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고구마 한 박스가 생겼다. 우리 집의 식자재는 대부분 어머님이 주시는데 이번 고구마도 어머님께서 주셨다. 때마다 제철 농산물을 챙겨주시니 여간 감사한 게 아니다. 하지만 역설하자면 나는 구황작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구황작물은 "불순한 기상조건에서도 상당한 수확을 얻을 수 있어 흉년(凶年)이 들 때 큰 도움이 되는 작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로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일컫는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입맛이 바뀌고는 한다. 나는 물냉, 비냉 중에 평생이 물냉파였다. 하지만 지금은 물냉면보다는 비빔막국수를 찾는다. 치킨 중에도 닭 가슴살보다는 닭 다리 살을 선호했다. 삼 남매로 자란 나는 치킨을 먹을 때 치열한 닭 다리 살 전쟁을 치른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치킨을 먹게 된다면 다리 살보다는 가슴살을 먼저 잡는다. 기름진 닭 다리보다는 느끼하지 않은 가슴살에 손이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취향이 있으니 바로 구황작물에는 여전히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불호에 가깝다. 바뀌는 입맛에 따라 나도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를 좋아하는 시기가 있겠지 기다려 왔는데 이번 하지감자 사태를 지나며 나는 아직도 감자를 선호하지 않는구나 깨달았다. 쌓인 감자를 해치워야할 숙제라고 느끼고 부담이 되었으니까.
포슬포슬하고 담백한 감자. 달콤하고 촉촉한 고구마. 알알이 씹는 매력의 옥수수. 남들이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구황작물의 장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있으면 먹지만 내가 사서 먹진 않는 식자재다. 나는 두부, 가지, 버섯이 좋다. 촉촉하고 몰캉하고 쫠깃쫠깃한 맛이 좋다. 모든 음식에 해당하지만 나는 뻑뻑해서 목에 막히는 느낌이 불편하다. 닭 가슴살도 뻑뻑하지 않냐 반문할 수 있는데 갓 조리된 가슴살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오버 쿠킹 되지 않은 가슴살이 얼마나 촉촉하고 쫄깃한지. (채식 일기에 쓰기 적절치 않은 말이지만)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즐기지 않는 식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질긴 음식이다. 오징어, 문어, 말린 나물의 줄기(예를 들면 시래기) 등이 있다. 씹어도 씹어도 이에 끼고 덩어리 지기만 할 뿐 목에서 넘어가지 않는 질긴 요리들은 나에게 영원히 불호에 속할 것 같다.
내 앞에 어떤 음식이 차려져도 나는 별말 없이 잘 먹는다. 음식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않는 편이고 짜든 싱겁든 그러려니 맛있게 잘 먹는다. 그래도 사람이기에 호불호가 있는데 불호 중의 하나가 바로 구황작물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변하고 몇 년 뒤에는 분명히 내 입맛의 변화가 있을 것이기에 영원히 불호라고 단언하지는 않겠다. 언젠가는 나도 구황작물의 진가를 알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