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풀뿌리 민주주의, 주민자치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중심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마을로 내려가고 있다. 마을의 문제를 스스로 찾고 스스로 해결하는 "주민들이 주인인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마을이 중시되고, 정책의 방향이 마을에 집중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마을도 싫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정책을 따라갈 마을의 인력이 없음을 힘들어하고 있다.
인간이 사는 사회 어디에서나 정보는 권력이고 힘이다. 그러기에 항상 정보의 원천이나 정보의 흐름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마을에서 정보의 원천은 리사무소와 이장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정보흐름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SNS가 변화라는 장작 위에 기름을 부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게 정보이고 지식이다. 발품을 팔면서 누구를 찾아가거나, 일일히 만나지 않아도 정보를 쉬고, 편하게 얻을 수 있다. 정보의 홍수시대 그저 잘 주워 담기만 해도 바구니가 철철 넘친다.
커다란 사회의 변화 속에서 가장 보수적일지도 모르는 농촌 마을의 이장들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스스로가 아닌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마을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통적 의미의 마을공동체는 방향성을 잃은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의도치 않게 무너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충돌하면서 갈등을 빗기도 한다. 마을공동체안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장의 역할도 제대로 정리가 안된 체 마을마다의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제각기다. 이장에 대한 존중과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 지시를 하는 입장에서 뭔가를 자꾸 요구(지시)받는 입장으로 역전이 되고있다. 마을 심부름 꾼이 되어가고 있다.
존중과 권위는 많이 사라지고 있는 반면 마을내외의 요구사항과 일은 많아지고 있는데 여전히 보상이 없는 명예직이다. 이장에 대한 질책과 요구는 거의 선출직인 도의원 수준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장을 해야겠다는 의지나 뚜렷한 비전이 없는 한 이장에 자발적으로 선뜻 나서지를 못한다. 자칫 동네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 행정에서 하는 일들은 모두 리사무소를 통해서 마을에 전파했다. 행정라인인 읍,면에서 리사무소, 리장,을 통해서 모든 정보가 공급이 되었다. 이들이 행정에서 나오는 모든 정보를 거의 독점했다. 이들이 주민들에게 전파를 안 해주면 주민들은 모르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정보의 원천인 리사무소나 이장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이장이나 리사무소보다 정보를 더 빠르게 알 수 있다. 정보의 원천이 정부나, 도, 시의 홈페이지에서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장이나 사무장의 정보검색 능력은 좀 떨어지는 편이다. 정보를 받는 수혜적 입장이다 보니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를 않는 면도 있다.
예전 동네일이라면 쉽고 간단하게 몸을 좀 쓰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마을일은 그리 간단하고 녹록하지 않다. 많이 복잡해졌고,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경향으로 분화하고 있다. 행정에서 마을에 영향을 끼치는 일들은 일단 마을 이장에게 의견을 묻는다. 개발, 건설, 환경 등 주로 마을에 외형상 큰 변화를 주는 일들이다. 이를 결정하기 위한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짧은 지식으로 이장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아주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일, 법적 지식을 요구하는 일들은 이장이 어찌 해결을 거들어 볼 수가 없다. 요새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는 명칭으로 마을의 구조를 변경하거나, 건축물을 신축, 리모델링하고, 마을사업을 기획하는 일들이 마을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을 이장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들이다. 기간적으로도 3년~10년까지 장기간에 걸치는 사업이라 이장이 집중할 수도 없고, 꾸준하게 관리할 수도 없어서 쉬 지쳐버린다.
지방자치의 시대가 되면서 이장의 역할은 점차 커지고 있다. 마을이 어떻게 변할지는 이장의 역량에 달려있다 고 한다. 매년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공모사업에 참여해서 선정이 되면 수억, 수십억 원의 정부예산을 받아올 수 있다. 주변에서 마을들이 참여를 하는데 저 혼자만 참여를 안 할 수도 없다. 참여를 했는데 떨어지면 이장의 무능으로 돌아온다.
도로나 농로개설 등 마을에 필요한 일들도 행정을 상대로 로비를 하고 일종의 영업을 해야 한다. 이것도 옆마을은 했는데, 우리 마을만 못하면 이장의 무능이다. 이장의 개인적인 역량과 인프라 네트워크, 심지어는 사비를 쓰면서까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저 혼자만 웃으면서 온몸을 바쳐서 열심히 한다고 마을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고 끝날 일이 아니다. 주는 것은 없으면서, 현실적인 성과물을 요구한다. 때로는 생업까지 포기하면서 매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사업을 하는 이장들이 등장하면서 생기는 변화다. 요새는 마을에 변화를 주는 일들은 마을 주민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도로 등 사회 기본시설이 들어서는 경우는 당연하지만, 일종의 위해시설(?)이나 님비시설들이 들어서는 경우도 그렇다. 일상적인 시설이 들어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민들의 동의를 얻거나, 적어도 마을을 찾아가서 이장에게 설명을 하고 협조를 구하는 편이다. 마을 만들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업을 하는 이장인 경우, 이장의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혼재되어 있어서 자칫 주변으로부터 오해를 살 일이 생기는 경우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이경우는 잘해야 본전이다.
마을에서 이장이 되는 경우는 마을수 만큼이나 선출방식이 다양하다. 그러니 이장님들의 능력이나 자질 또한 마을수 만큼 다양하다. 모든 이장들이 마을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출발하지만 그것이 능력과 자질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세상은 우리가 아는 만큼만 보인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성장을 하려면 나를 뛰어넘어야 한다.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하고, 주위의 능력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잘 이용해야 하는 이유다. 본인이 능력이 있어서 세상을 살아갈수 있다면 최고지만 그보다 더한 최고는 주위 사람들의 능력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경우라고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마을은 농어촌을 근거지로 하는 만큼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보수적인 곳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속에서도 그나마 사람들이 사는 냄새, 고향의 맛이 나는 곳이다. 도시에 지친 나그네들이 휴가를 내서 찾아 올 수 있는 곳, 오랜 타향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퇴직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귀향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을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빈집들이 많다.
마을이 변화속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단순한 이장을 넘어서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갈 유능한 리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