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라스 Jasmine Sep 05. 2023

내 남편은 귀여운 외조 대마왕

동갑인 내 남편은 방송에서 내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MBTI, ENFP인 나는 늘 떠벌리고 내 인생을 공개하는 반면 남편은 ISFP 라 남한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특히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집에서 장녀이고 남편은 막내다. 나는 키가 작아서 초등학교 시절 늘 젤 앞줄이나 두 번째 줄에 앉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조금 커서 키순서대로 22번을 연달아 3번 했었다.

남편은 초등학교 때부터 늘 반에서 키가 거의 제일 컸고, 중학교 때 178이었는데 지금 키가 중학교 때의 키라고 한다. 스트레칭을 하고 재면 180이 되기도 한다.


나는 재잘재잘 말이 많고, 남편은 묵묵히 듣는 걸 좋아한다. 나는 자랑하는 걸 좋아하고 남편은 상당히 겸손하다. 나는 정리 정돈을 하지 못하고 늘 주변이 어수선하고 지저분한데 남편은 정리 정돈을 잘한다.

결혼 후 남편은 옷을 아무 데나 던져 놓고 지저분한 나한테 깜짝 놀라서 나도 한번 겪어보라고 자신도 옷을 의도적으로 아무 데나 던져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냥 포기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쁜 쪽으로 더 닮아가는 성향이 있다고, 학생 때 1평 남짓 화장실을 3시간 동안 청소하던 남편은 요즘 나를 닮아가는 듯 자신의 서재가 내 방과 막상막하임을 보게 된다.

이렇게 반대 성향인 우리 둘이 만나서 의도치 않게 서로 닮아가면서 살아간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남편은 떠벌리지 않고 말 수가 적은 편인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나에 관한 일은 자기답지 않게 사람들에게 소문을 낸다.


지난주, 나는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었고, 제일 먼저 남편에게 구독 요청을 했다. 처음 작가가 되고 알림으로 오는 라이킷했습니다. 구독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얼마나 반갑던지.

작가가 되고 이튿날 구독자의 수가 하나 둘 늘면서 들떠 있는 내게 퇴근한 남편이 하는 말.


"오늘 아침 미팅 때 내가 사람들한테 구독하라고 했는데.. 구독자 수 좀 늘었어?"


"엥? 진짜? 직원들한테 얘기했다고? 어쩐지 모르는 남자들 구독자가 늘었어. 회의에 몇 명이 있었는데?"


"4명이었는데, 둘은 했고, K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못했고, Y는 아직 안 했네! 이런!"


세상에.. 과묵한 우리 남편. 회사 아침 회의 때 와이프가 브런치 작가 됐다고 동료, 직원들한테 반강제로 구독 종용까지! 반강제로 구독을 꾸욱 누른 직원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고 남편의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엽고, 고맙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 남편은 이런 귀여운 외조로 나를 감동시킨다.


올해 초였나 또 지나가는 말로..


"우리 여직원들한테 너 하는 Noonday ambassador 좋은 일이라고 하라고 했더니 관심이 없다네."


이 말 한마디로 나는 그날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의 마음이었다.


나는 4년째 텍사스 오스틴에 본사가 있는 Fair Trade (공정 거래) 액세서리 회사인 Noonday Collection에서 ambassador로 수제 액세서리를 판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이 씨앗, 종이구슬, 총알, 죽은 동물의 뼈등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트렁크쇼를 통해 팔면서 그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주고 그녀들은 아이들 교육을 시키고 가족을 부양하며 스스로 자립해 나간다.


어느 일요일 친구의 Noonday 트렁크쇼에 초대돼서 갔다가 아프리카의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우간다에서 종이구슬 목걸이를 가지고 와서 팔면서 Noonday Collection 창립자가 된 CEO 제시카가  입양한 Jack과 만나는 장면을 비디오를 통해 보다가 눈시울이 적셔졌는데, 매춘으로 돈을 벌던 남아시아의 여성들이 Noonday를 통해 구출되어 주어리를 만들면서 새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보고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회사가 세상에 있다고? '


하면서 나는 빨개진 눈으로 알록달록 종이구슬 목걸이며, 팔찌, 꽃물로 색감을 입힌 가방 등 잔뜩 쇼핑을 하고 집에 갔는데 아뿔싸.. 난 그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무직이었는데 내가 그날 산 액세서리의 가격은 거액의 액수였다. 평소 20불짜리 옷이나 장신구에도 몇 번을 생각하고 사던 나였는데 그날 쓴 금액은 500불이 넘었다.

남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내가 너무 심했나 싶다가 좋은 일 한 건데 뭐 하면서 죄책감을 정당화하면서 남편에게 Noonday Collection 회사 이야기를 꺼냈다.


"세상에 가난한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줘서 자립하게 만드는 회사래. 이름이 Noonday인데 그게

'가난한 자에게 나누는 자의 밤은 Noonday (대낮)처럼 환해질 거라'는

성경구절에 딴 거래. 정말 멋진 회사 같아"


남편은 흥분해서 떠들고 있는 나에게 웃으면서


"Jasmine, 그래서 얼마를 썼는데?"


하고 물었고 나는 눈치를 보다가


"500불"이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얘기를 하면서 혼날 각오를 하고 있는데 남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더 쓰지 그랬어? 좋은 일 하는 건데"


와!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반응에 난 너무 놀랐고 난 이 일화를 Noonday Collection 트렁크쇼에 갈 때마다 써먹었다.


그렇다. 난 그 첫 눈데이 트렁크쇼 이후 간호사이면서 Noonday Ambassador인 Jill에게 눈도장이 찍혔고 그녀의 끈질긴 요청 끝에 눈데이 Ambassador 가 되었다. 난 부끄러워서 사람들 앞에서 너처럼 그렇게 멋지게 얘기할 수 도 없고, 그냥 고객으로 남을게 했지만 거절을 못하는 나의 성격 탓에, 결국 겁 없이 Noonday Ambassador가 되었고 벌써 4년째 그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좋은 점이 많지만 더 좋은 점은 직접 그 나라에 가서 장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건데 그 기회를 잡으려면 많이 팔아야 한다.


나는 과테말라에 가고 싶었다. 과테말라에는 Anna라는 장인이 있는데 그녀는 그녀의 마을에 작업실을 만들어서 주변의 이웃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게 목표였는데 눈데이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Noonday에서는 매년 6월, 한 나라를 정해서 그 나라의 장인들을 도와주는데 3년 전 그 나라가 과테말라였고 트렁크쇼가 한번 열릴 때마다 $50이 Anna의 작업실 기금으로 보내졌다. 결국 목표가 달성되었고 Anna는 작업실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난 Anna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녀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동화책을 쓰고 싶었다.

Ann은 Noonday와 파트너로 일하게 되면서,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대학교를 간 여자였고 MBA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해, 난 정말 열심히 Noonday  주얼리를 팔았지만 12월 한 달을 남겨두고도 목표액까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나의 또 다른 조력자 여동생이 한국에서 Noonday를 엄청 주문해 주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난 12월의 마지막날을 열흘 째 남긴 날부터  Social Media에 내 목표액을 올리고 그 목표로 향해 가는 상황을 매일 올렸다. 사람들이 응원해 주었고, 예전 삼성의 내 부하직원이었던, 지금은 아기의 엄마가 된,  전지현과 김태희를 반반 닮은 예쁜 제니퍼가 응원한다며 인스타를 통해 주문을 해주기도 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액을 달성하느라 힘 들어하는 나에게 남편이 든 카드는 회사 크리스마스 때 여직원들 선물을 Noonday로 한 것이었다.

그날 또 남편은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눈데이 카탈로그 좀 줘봐. 직원들 갖다주고 고르라고 하게"


그렇게 남편은 또 날 감동시켰고, 남편의 외조가 한몫을 하여,  나는 정말 기적적으로 12월 31일 밤에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었고, 다른 앰버서더들과 떠나는 과테말라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불청객 코로나의 여파로 여행은 다음 해로 연기되었고, 코로나가 사라질 기미가 들지 않자 그다음 해에는 결국 여행이 취소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작년부터 다시 여행이 시작되었지만 백수에서 라디오 DJ가 되고 한글학교 선생님이 되고 또 바빠진 나는 목표액을 달성할 수 없어서 갈 수가 없었다.


요즘 또 다른 남편의 외조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매일 내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는 것이다.

조언도 해주고 늘었다고 칭찬도 해주다가 자기 얘기가 나올라치면 왜 자기 얘기를 하냐고 화를 낸다.


동갑이지만 나랑 띠동갑이라고 오해를 받는 남편, 가게 계산대에서, 어두운 일식집에서 나의 아빠로 오해를 받은 남편,


그런 남편이 내겐 너무 귀엽다. 그는 못 말리는 나만의 귀여운 외조 대마왕!

부디 이 글을 남편이 읽지 말기를... 또 자기 얘기한다고 투덜 될 테니까...


아래는 18년 전 남편에게 내가 생일 선물로 지어준 삼행시...


 ★사랑하는 그대에게★


신. 신이 내게 주신 영원한 선물, 그대는

승. 승리한 자가 누리는 쾌감보다 더 황홀한 기쁨입니다.

호. 호호호 향긋한 미소, 오늘도 두 볼에 살짝 얹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 신밧드의 모험보다 더 흥미진진한 삶을 그대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승. 승승장구만 하는 평탄한 길을 걸어가기보다는

     험난한 산길을 걸을 때 내게 건네는 그대의 따뜻한 손길을 만지고 싶습니다.

     거센 폭풍 속을 이제 막 뚫고 지나갈 때 지쳐있는 그대에게 내 조그만 어깨도 빌려주고 싶습니다.
     물줄기 하나 없는 사막에서 아득히 보이는 오아시스를 발견하곤 얼싸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그대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호. 호언장담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을 늘 행복하게 해 드리겠다고.

    그치만 살포시 고백합니다. 당신과 결혼한 지 3년 반 되는 날..
    그리고 당신의 생일 전날..
    당신을 사랑합니다.
    

 June, 13, 2005,
그대를 사모하는 여인으로부터…

Noonday Collection 이름의 배경이 된 성경구절을 도자기에 써서 구워보았다


이전 12화 위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