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연 Apr 21. 2024

뚜비집사는 이생의 마지막

중년의 일상


"엄마, 우리도 고양이 키워요~ 고양이 키우고 싶어요! 고양이 밥은 내가 주고, 똥도 내가  치울게요! 준우네 고양이 봤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엄마도 분명 좋아하게 될 거예요. 제발요, 엄마~"

"................"

고양이 입양에 대한 아이의 앙탈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아이 친구집에 새로 들인 고양이가 너무 사랑스럽다며 계속 조르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앙탈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둘째 언니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30년 전부터 강아지를 키워왔다. 지금은 14살 된 뚜비(언니네 서열 2순위 슈나우져)를 봉양하고 있다.


"언니~잘 지내? 모 하고 있어?"

"응, 총각무 담으려고 양념 준비하고 있어."

"총각무 담는구나, 언니 총각무는 정말 맛있어. 먹어 본 지 오래됐다. 언니야, 나도 주라~호호호"

"그래. 알았어. 그런데, 어쩐 일이니?"

"민호 계속 고양이를 키우자고 졸라 데고 있어. 절친이 고양이를 입양했는데 너무 이쁘다며 우리도 입양하자고 요즘 앙탈이 점점 심해져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애~애~~ 시작도 하지 마라. 처음엔 애들이 다 하겠다고 하는 거 한 달도 못 가서 다 니 몫이야. 너도 나  봤잖니. 어휴~너는 일도 바쁜데, 힘들어.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렴. 그리고 정말 키우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서 뚜비랑 놀라고 , 그리고 요즘 고양이카페도 많이 있다더라. 거기를 데리고 가려무나."


언니는 노견의 애로사항이 많다며 같이 늙어감에 대한 서글픔에 안타까을 전하며, 애초에 시작하지 말라는 충고를 거듭했다. 

"맞아, 언니~ 나도 자신 없어. 언니 말대로 고양이 카페를 자주 데려가서 놀려야겠어."

나는 이생에서 동물 집사는 안 한다는 소신을 히며 2시간의 전화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후 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몇 년째 망설였던  가족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 큰아이의 결혼 날짜가 잡히면서  더는 미룰 수가 없다고 다. 남의 식구가 되기 전에 오붓하게 가족여행을 간다며 한껏 흥분된 목소리에 행복감이 절절이 묻어났다.


"동생아~네가 매번 두 다리 튼튼할 때 여행 다니라고 했잖니! 그래서 용기를 냈어.  큰애 결혼 하면 남의 식구 되잖아.  결혼하기 전에 우리끼리 가족여행 다녀오려고. 형부랑 애들도 그러자고 하더라고. 휴가 날짜를 다 같이 맞추었어. 큰애가 벌써 티켓팅을 했다네. 호호호"

 "어머 어머 언니~너무 잘됐다. 잘했어! 몇 년 전부터 벼루 더니 드디어 이루어졌네. 그래 다녀와~ 큰애가 기특하다. 결혼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너무 잘됐다. 축하해!"


그리고는 애교 섞인 톤으로 말씨를 바꾼 언니는 꿀을 뚝뚝 떨어드리면서  말을 꺼냈다.


"응, 고마워. 그런데, 뚜비말이야.. 요즘 개호텔이 말이 많아서 애들이 맡기겠대. 데려갈 수도 없고, 애들하고 의논을 했는데, 우리 뚜비가 이모를 좋아하잖. 막내이모집에 맞기 자네. 마침 동물 키우고 싶다는 민호이에게도 체험 삼아 뚜비랑 지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밥도 주고 똥도 치우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어! 그래서 말인데, 너희 집에서 3일만 아주라. 언니 10년 만에 가족여행 가는데 도와주렴."

"..............."

"아...... 언니..... 언니... 잠시만, 뚜비를 우리 집에서 3일 데리고 있으라고?"

"응~마침 민호도 동물 키우고 싶다고 했잖니. 체험 삼아 3일만 키워 보라고해. 민호 잘 먹는 제주도 옥돔 사다 줄게. 응응? 큰애 결혼 하기 전에 가족여행 좀 다녀오자.. 응응?"

"................"

"그 그래.... 할 수 없지. 뚜비가 괜찮으려나?"

"괜찮아! 내가 뚜비한테 얘기했어. 뚜비도 이모네 집이 좋다고 하네!"

".............."

"뚜비랑 이야기도 해?"

"그럼~우린 대화가 통해!"

".............."

"뚜비 이랑 물건 챙겨 갈 테니, 아무 신경 쓸 것 없어! 걱정 마. 우리 뚜비 알잖아. 조용하고 눈치 백 단에, 얌전한 거. 호호호"

"응응.. 알았어. 여행 잘 다녀와"

나는 나의 의견과는 전혀 상관없이 뚜비 집사로 내정이 되었다.


언니는 여행에 필요한 쇼핑을 하느라 즐거워했다. 선글라스와 모자는 협찬 요청을 해왔다.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 언니의 들뜬 기분에 호응을 해주며. 의상과 여행가방 쌓기에 코칭을 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D-Day가 되었다.

"따르릉~~~ 따르릉~~"

9시가 되었을 때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도착했어. 지금 올라갈게. 왈왈~"

"............"

"띵동 띵동~"

문 열자마자 언니와 형부, 조카가 들어왔다. 우리 집에 세 식구가 함께 온건 처음이다. '뚜비 데려다주는데 무슨 가족 출동 이람?'

오랜만에 우리 집에 방문한 언니네 가족은 안부를 묻기도 전에 뚜비의 짐을 풀었다. 커다란 케리어 2개에 한가득 짐을 챙겨 왔다. 뚜비가 우리 집에 둥지를 틀러 온 것 같다.  언니는 케리어를 열어젖히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언니네 집에서 익숙하게 보아 왔던 뚜비의 물건들이 그대로 컨트롤 C가 되어 우리 집으로 컨트롤 V가 된 것이다. 뚜비의 집, 이불, 방석, 인형, 장난감, 밥그릇, 식전 간식, 식후 간식, 이런저런 영양제, 옷가지를 담아 이민용 케리어에 가득 싣고 온 짐들을 모두 꺼냈다. 10분 만에 우리 집이 개 키우는 집으로 변신했다. 뚜비의 러브하우스가 완성된 것이다.

"............."

조카는 뚜비를 꼭 끌어안고 오빠가 잘 다녀올 테니 이모네 집에 3일만 있으라고 쓰다듬으며 연신 뚜비와 교감을 했다. '조카야~주머니라도 넣어 가렴'

30분도 안되어, 언니네 가족은 여행짐을 챙겨 공항에 간다며 서둘러 떠나갔다.



"..............."

뚜비와 나는 처음으로 단 둘이 있게 된 것이다.

뚜비둘이 있는 시간이 너무 어색하다.

"뚜비야~~~~"

"............."

10년 넘게 언니네 집에서 보아왔던 뚜비가 우리 집에 오다니 1도 생각 안 해본 비현실 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뚜비 집사가  것이다.

"뚜비야 반가워. 이모네 집 처음이지? 조금 있으면 민호 학교에서 오니까 조금만 기다려."

"...... 왈왈"

뚜비는 집주인의 안내도 필요 없이 여기저기 탐색시작했다. 뚜비를  뒤 따라가며 집사로써 안내를 해주었다. 뚜비의 사료와 영양제를 챙겨 주고 그릇에 물을 부었다. 뚜비는 긴장했는지 물을 붓자마자 순식간에 마셨다. 나도 냉장고에서 차가운 보리차를 꺼내 한숨에 마셨다. 다소 칠한  이모를  뚜비는 집에서 가져온 포근한 방석에 쪼르르 가서 앉는다. 혹시나 모를 개털을 신경 쓸까 봐 언니는 말끔히 미용을 해서 데려왔다. 슈나우져는 미용을 하면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10여 년 전 뚜비의 모습과 똑같다. "아~운동부족으로 배가 좀 많이 나온 건 나와 비슷하다."


10여 년 전에 뚜비와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외부에 일이 있어서 언니네 아이를 한나절 맡기고 외출을 나간 날이었다. 2시간쯤 지나서 언니에게서 급한 소리로 전화가 왔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뚜비가 아이 팔을 물었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단걸음에 집에 왔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여린 아이의 팔에 선명한 이빨 자국에 피가 났다.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주사와 함께 두꺼운 붕대를 감아 주었다. 3주는 병원을 다녔다. 나는 자책과 함께 괘씸한 뚜비를 질책했다. 소리를 지르는 내 목소리에 뚜비는 꼬리를 내리며 나를 피해 다녔고 나는 그런 뚜비를 쫓아다니며 나무랐다. 내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뚜비는 억울하다며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아이가 먼저 자기 눈을 찔러댔다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는 게 그만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다고, 반성한다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ㅠㅠ


그 후로 언니네 집에 가면 뚜비는 나를 피했다. 아이와 놀아 주는 것도 조심했다.  아이를 보면 급살스럽게 흔들 어데던 꼬리는 멈추었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그런 뚜비에게 언니는 기죽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던 나를 되려 나무랐다. 오죽하면 뚜비가 그랬겠냐고, 쌍방과실 이라며 뚜비의 눈물 흘린 기를 연신 해주었다.

 10여 년이 다된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나는 뚜비와의 그 앙금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뚜비야~민호 아기였을 때 팔 물었던 거 기억하니? 그때 민호 팔에 피나고, 내가 너 엄청 혼냈잖아~"

그렇게 말하며 뚜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으나 뚜비는 눈길을 어김없이 피했다. 알아들은 것이다.

"뚜비야~다 예전 일이고 민호는 상처 없이 잘 았어. 이젠 그만 미안해해도 돼! 우리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자. 응?"

".......... 왈왈"

뚜비는 알았다는 듯이 내 팔을 들어 올려 자신의 머리 위로 내 손을 올렸다. 뚜비도 앙금을 풀고 싶었나 보다. ' 영특한 뚜비~♡'


그렇게 뚜비와 오래된 앙금을 풀었다. 그리고 아이가 하교를 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뚜비는 지붕이라도 뚫고 나갈 듯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처음으로 집에 동물인 들인 아이는 뚜비를 안고 함께 펄쩍펄쩍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드디어 뚜비와 3일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뚜비의 장점은 시끄럽게 잘 짖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방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참 예쁘다. 혼자 보기 아까운 사진들이 인스타에 쏟아지는지 알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팍에 따뜻하고 말랑한 뚜비가 이불속에  파고 들어와 자고 있다. 이런 따뜻한 온기는 사람과는 또 다른 동물만이 줄 수 있는 교감인 것 같다. 이불을 정리하고  뚜비의 물과 사료를 챙겨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뚜비가 심심해할까 봐 인형도 흔들어 준다. 목욕은 안 해도 된다기에 고난도 목욕은 안 시켰다. 심심해하면 간식을 꺼내 장난치며 하나씩 주었다. 간식을 바라보며 뚜비는 할 수 있는 애교를 뽐냈다. 그리고는 놀아 준 것이 피곤한 듯 방석에 가서 잠이 든다. 나는 의자에 앉아 일을 하며 서로의 시간을 조용히 보냈다. 아이가 집에 오면 또다시 간식을 주며 뚜비의 애교를 만끽하며 놀아주었다. 아이가 뚜비와 놀아 주는 것 인지, 뚜비가 아이와 놀아주는 것 인지는 구분이 안 가지만 둘은 그렇게 즐거워한다. 저녁을 먹은 후 밤 산책을 나갔다. 밤에 개와 함께 산책을 나가다니, 난생처음 해보는 일탈이다. 밤공기의 상쾌함을 새삼스레 맡으며 동내 주변을 걷는다. 낮에는 볼 수 없는 밤 산책을 나온 펫 이웃들과 짧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밤바람의 묘미를 누려본다.


하지만 생각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낯선 환경에 긴장한  뚜비의 똥꼬가 막힌 것이다. 변비가 생긴 것이다. 산책을 나가서 1시간을 돌아다녀도 낯선 동네의 냄새에 뚜비의 똥꼬는 열리지 않았다. 연신 영상통화를 걸어오는 언니네 가족은 온통 뚜비의 똥꼬 안부 확인이었다. 

'그렇게 불안하면 데려가시지 그러셨어요....'

"간식을 너무 많이 준거 아니니? 수돗물 주지 말고, 꼭 정수기 생수로 주고, 갈색통에 있는 유산균 영양제에 사료를 섞어서 주렴."

뚜비가 좋아하는 간식을 너무 과하게 준 것이 문제였다. 낯선 환경에 불안해할까 봐 간식을 계속 준 것이 변비를 일으킨 것이다. 3일을 뚜비의 똥꼬 걱정을 하며 보냈다. 밤늦도록 동네를 돌아다녀도 똥꼬는 열리지 않았다. 산책을 하며 개의 똥꼬만 쳐다보며 걷는 내가 좀 난처했다. 걱정하는 나를 위로 하 듯 아침에 일어나면 어느새 내 품에 파고들어 자고 있다. '사랑스러운 뚜비~" 이래서 깐깐한 언니가 정을 주며 키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3일째 되는 날 언니네는 공항에 도착했다며 영상 전화를 걸어왔다. 1년을 통틀어 통화한 시간보다 이번 3일간의 통화 횟수가 5배나 다. 영상통화를 하며 뚜비와 대화를 하는 언니네 가족은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언니네 가족을 바라보고 있자니 재미있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뚜비야~ 엄마 금방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오빠 바꿔줄게!, 뚜비야 오빠 지금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왈왈~~"

언니네 가족은 돌아가면서 뚜비와 통화를 했다. 가슴 절절한 가족 상봉의 영상통화 장면이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뚜비의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뚜비야~ 살다 보니 이모네 집에도 와보고 좋다. 그렇지? 지금 엄마아빠랑 언니오빠들 온다니까, 집에 갈 짐 챙기자. 이모가 사준 간식 집에 가서 잘 먹어~. 이모가 다음 주에 놀러 갈게!"

"왈왈!"


나는 뚜비의 이민 가방을 꺼내어 빠짐없이 짐을 챙겼다. 그런데, 밥그릇을 씻으러 화장실에 잠시 다녀온 사이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드디어 뚜비의 똥꼬가 열린 것이다. 응아와 쉬를 한 바가지 했다.

뚜비는 나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뒤로 숨었다.

"어머, 뚜비야, 드디어 응아 했어? 아이고, 잘했네~~ 뚜비 이쁘다, 잘했어. 수고했어~"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언니~ 드디어 뚜비가 응아 했어, 쉬도 한 바가지 했네. 집에 간다니까 긴장이 풀렸나 봐. 호호호"

"어머~다행이다. 뚜비가 이모네서 눈치를 받았나? 변비가 없는 앤 데.. 참 이상하네"

"............"

언니네 가족은 오자마자 뚜비를 안고 감격의 회후를 했다. 뚜비는 오빠품에 안겨서는 한숨을 쉬며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옛말에 애 봐준 공은 없다더니... '지금은 개 봐준 공은 1도 없는 것 같네."

뚜비는 3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가서 2일에 걸쳐 응아와 쉬를 했다고 한다. 낯선 이모네서 3일을 산다는 건 뚜비에게도 힘들었던 여행이었을 것이다.


나는 청소기를 돌리며 아이에게 말했다. "아들~미안한데, 엄마는 이생에서 뚜비 집사 3일로 충분한 것 같아. 고양이와 강아지와는 같이 못 살겠어. 그냥 고양이 카페랑 애견카페 가서 2시간씩 놀다 오자구."

"아니야! 엄마! 괜찮아! 나도 뚜비랑 지내보니 게임도 제대로 못하고, 조금 힘들더라고. 그냥  안 키워도 될 것 같아. 준우네 가서 고양이랑 놀다 올게"

"오우~ 정말? 아들 고마워!"


내 생에 3일간의 뚜비 집사를 마무리했다. 동물이 줄 수 있는 교감을 느껴본 다 시 없을 이생의 3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언니네 가족이 모두 떠나는 여행을 추천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호호호!


작가의 이전글 봄맞이 대청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