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실패와 끝맺음.
첫 번째 시험관의 도전은 공난포로 두 번째 시험관 도전은 미성숙 난자로 수정시도를 하지 못했다. 연달아 두 번의 시험관 도전과 실패로 우울증이 크게 왔다. 아마 호르몬 주사의 영향도 있어서 더 심각했던 것 같았다.
이불속에 쭈그리고 앉아 멍을 때렸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채취가 안되고 수정조차 할 수 없는 상황들. 착상이 안되더라도 채취가 되어 수정이 된 수정란을 내 자궁 안에 넣어보고 싶었다.
너무 늦게 시험관을 시작한 것이 원망스러웠고 ‘나중에’라고 말했던 남편이 미웠다. 그런 남편을 설득하지 못했고 혹여 자식이 짐으로 남겨 질까 걱정하여 남편의 마음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던 나 자신도 후회스러웠다.
“나 진짜 죽고 싶어. 너무 힘들어... 살기 싫어.”
우울한 생각과 마음들이 나를 갉아먹어 들어갔다. 남편의 위로가 필요했다. 괜찮다고, 잘 될 거라고 다음번엔 꼭 성공할 거라는 위로가 듣고 싶었다.
내 옆에 있었던 남편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무얼 하는가 싶어 걱정이 되어 나도 일어나 뒤따라 갔다.
“오빠!!!”
“내가 먼저 죽을 게! 나도 죽고 싶어!!”
남편이 갑자기 싱크대 수납장에서 식칼을 꺼내며 자신의 손목을 향해 칼을 쥐고 있었다.
“오빠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그러지 마 제발. 내가 안 그럴게”
끔찍했다. 이 상황이, 그리고 이 공포감이. 울면서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그러지 말라고… 그렇게 칼 소동이 일어난 후 남편에게 나의 감정을 털어놓지 않았다.
내가 힘든 만큼 남편도 심적으로 실망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문제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에 남편을 그 이상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며칠 후 친정집에 왔다. 그동안 시험관 준비하느라 몸 고생 마음고생 많았었는데 엄마집에 있으면서 편하게 쉬었다. 저녁을 먹으며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돈 보태 줄 테니까 다시 한번 도전해 봐”
엄마가 흔들림 없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하염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겁이 났다. 또 공난포가 나와 엄마가 지원해 준 돈을 날리는 것은 아닐까, 미성숙한 난자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이제 아예 영영 채취가 불가한 것은 아닐까, 결과를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자신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나중에…”
엄마가 걱정할 것 같아 속에 있는 나의 감정들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래도 딸을 생각해주는 것은 역시 엄마 밖에 없었다.
친정에 다녀온 후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시험관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러다 지난번 보건소에서 우연히 보게 된 포스터 하나를 핸드폰 앨범에서 찾아보았다. 한방난임지원 포스터였다. 혹시 몰라 찍어 둔 거였는데 잘했다 싶었다.
보건소에 연락하여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고 원하는 한의원에서 한약지원과 침 치료를 저렴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방의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몸을 만든 뒤 시험관에 재도전을 할 생각이었다.
한의원에서의 소견으로는 혈액순환이 많이 좋아져서 상태가 좋아지고 있었지만 산부인과에서는 난포가 자라주지는 않았다. 더 이상 나의 몸에서 난자가 생성되지 않을 모양인 듯싶었다.
나는 내 뜻 대로 되지 않는 나의 이 삶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만하고 싶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도 시험관을 도전하는 것도 나 혼자 노력하는 결혼 생활도 이제는 지쳤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이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