 한마디는 할 수 있겠는걸.'

"하루키 작가님 저도 굴튀김을 좋아해요. 하루키 님은 처음으로 굴튀김 먹었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저는요, 지금도 기억해요. 저랑 얘기하면서 굴튀김 드실래요?" 작업멘트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하루키를 존경하는 순수한 팬심 100%이다.


내가 굴튀김을 좋아하게 된 건 어린 시절 엄마 친구 영숙이 이모 식당에서 먹어본 놀라운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서이다. 새로운 음식을 처음 먹어본 놀라움, 싫어하는 음식의 반전된 맛을 혀 끝에서 느껴보았을 때의 경이로움?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는 동네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전라도식 손맛으로 소문이 난 맛있는 음식점이었다. 하지만 막내딸의 입맛을 추기는 쉽지 않았다. 나 굴을 먹지 못했다. 생굴의 맛과 향이 열 살의 나에겐 버거웠다. 엄마의 생굴이 들어간 김치는 손님들과 주변 사람의 칭송이 자자했다. 를 제외한 모든 이들과 가족은 생굴김치맛을 공유했다. 엄마는 다수의 입맛으로 김장 김치에도 굴을 넣었다. 나는 굴이 들어간 김장 김치를 먹지 못했다.


초겨울이 다가오는 김장철, 400 포기 김장에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로 김장을 도우러 새벽부터 뒷마당에 모였다. 이틀에 걸쳐 배추를 씻고 절구고 헹구고 양념을 준비하며 고된 김장을 완성했다. 수고한 친구들을 위해 엄마는 맛있게 삶은 수육에 굴김치를 한 상  차려 내왔다. 이른 새벽부터 김장에 힘들었던 터라 수고한 동네분들은 맛있게 먹었다. 김장으로 외출을 금지당했던 언니들은 끝난 김장에 환호성을 지르며  외출 준비로  바쁘게 먹었다. 왁자지껄 즐거운 분위기에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나만 젓가락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의 친구 영숙이 이모수육에 굴을 털어낸 김치를 올려주었다. 그리고 걱정 어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에게 영숙이 이모는 가게에 한번 들리라고 얘기를 다.



며칠 후, 엄마는 를 데리고 영숙이 이모 가게에 갔다. 반갑게 맞이하는 영숙이 이모는 콜라를 꺼내주고, 엄마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영숙이 이모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낯선 가게를 두리번거리고 콜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30분쯤 흘렀을까? 고소한 냄새가 주방에서 풍겨 왔다. 조금 후에 엄마와 영숙이 이모접시를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하얀 접시에는 수북이 쌓인 굴튀김과 채 썬 양배추가 담겨 있었다. 영숙이 이모는 채 썬 양배추에 케첩을 듬뿍 뿌려 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아줌마의 큰 딸 영숙이 언니의 동생들도 생굴을 못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굴을 익혀서 굴튀김으로 해주면 잘 먹는다는 말을 하면서 어서 먹어보라며 굴튀김을 집어서 입에 넣어 주었다. 정말 맛이 좋았다. 나를 울컥하게 하는 바다향이라고 일컫 굴 특유의 향이 나지 않았다. 굴의 말캉함은 뛰김으로 씹는 식감이 단단하고 맛이 좋았으며, 그동안 먹어본 튀김의 맛에서는 먹어 본 적 없는 맛이 났다! '아, 이런 맛이 굴맛이라는 건가?' 굴튀김을 잘 먹는 나를 엄마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엄마도 굴튀김을 처음 먹어봤던 것이다. 맛있게 먹는 나를 보며 엄마는 좋아했고, 영숙이 이모 흐뭇해했다.


그 후로 엄마는 김장철이 되면 굴튀김을 자주 밥상에 올려 주었고, 굴이 안 들어간 김치를 따로 담아 주었다. 언니들도 굴튀김이 맛있다며 잘 먹었다. 어린 시절 내 마음을 헤아려준 영숙이 이모가 참 고마워서 가끔 생각이 난다. 지금은 소식이 끊겼지만,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시길 바란다. 그렇게 굴튀김은 나를 이해해 준 첫 번째 음식으로 남아있다.

오늘 채 썬 양배추와 굴튀김, 그리고 맥주 한 캔을  따르며 하루키 작가님이 느꼈을 행복감에 젖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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