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먹구름 뒤 햇빛
신혼 초부터 쉽지 않았던 결혼 생활은 결국 시간이 흘러 7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도 많이 했고 상처가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제 이 결혼 생활을 유지할 힘이 없었고 지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었다.
이전의 나는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목적과 내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두 가지 목적으로 삶을 살아왔었다. 이제는 목적이 사라지니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난 정말 평범하게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꿈꿨었다.
이혼 후 과거의 나의 선택들과 나의 노력이 결국 실패로 돌아왔다는 좌절감과 패배감에 혼이 나간 채로 우울한 삶을 살았다. 내 삶에 희망 따윈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선택을 했으면 내가 좀 더 다른 삶을 살았을까?’
‘어차피 결국 아기를 못 가지게 되는데 왜 그렇게 빨리 결혼했을까?’
현재 나의 삶은 망가진 인생 같았다. 판타지 소설처럼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삶을 다시 살고 싶었다. 마음이 한없이 망가져갔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했다. 자존감이 결여되었고 내 마음속엔 건들면 바로 물 것 같은 털이 쭈뼛 솟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모든 말들이 다 공격적으로 들어와 작은 것에도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화가 많았다.
엄마가 농담으로 “돼지야~ 그만 먹어!”라고 한 말에 어떻게 딸한테 돼지라고 말할 수 있냐며 불같이 화를 내어 엄마를 민망하게 만들기도 했다.
자살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내가 한 가지 확실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지옥은 정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갈 것만 같아 무서웠다. 지옥의 공포로 자살은 할 수가 없었다.
“야, 희주야 이거 봐, 뭐가 보여?”
“뭐? 점? 그게 왜?”
“점만 보여? 다른 건 안 보여?”
“점하나 그려 놓고 뭐 하는 건데~”
“나 상담받을 때 상담선생님이 썼던 방법이였는데, 사람들이 점만 보고 그 점이 그려진 종이는 안 본데, 나도 그랬고 너도 그렇고 점 하나에 시야가 좁아지는 거지”
“!!!”
어느 날 친구 사무실에 볼 일이 있어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울한 나를 위해 친구가 대뜸 종이 가운데 점하나 찍어 상담을 해주었다. 나의 삶이라는 도화지에 점하나 그것은 ‘나의 실패’였다.
아주 작은 점 하나에 나의 시선은 전체 종이를 보지 못했고 실패 한 점 하나가 나의 삶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세상이라는 고통 속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 나는 기독교 상담을 받았다. 확실히 상담은 사람에게 필요한 심적 보약 같았다. 체력이 떨어지거나 몸보신을 하기 위해 먹는 보약처럼, 마음이 여유가 없고 상처로 인해 너덜너덜 해졌을 때 상담은 나에게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우울증 소굴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애정결핍. 이것은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내가 느낀 애정 결핍은 다른 케이스였다. 내가 9개를 가지고 있어도 나에게 없는 1개 때문에 나머지 9개도 없다고 느끼는 나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애정 결핍이었다. 결국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마음들 이였다.
또 한 가지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사춘기 때의 불안감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은 미래적 간절한 소망으로 피어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고 싶은 마음이 깊어지고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현실에 집착으로 변해갔다.
상담을 통해 나는 선택으로 인한 실패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아픔과 슬픔의 시간들도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인정했다. 먹구름이 꼈다고 해서 해가 없는 게 아니다. 잠시 나의 슬픔에 행복이 없다고 느낄 뿐 먹구름이 조금씩 사라지면 그 사이로 빛이 비친다.
나의 불행과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길 원했다. 물론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드신 분들이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나누고 소망과 희망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나의 이야기를 글에 담았다.
나의 글을 읽고 자신이 지고 있는 짐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덜 슬프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