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리는 일주서로변 곽지해수욕장을 지나서부터 금성교까지 일주서로 양옆에 있는 400여m 구간이다.
도로 주변으로는 밭들만 보인다. 높고 낮은 건물이 없어서 그런지 마을이 있는지를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
주유소 앞 신호등이 금성사거리다. 직진하면 한림읍이다. 좌회전하면 금성리 상동마을로 우회전하면 하동마을로 들어선다. 좌회전하면 바로 나오는 금성2길은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다. 입구 우측에는 우뚝 솟은 건물 이 있다. 노인복지회관이다. 2층 건물로 마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다. 2005년에 행정의 지원금(군, 도)과 마을의 자생 단체와 주민들의 성금으로 지었다. 지금은 마을의 경로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노인복지회관(좌)과 마을운동장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와 열녀비
마을 입구를 들어서면 여기가 농촌인가 하는 정도의 넓은 도로가 나온다. 넓은 도로 좌우로는 낮은 돌담과 밭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밭담은 길을 따라 마을 끝까지 이어진다.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이다. 금성리 마을이 여태껏까지 가지고 있는 가장 제주다운 모습이다.
노인회관 바로 뒤에는 붉은 벽돌로 된 건물과 잔디운동장이 보인다. 금성리 마을운동장이라는 표지석이 있고, 건물 입구에는 금성리 청년회라는 현판이 있다. 2018년 마을부지에 체력 단련장으로 준공을 했고, 지금은 청년회 사무실과 마을운동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교적 큰 공간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임시 리사무소로 사용할 정도의 공간이다. 마을운동장은 이 근처에서는 보기 드문 잔디 구장이나 실제로 활용 빈도가 적다고 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풋살구장이나 축구교실로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한 공간이다. 마을에서는 작년(2023년)에 선정된 제주형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이 운동장의 효율적인 이용 방법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노인복지회관과 마을운동장 사이 후미진 곳에는 몇 개의 비석이 있다. 가까이 가보니 군경 충혼비라는 안내문이 있다. 6.25전쟁과 4.3때 마을을 지키다가 전사한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서 마을리민들의 성금으로 2005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충혼비만이 아니라 오래된 듯한 수개의 열녀비가 같이 있다. 맞은편 길 건너 밭담 사이를 걸어들어가면 열녀문도 있다.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새로 지은 건물이 밭 가운데 우뚝 서있다. 작년 준공한 마을회관이다. 지은 지 오래되서 좁고, 불편했던 건물을 헐어내고 작년에 새로 신축했다. 신축에 따르는 비용은 한림 복합발전소의 인근지역 주민지원 사업비로 해결했다고 한다.
상동의 중심지인 삼거리에는 수많은 세월을 넘기었음 직한 쉼팡(?)이 있다. 쉽팡 뒤 둥근 원형에는 보통 4H 운동과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풍파에 문구가 지워진 게 아닌가 추측을 해본다. 앞 쉼팡은 등짐을 지고가던 수많은 나그네들이 잠시 쉬어 갔음 직한 모습이다.
삼거리에 있는 쉼팡과 새로 말끔하게 건축된 마을회관
금성2길을 따라 걸어가면 금성리 상동마을을 지나서 곽지에서 봉성리를 가는 길인 곽봉로를 만날 수 있다. 금성2길 우측에는 금성상1길, 좌측에는 금성상2, 3길이 있다. 마을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을 안길이다. 넓어야 승용차 한 대, 1톤 트럭 1대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옛날 우마가 드나들던 길이다. 길 가운데 서면 지금도 그 모습이 아른거린다. 큰길에서 좌우로 뻣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제주말로 막은 창이 나온다. 아무개의 밭이나 집 마당에서 멈춘다. 끝은 탈출구가 없는 맹지이고 이길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농가와 벌어먹는 밭들이 있다.
길 양쪽은 돌담으로 경계하고 있다. 높지 않은 돌담이다. 돌담이 밭의 경계를 만들고 있다면 밭담이다. 돌담들은 밭을 일구다가 모아진 크고 작은 자연석 돌로 쌓은 듯 비정형이고 구멍이 숭숭하다. 주위에는 오래된 농가들이다. 대부분 단층의 슬레이트 지붕이다. 아직 개발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덜 먹었다. 오랜만에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문간을 들어서면 마당(무뚱)이 있고, 안밖거리가 있는 제주의 전통 가옥 구조들이다. 대문을 잠그고 있거나 입구 올레에 잡초가 무성한 집은 폐가이거나 빈집이다. 대문이 정낭으로 돼있거나 열려 있어서 조심조심 들어간 집에서는 옛 제주의 화장실인 통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도 있다. 비교적 옛 통시의 모습 그대로 둔 채 사람이 앉은 부분만 시멘트로 비가림시설을 했다. 돼지가 자는 곳이라는 돼지집과 돼지가 음식을 먹는 돗도거리가 그대로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듯 낙엽만이 마당을 휘젓는다.
좌측으로부터, 비가림이 되있는 사람이 앉는 곳, 돗도거리, 돼지집이 보인다.
조금은 변형된채 그대로 남아있는 제주의 전통 화장실인 통시
길을 가다 보면 새마을운동의 혜택을 받은 돌담집도 많다. 초가집과 돌로 외벽을 쌓은 집도 볼 수 있다. 무심코 지나다 눈에 띄는 초가집을 발견했다. 집의 구조가 내가 아주 어릴 적 방학을 맞아서 할머니 집에 놀러 갔을 때의 구조와 동일하다. 그게 아마도 1960년대 후반일 거다. 안을 기웃거려보니 초가삼간이다. 집의 외벽은 흙을 발라서 쌓은 돌담과 시멘트를 발라서 쌓은 돌담, 벽돌과 시멘트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부분이 공존한다. 제주 건축의 흐름은 보여주려고 인위적으로 만든 집인가 하는 느낌이다. 부엌(제주어로 정지다) 바닥은 맨땅이다. 정지 입구에는 물허벅을 내리던 물허벅팡이 있다. 아궁이가 있었던 곳에는 언제 만들어 졌는지 모르는 불채가 아직도 소복이 쌓여있다. 숱한 세월 지지고 볶고를 반복했던 정지의 벽과 천장은 어느 여인의 마음을 태우고도 남음이 있을 듯 까맣게 변해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정겹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가지고 싶으면 다른 이도 가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이집은 이주민이 리모델링해서 민박한다고 구입을 해놓고는 방치하고 있어서 주위로부터 민원을 사고 있다고 마을관계자가 귀뜸했다.
동네를 걷다 보면 집 반, 밭 반이다. 아직도 마을의 옛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마을의 밭은 척박하다. 작은 돌인 작지들이 많다. 그래서 인지 밭마다 머들과 잣길, 높은 밭담들이 많다. 밭담들의 모습과 높이는 가지각색이다. 밭에서 나오는 돌을 전부 소비해서 쌓다 보니 그런듯하다. 돌담과 밭담, 잣길은 마을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테마이기도 하다.
마을의 끝에는 정체 모를 케케묵은 구조물이 가는 길을 막는다. 시멘트 구조물로 예사로운 형태가 아니어서 들어갔다. 작은 칸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고, 사이사이로 좁은 통로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양돈장이었음 직한 곳이다. 건너편에도 있다. 마을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양돈장을 하던 곳인데 지금은 폐업하고 방치를 했다고 한다. 이곳은 마을 전체를 관망해 볼 수 있는 높은 지대다. 이런 곳에 양돈장이 있었으니 주민들과의 불편함은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어떤 사유에서 인지 모르지만 폐업을 했으면 잔해까지 모두 제거 했다면 마무리가 더 좋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올라가면 잣길이 있다. 머흘동산 잣길이라고 불린다. 이 지역 지명이다. 금성리 잣길들은 비교적 원형을 많이 보존하고 있어서 매년 제주 돌담 학교에서 봉사활동으로 유지관리를 한다. 잣길이란 밭과 밭 사이를, 돌을 쌓아서 경계를 만들었는데 그 돌담 경계 위로 사람이나 우마가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어서 길이라는 의미에서 잣길이라고 부른다. 예전 제주 농촌에서는 흔한 장면이었으나 최근에는 포크레인이 밭 경계 작업을 하면서 거의 소멸되어가고 있다. 잣길이 없어지면 그만큼 밭 면적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잣길의 원형을 보기가 힘들지만 금성리를 오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머흘동산 잣길 입구와 총대기 잣길
잣길이 있는 곳이 금성리 상동의 마지막 구간이다. 여기서면 금성리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마을의 입구에서 이 동산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길의 좌우를 살피노라면 금방 다다른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그런지 저 멀리 바닷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에서 스카이라인이 무너지지 않고 바닷가까지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아직까지는 무척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