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넓게 펼쳐진 푸르른 잔디밭이 있다. 도심 속 드넓은 잔디밭을 볼 때면 마음도 같이 청량해진다. 잔디밭에 처음 발을 내딛을 때는 이렇게 잔디를 막 밟아도 되나 싶어 잠시 머뭇거린다. 그러다 두 발짝, 세 발짝은 주저함 없이 내딛는다. 그 잔디밭에는 울타리가 없으므로.
사람의 마음은 잔디밭이다. 평생 잘 가꿔 나가야 하는 정원이다. 그 정원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잔디밭의 모양도, 심어놓은 꽃도, 나무도 주인 취향 따라 다르다. 어느 것 하나 똑같은 정원은 없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는 세계 유일의 정원이다.
어렸을 때 내 정원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주로 가족, 친구, 친척들이었다. 그들은 잔디밭에서 나와 함께 놀기도 했으며 정원 가꾸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었다. 내가 키가 작아 나무 손질을 잘하지 못할 때는 대신해주기도 했으며, 나를 위해 예쁜 꽃을 심어주기도 했었다. 잔디가 삐쭉빼쭉 길게 자라 보기 싫어졌을 때는 잔디 깎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었다.
울타리는 필요 없었다. 그들이 놀러 오면 우선 재밌어서 좋았고, 함께 놀고 난 뒤면 내 정원은 항상 전보다 더 멋지게 변했으므로 나는 그들의 방문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내가 커가면서 사람들의 방문은 뜸해졌다. 나도 정원에서 혼자 쉬는 게 좋아졌기 때문에 괜찮았다. 어릴 때처럼 불쑥 방문하는 게 싫은 마음도 있었다. 그들도 그들의 일로 바쁘다는 것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원이 점점 더 넓어지기 시작했다.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만큼 할 일이 많아지긴 했지만 정원 손질은 제법 손에 익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울타리를 세우는 데는 여전히 서툴렀다. 울타리를 세우는 방법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알려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정원에 어느 지점에 어떤 방식으로 울타리를 세울지는 나만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사실 그들도 자신만의 울타리 작업으로 인해 바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안일하게 생각했다. 울타리가 좀 낮아도, 좀 낡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정원을 침범하는 사람들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잔디밭에 생긴 어지러운 발자국을 볼 때면 속상하고 화가 났다. ‘왜 함부로 내 정원에 들어오는 거지? 왜 함부로 어지럽히지? 왜 이렇게 무례할까?’
그렇게 몇 차례 어지럽혀진 정원을 다시 손질하다 문득 그건 꼭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길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좌우를 살피며 두리번거리다 잔디밭을 밟았을 수 있다. 선을 넘었을 수 있다. 때로는 날씨가 흐려 앞을 제대로 못 봤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나도 남의 정원에 의도치 않게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헤매는 건 당연하다. 울타리를 제대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잔디밭과 울타리 2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