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May 11. 2024

토성마을의 낯설은 하루

고성1리 마을축제를 다녀오고서

제주의 오늘을 얘기할 때 늘 전제되어야 하는 역사적 사실들이 몇 개 있다.


고려시대 삼별초의 대몽항쟁 결과로 제주에 남겨진 몽고지배 100년도 그중 하나다.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완전히 토벌되고 난 후 제주는 본격적으로 몽골의 직할 지배를 받았다. 고려에서 몽고가 철수한 이후에도 계속된 제주에 대한 지배는 무려 한 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몽골 지배는 제주도의 풍습과 언어, 문화와 혈통뿐만 아니라 제주의 모든 분야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여전하다.  


언제부터인가 가끔 그런 얘기를 한다.

" 만약 제주에 삼별초가 안 들어왔었다면 제주는 어떻게 됐을까?"

예전 제주에서 가장 큰 욕은 "저 몽고 놈의 새끼"다.



제주에서 삼별초 항쟁의 본거지로 지휘부가 있는 곳은 항파두리성이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다. 흔히들 항목유적지, 항파두리라고 얘기하는데 지금 행정상으로는 애월읍 상귀리와 고성리에 걸쳐있다. 유적지나 휴게소, 주차장 등 대부분은 상귀리 지역인데 동쪽 일부 토성은 고성1리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고성1리는 자칭 토성마을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토성마을에 첫 마을 행사가 있는 날이다. 작년에 새로 취임한 초보 이장님이 마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으려고 의욕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모이는 행사를 기획했다. 초보 이장님이 하는 일인데, 마을에서도 첫 행사라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누가 얼마나 올지도 모르는 행사라고 얼마 전 만남 이장님은 걱정이다.



기획 의도는 2가지다. 마을이 가지고 있는 마른 둠비와 토성이라는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것과, 마을주민들이 모여서 어울릴 수 있는 어울림마당을 제공함으로써 마을공동체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마른 둠비는 제주 전통음식으로 맷돌에 갈아서 나온 생콩가루와 해수()를 이용하여 만들어 단단하게 굳게 한 두부다. 모양은 좀 투박하긴 해도 맛과 향이 독특하다. 제주에서는 예전에 집안에 대소사 때 손님 맞이용으로 직접 만들었던 경조사용 음식이다.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고 경험과 기술이 요구되는 일이라 잔치 음식을 준비할 때 여성들이 맡은 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는 자칭 마른둠비를 만드는 전문가 삼촌들이 있다. 고성1리에도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어르신이 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이 기술을 보존하고 알리고 싶다고 한다.       


항파두리 토성은 마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단순 보존으로 농사짓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토성을 역사 문화 콘텐츠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순례길을 만들어서 관광객들이 찾게 하는 것이 다른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게 마을의 또 다른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의 축제는 시작이 되었다.   




고성1리는 중산간 마을이다.


고성1리는 제주에서는 드물게 해안가와 연접하지 않는 마을이다. 중산간 도로가 생기고 대중교통이 개설되기 전까지는 꼼짝없는 산간마을이었다. 세월을 잘 만나 이제는 마을을 가운데 두고 사통팔달로 도로들이 뚫려있어서 이제는 도로변에 있는 마을이 되었다. 주 소득원은 감귤을 위주로 하는 농사다.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없다. 제주시하고 연접해 있는 곳이라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교육과 문화 여건이 좋은 인근 신제주에 거주한다. 젊은이들은 필요에 따라 주말에 부모님 댁을 방문하거나, 과수원에 농사일하러가는 경우다. 마을에는 학교도 없다. 그러나 잔디 축구장과 스탠드를 갖춘 마을운동장이 있다. 외부용이다. 외부 단체나 직장 등에서 체육행사용으로 자주 임대한다. 그것도 가끔 발생하는 수요라 평상시에는 드론 교육장으로 임대하고 있다. 마을 내에 대형 건물이나 업체, 관공서도 없는 그저 조용한 농촌 마을이다.  


마을의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하는 어르신들이다. 주민들의 평균연령은 높은 편이다. 마을을 산책하다 보면 농가를 리모델링한 카페나 음식점 몇 개를 볼 수 있다. 젊은 이주민들인데 애월읍 내의 다른 마을보다는 훨씬 적은 편이다. 마을에는 공동주택도 없다. 거의 다 슬레이트 지붕과 돌담으로 구획된 예전 농촌 마을 농가들이다. 


광령1리와 항파두리 입구 교차로를 연결하는 광성로가 마을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광성로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해서 남북으로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광성로는 벚꽃 거리다. 도로 양옆에 있는 벚꽃들은 2차선 도로의 하늘은 충분히 가리고도 남는다. 

축제는 사람이다. 사람이 축제다.

마을에서의 행사는 부녀회와 청년회가 궂은 일을 다한다. 두 단체의 활성화 정도는 마을의 행사를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노인회 어른들은 참석과장이다. 행사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참석을 해서 신경이 쓰이게 한다. 어른들이라고 해도 부녀회와 청년회원들의 부모님이거나 친족 삼춘, 동네 삼춘들이다. 행사 준비가 안 되었더라도 행사장에 와서 마른기침을 하면 자리도 마련해 드려야 하고, 하다못해 생수 한 병이라도 드려야 한다. 그런데 이분들이 참석을 안 하면 마을의 행사는 인원 부족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8시가 지나니 동네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짓고 헛기침을 하면서 입장한다. 어느 행사장이든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은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곳이다. 뭔가를 가지고 가야 인증샷도 되고 후에 남는 것도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실크 스크린 행사가 무료 나눔 프로그램이다. 하얀 티셔츠에 마을의 대표 자원인 토성마을, 항파두리, 마른둠비, 구시물이라는 문구와 그림을 프린팅 해주는 것이다. 본인이 직접 싸이즈에 맞는 티셔츠를 골라야 한다. 경험이 없는 첫 행사라 데스크가 없는 프리 스타일이다 보니 혼잡하다. 어르신들은 몸에 맞는 싸이즈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옷을 고르면 미리 준비한 인쇄 틀로 프린팅을 하고 말려서 입어야 오늘 참석자 티가 난다. 모든 게 각자라 티셔츠를 고르는 테이블은 왁자지껄하고, 프린팅하려면 한참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옷을고르고 말리는 모습


옛 것들을 재생하다. 옛 것들을 다시 보다.

행사장에는 오랜만에 보는 정겨운 모습을 재현했다. 예전 제주에서 결혼식은 집 마당에서 했다. 세월이 조금 지나 식장에서 결혼식을 하더라도 집에는 결혼식을 알리는 솔문을 세웠다. 솔문은 경축하거나 환영하는 의미로 생(살아 있는)소나무와 대나무를 이용하여 집 입구에 기둥을 세우고, 푸른 솔잎으로 싸서 만든 문이다. 솔문 한가운데에는 계란을 풀어 좁쌀로 축 결혼 신랑, 신부 이름을 쓴 현판을 내걸었다. 마을 사람들이 누구나 잔칫집임을 알 수 있게 표시하고, 누구든지 환영을 한다는 표식이다.  


오늘은 마른둠비를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어르신 집 입구에 솔문을 세웠다. 솔문으로 들어오는 길 한쪽에는 어르신이 둠비를 만드는 과정이 걸려있다. 반대편에는 마을 주민들이 오래된 추억의 사진들을 현수막으로 프린팅해서 걸어놓았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오다가다 옛 생각에 잠긴 듯 서있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그때 그 시절 얘기를 하느라 떠날 줄을 모른다. 말 그대로 시골 잔칫집 풍경이다. 솔문를 들어서면 마당 탁자에서는 방금 만든 마른둠비를 시식할 수 있다. 어르신이 가마솥에 장작을 지펴서 직접 만든 따끈따끈한 둠비 한그릇에, 참기를 한 방울과 잘게 썰어놓은 쪽파를 띄워서 건네준다. 나도 고춧가루를 한 수저 뿌리고 푹 익은 깍두기와 한 그릇을 했다. 예전에 먹던 맛을 느껴보려고 사실 아침을 건너뛰고 왔다, 맛있다.   

   

솔문이 세워진 올래에서 전시회를 구경하는 주민들
마른둠비 한그릇과 나눠주는 어르신


잔칫집에는 음악과 풍류가 있어야 한다
잔디마당 버스킹과 용천수 작은 음악회를 보다


옆 잔디밭은 사진전과 버스킹이 곁들여진 공연장이다. 인근에 사는 대금 연주자인 양일현님이 대금 연주를 하고 있다. 푸른 잔디밭 이젤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준프로이신 이장님이 찍은 사진들이 전시 중이다. 직접 가까이에서 대금 연주를 듣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잔디밭과 돌담에 걸터앉아서 감상 중이다. 햇살이 보통이 아닌 날씨다. 푸르름과 따가움 속의 대금 연주가 청량함을 더해준다. 특별히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가요나 OST를 연주할 때 주민들의 반응은 햇살만큼이나 뜨겁다.




또 하나의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구시물까지는 조금 걸어야 한다. 대로변이고 교통량이 많은 항파두리 입구 사거리를 지나야 한다. 주민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 들이고, 걷기도 불편하신 분들이 있어서 쉬운 과정은 아니다. 청년회원들이 교통 정리를 하면서 같이 걸어준 덕에 어렵지 않게 행사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구시물은 용천수다. 예전 항파두리 성안에서 고립된 생활을 해서 그런지 토성 주변에는 몇 개의 용천수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리가 잘돼 있고 이동이 쉬운, 그리고 고성리에서 가까운 이곳을 음악회 장소로 선택했다. 행정상으로는 상귀리지만 위치상으로는 고성리와 더 가깝다. 


제주의 용천수는 3칸으로 나뉜다. 물이 나는 첫 칸은 음용수다. 다음 칸은 채소 등을 씻는 칸, 마지막 칸은 목욕하는 칸이다. 실제로 관리가 되는 용천수는 대부분 이렇게 3개의 칸으로 구분했다. 이 구시물도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가 되는 용천수다. 울타리 안이 좁아서 어떻게 음악회를 할지 걱정했었는데 미리 정리 작업을 잘 해두었다. 연주자와 고령자들만이 용천수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그 외 주민들은 용천수 밖 언덕에 올라가서 음악회를 감상할 수 있도록 사전 정리작업을 잘해 두었다. 미리 예초작업을 해서 방석이나 깔판만 있으면 앉아서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나무 그늘에 앉아서 음악회를 감상하는 베짱이가 되는 순간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함께하는 아주 자유스러운 음악회로 아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언덕에 올라서서 연주회를 보고 있자니 오래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여행할 때 들렸던 헤로테스 아티쿠스 음악당에 와있는 느낌이 순간 들 정도였다. 돌담으로 만들어진 둥근 용천수 울타리가 마치 원형 음악당같이 보였다.    


용천수 음악회가 열리는 구시물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용천수 뒤쪽에는 항파두리 토성이다. 토성은 보존한다고 하나, 일부는 없어지거나 훼손된 곳도 있다. 그래도 아직도 웅장한 모습은 그대로다. 군데군데 사유지에는 아직도 농사를 짓고 있다.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도 있다


오늘 행사의 마지막은 고성리 탐방길 걷기다. 일부 남아있는 토성과 그 주변을 걸어보는 길이다.  

구시물에서 출발해서 - 녹차밭 - 토성 - 항파두리 휴게소 - 항파두리 입구 삼거리 - 장털왓 - 안 오름 - 고성숲길 - 웃가름 - 마을 안길로 들어간다.  

토성 안은 올레 16코스가 지나가는 길이어서 걷는 구간을 잘 정리되어 있다. 구시물을 끼고 올라가면 잘 정리된 녹차밭이 나온다. 이 녹차밭도 토성 밖이다. 토성 안으로 들어서면 오르막길이다. 항파두리 유적지, 즉 내성 안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헉헉거리면서 나무 계단을 올라가고 있노라니 어디서 들었음 직한 대금 소리가 내 피로를 앗아간다. 언덕 끝 정자 앞에서 들여오는 소리다. 마을에서 대금 연주를 해주었던 양일현님이 한낮 햇빛과 걸음에 지친 무리를 달래주려 대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고즈넉한 토성 안, 옛것이 있는 곳에서의 대금 소리는 우리를 수백 년 전 그 자리로 돌려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금 소리에 한숨을 돌리고 걸어가고 있자니 항몽유적지 발굴 현장이 나온다. 1970년대 유적지가 조성되고 개관한 이래 지속해서 현장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앞에는 항몽유적지 휴게소와 주차장이 있다. 봄철에는 유채꽃밭으로 조성을 해둔 곳이라 사진 촬영의 명소가 되었다. 도로를 지나 토성 고성리 구간에 들어섰다. 거대한 토성 안에는 사유지가 꽤 있다고 한다. 어떤 개발행위는 불가능하고 단지 현상 유지를 위한 농사만이 가능한 모양이다. 길을 가는 곳마다 보리밭이다. 노랗게 익은 보리밭은 마음의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보리밭과 토성사이 길을 따라 걸었다. 꽤 더운 날씨다.


녹음이 짙은 토성 안의 모습

토성 걷기를 마무리할 무렵 때아닌 횡재를 했다. 어릴 적 기억을 되돌리게 해주는 현장을 만났다. 제주에서는 탈이라고 한다. 들판에 자연산으로 나는 딸기, 산딸기다. 예전 우리가 어렸을 때는 길을 가다 보면 숲속에 있어서 아무런 부담 없이 따서 먹었다. 때로는 친구를 하고 산딸기를 따러 들판이나 숲속을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시절 드물었던 간식거리였다. 비슷한 게 뱀딸기라는 것도 있다. 언뜻 보면 모양은 비슷하나 자세히 보면 좀 다르다. 이 뱀딸기는 뱀이 스치고 간 거라고, 뱀이 먹는 거라고 해서 손을 대지도 않았던 기억이다. 


보리밭과 토성길을 거의 나올 무렵 앞에서 가던 사람들이 길을 벗어나더니만 굽어서 뭔가를 따고는 먹는 게 보였다. 손에는 빨간색의 어떤 열매를 한 움큼씩 가지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산딸기였다. 그리고 그 옆은 보니 산딸기나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빨간 열매들이 주렁주렁이었다. 나도 얼른 굽어서 몇 개를 따서 입에 넣었다. 예전 먹던 그 맛 그대로였다. 너무나 맛이 있었다. 기억해 둘 만한 장소다.



산딸기 맛을 입에 남겨둔 체 비밀의 통보를 넘어서니 아스팔트 길이 나왔다. 고성천을 끼고 있었다. 여기를 내려가면 마을이 나오고, 오늘 행사가 끝이라고 했다. 마을회관에는 먹을거리와 막걸리가 준비돼있으니 한잔하고 가라는 이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오뉴월 제주에서는 마을마다 행사들이 많다. 마을의 입장에서는 모두 다 하는데 우리 마을만 안 하는 것도 이상해진다. 그래서 하게 된다. 그러니 비슷비슷해지고, 특색이 없게 될 수도 있다. 


마을의 행사를 보면 그 마을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을의 특색, 주민들의 정서, 주민들 간의 소통과 배려 등 마을문화와 사람들 대하는 기본자세들이다. 


이른 아침부터 익숙하지 않는 몇 시간을 보냈다. 더욱이 낯선 곳에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