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집을 사는 사람들, 나도 될 수 있을까?
정보성 유튜브 채널만 보던 제가, 직접 채널을 오픈하고 콘텐츠를 만들면서부터는 개인의 일상이 담긴 다양한 채널들도 하나둘씩 알고리즘을 통해 접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자신이 만든 영상 수입으로 집을 샀다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자주 보게 되었죠. 그 영상을 보면서 저도 ‘나도 언젠가 영상 수입으로 집을 살 수 있겠지’라는 바람이 생겼어요.
집이란 무엇일까요. 저에게 집은 ‘정착’과 ‘심리적 안정감’을 의미해요. 한 곳에 자리 잡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간절한 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한인 성당에서 만난 어느 어르신과 마지막 드라이브를 함께했던 날이 떠오릅니다. 그분은 아들 가족을 따라 이민을 와서 이 도시로 옮겨오셨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유일한 소통 창구는 한인 성당이었어요. 영어가 서툴러서 이웃과 어울리기도 어려우셨고, 운전도 못 하셨기에 누군가 데려다줘 야만 성당에 갈 수 있었죠.
그날은 마침 제가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화분을 구입하러 몇 곳을 들릴 일이 있어서 성당에 가기 전 함께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도착한 집들 중 하나는 직접 땅을 일구고 정원을 가꿔온 아주 인상 깊은 곳이었어요.
앞마당엔 포도나무와 자두나무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고, 뒷마당에는 계절꽃들과 허브들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죠. 그 집주인 역시 연세가 지긋한 분이었지만, 영어가 유창하진 않아도 자신의 땅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가고 계셨어요.
마켓플레이스에 포도나무 묘목을 판매하며 소소한 수입도 올리고,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이었죠.
그 모습은 조수석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어요.
자녀의 집에 얹혀살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삶. 어르신은 자신이 돌보던 텃밭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것 같아.” 그분의 조용한 한마디가 잊히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버스를 타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고 이웃도 낯설어 외출이 쉽지 않다고 하셨어요.
“남편이 예전부터 운전 못하게 해서 운전도 못 배웠어.” 하시며 한숨을 쉬셨죠.
그날 어르신은 해외 성지에서 사 오신 성물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제 손에 쥐여주셨어요. 그분이 저에게 보여주신 마지막 마음이었을까요.
얼마 후, 국적 회복을 위해 한국에 잠시 다녀오신다는 말씀을 끝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건강해 보이셨던 모습이 생생했기에 믿기지 않았어요.
뒤늦게 며느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오래전 앓던 암이 완치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뇌로 전이되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고 해요.
이 도시에도 자녀의 육아를 돕기 위해 이주해 온 노년층들이 몇 분 계세요. 그런데 캐네디언 어르신들은 새롭게 이사 온 곳에서도 교회나 지역 커뮤니티에 쉽게 어울리고, 이웃과 대화를 나누며 활발히 생활하시더라고요.
언어 장벽 없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그분들을 통해 실감하게 되었죠.
저 역시 고민이 많아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마음은 편하지만, 한인 커뮤니티가 있는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노후에는 어디에 정착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자주 하게 돼요. 하지만 이제는 어디든, 내 집 하나 갖고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은퇴 전에 모기지 없는 내 집을 가지는 것이 지금 저의 작은 목표예요.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이 지역의 집값은 많이 올랐고, 싱글 인컴으로는 20% 다운페이를 준비해도 나머지 80%의 대출을 받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니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직은 영상 수입이 0원이지만, 오늘도 조용히 영상 편집을 하며 그날을 꿈꿔 봅니다.
“저도 집 샀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