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프가 좋다.
에프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8화에서 썼듯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에 대해서도,
내 몸에 대한 생각도.
그녀는 시간만 나면 나지막이 노래를 하고
몸을 영리하게 쓸 줄 알며 호기심이 많고
얼굴이 빨개지게 뛰노는 아이들처럼 생기 넘친다.
공부도 아주 열심히 한다.
시험 보기 하루 전날이었다.
보통 엠, 나, 에프는 함께 늦게 까지 학교에 남아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날 에프는 공부에 전혀 집중을 못하고 자꾸 울었다.
같이 살던 애인 1이 이사를 나갔던 것이다.
헤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1이 2와 살기로 했단다.
1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둘 있었다. 에프와 2.
1과 에프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1이 2와 사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막상 1이 나가자 가슴이 많이 아팠다.
에프는 여전히 1을 사랑한다.
그녀의 사랑이 좀 다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묵직하다.
그녀는 여전히 1과 함께 인라인을 타고
책 읽고 이야기하며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관계가 이전과는 달라졌다.
옷장에 자기와 1의 옷이 함께 걸려있는 걸 볼 때의 흐뭇함,
자다가 깼을 때 자기 발을 1의 발에 댈 때의 안도감을
느낄 수 없다.
에프는 요즘 O, Z와 산다. 에프와 O, Z는 모두 연인이다.
1도 에프의 연인이지만 O, Z와 공동 연인관계는 아니다.
1, 2, O, Z는 아는 사이이고 주말이면 함께 파티도 한다.
에프의 사랑엔 등장인물이 많아서
처음엔 누가 누구의 애인인지 헛갈렸다.
아니, 등장인물이 많아서라기보다
폴리아모리라는 것이 낯설어서 관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에프가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자
오히려 내 사랑이 낯설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왜 못하게 해?”
에프는 애인들과 각자의 욕망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어떻게 조정해 나갈지 의논한다.
질투라는 감정,
누군가에게 있어 '제일' 소중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서로 이야기한다.
연인뿐만 아니라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직스럽다 싶을 만큼 끈질기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솔직해지려고 애쓴다.
그래서 연인들과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그녀의 폴리 아모리는 그런 것이다.
그 사랑이 내 사랑에 의문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