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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축사 다시 해도 될까요?

길모퉁이 브런치카페

by Bling Bling 삐삐 Feb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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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졸업식 시즌이 왔다.

어느덧 6년의 초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빛나는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6년 전 입학식날이 엊그제처럼 눈에 선한데, 벌써 졸업이라니 짧고도 긴 여정이었다. 코 흘리게 꼬맹이에서 사춘기티를 내는 청소년으로 성장을 하고 있다. 기특하면서 신기하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희로애락의 그래프를 올렸다 내린다.


"따르릉따르릉"

학교에서 교무부장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위원장님~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호호호"

"네! 선생님~안녕하세요, 방학 잘 보내셨어요? 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호호호"

"벌써 다음주가 졸업입니다. 위원장님~그동안 애 많이 쓰셨습니다. 늘 감사했습니다.

"어머나, 별말씀을요. 선생님이 애써주시는 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호호호. 선생님이 학교에 남아주셔서 든든합니다. 호호호"

"아, 네. 호호호. 주호는 중학교에 가서도 잘할 거예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호호호"

"위원장님~ 말씀드릴 게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졸업식에서 축사를 해주셔야 합니다."

"네? 졸업식 축사를 해야 한다고요?"

"네! 위원장님이 하시는 것이 관례입니다."

"........................"

"어.. 선생님, 제가 해본 적이 없어서요.. 떨려서 어떻게 하죠?"

"위원장님은 잘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하실 수 있는 자료 이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그럼 졸업식날 뵙겠습니다."

"아! 네.........."

그렇게 전화통화는 종료되었고, 나는 한동안 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어떤 통화를 한 거지? 음... 지금 내가 졸업식축사를 해야 한다는 거지? 음.... 졸업식축사라.... 졸업식 강당에 올라서서 축사를 하라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


브런치 글 이미지 1

6년 동안 애써서 학교일을 도왔던 나에게 주어진 명예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어떻게 해야 ... 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 앞에서나 두근거릴 심장이 집안에서  마구 뛰어다닌다. 나대지 말자! 심장아.....


돌이켜 생각해 보니 6년 전 유치원 졸업식 때는 학부모공로상을 받았다. 아이의 졸업장과 함께 유치원에 도움을 주었던 학부모들 몇몇에게 주는 고움의 표시였다. 유치원 동기 엄마와 나는 공로상을 받으지난 3년 동안 우리의 시간과 노력이 녹아있음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6년 동안 불가피한 3번의 불참 이외에 모든 행사에 참석했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녹색어머니회, 급식모니터링, 도서관봉사, 연례행사, 월례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다. 그러면서 학교에 오는 학부모들과 자연스레 친분이 쌓아 생각이 잘 맞는 엄마들과는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공유했다. 그렇게 학년이 올라가니 자연스레 추천을 받아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나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했다. 다들 맞벌이로 육아에 바쁜 학부모 대신해 누군가는 학교의 일손을 보태야 하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초'중등교육법] 및 [초'중등교육법시행령] 등에 근거하여 설치 운영하는 법정 위원회 기구입니다. 학교 운영과 관련된 의사결정 단계에 학부모'교원 및 지역 인사가 참여함으로써 학교 정책 결정의 민주성'합리성'효율성을 확보해 학교 교육의 목표 달성에 이바지하기 위한 집단 의사결정(심의'자문) 기구입니다. 국공립 및 사립 초중고, 특수학교에서는 반드시 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운영해야 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원고를 작성했다. 몇 번을 고쳐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안녕하십니까? 본교 운영위원장 000입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선생님, 학부모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00 초등학교 50회 졸업생 여러분, 오늘의 뜻깊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오늘은 00 초등학교의 50회 졸업식입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의 성장과 노력을 축하하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자 합니다.


"착하고 슬기로우며 튼튼하게 자라자"라는 교훈 아래, 여러분은 00 초등학교에서 소중한 시간을 6년 동안 보냈습니다. 이 교훈은 여러분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착하고 예의 바르며, 슬기롭고 지혜롭게, 그리고 건강을 중요시하며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 나갔고,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힘든 시기를 이겨낸 여러분들이 정말 대견하고 기특합니다.


졸업생 여러분, 앞으로 맞이할 중학교 생활은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과목을 배우며, 여러분만의 꿈을 키워갈 것입니다. 때로는 어려움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강해지고 성장할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여러분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선생님께 꼭 의논하시길 바랍니다. 항상 여러분을 믿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가족, 친구, 그리고 여러분을 가르친 선생님들이 여러분의 성공을 기원하며 뒷받침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서로를 지지하고 돕는 친구로서의 우정의 가치를 잊지 말아 주세요.


이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꿈을 향해 끊임없이 한 걸음 한 걸음을 밟아 나가면, 성공과 성취의 기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시 한 편을 준비했습니다.     


- 나태주 시인     


제목- 다시 중학생에게     


사람이 길을 가다 보면

버스를 놓칠 때가 있단다.


잘못한 일도 없이

버스를 놓치듯

힘든 일 당할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아이야

잊지 말거라.     


다음에도 버스는 오고

그다음에 오는 버스가 때로는

더 좋을 수가 있다는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야

너 자신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너 자신임을 잊지 말아라.     


마지막으로 50회 00 초등학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졸업생 여러분의 미래에 축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내려오는데, 아이의 친한 친구들이 환호성을 보내 주었다.

"어머니, 아름다우세요"

"주호어머니! 사랑합니다!"

"짝짝짝~"

'아이고, 귀여운 아가들!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호호호'


졸업식 다음날 친한 엄마들과 브런치카페에서 졸업식모임을 가졌다.

"어느새 6년이 흘렀네, 코 흘리게 들이 벌써 중학생이라니 믿기지가 않아. 호호호!"

"그러게요, 언니! 중학교가 달라서 자주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서운하네요."

"그래도, 우리 6년의 의리가 있잖아요, 자주 만나요. 학교 정보도 서로 공유해요. 호호호"

"언니, 졸업식 축사요.. 마이크가 멀어서 앞부분이 잘 안 들렸어요!"

"맞아, 언니! 앞부분을 못 들어서 아쉬워."

"그래도, 교무부장 선생님이 빠르게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아주어서 다행이었어요. 호호호"

"그러게 말이야, 나는 교무부장 선생님이 올라오시기에 깜짝 놀랐어! 호호호"

"나태주 시인의 그런 시가 있는지 몰랐어요. 아이들 반응이 좋았어요. 호호호"

"언니, 졸업식 축사 여기에서 다시 읽어 주세요."

"와, 좋아요! 저도 다시 듣고 싶어요!"

"................................."

"여기에서 다시 읽어달라고?"

"네! 언니! 다시 해주세요. 나태주 시인의 시가 정말 감동이었어요."

"맞아! 언니 열심히 준비했는데, 앞부분 다시 듣고 싶어. 우리가 열심히 들어줄게. 어서 해봐! 호호호"

"알았어! 그럼, 다시 잘 들어줘! 호호호"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휴대폰을 꺼내어 졸업식축사 파일을 찾아서 읽어 내려갔다. 그날은 긴장해서 몰랐던 감정이 울컥 복받치기 시작했다.

"어머, 언니 울어요? 울지 마요! 언니가 그리울 거예요."

"아니야! 우는 거 아니야!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래."

"우리 중학교는 달라도 브런치모임은 자주 하기로 해요. 언니, 우리 잊지 말아요!"

"무슨 소리! 내가 할 말이야! 나를 잊지 말아 줘. 호호호"

열심히 준비한 축사인데, 마이크가 멀어서 안 들렸다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리허설을 한다고 했어야 했는데..

"저기, 교장선생님~ 졸업식 축사 다시 하면 안 될까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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