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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력파 솜작가 Mar 07. 2023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여자

내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이유

내가 새벽 기상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엄마와의 운동을 위해서였다. 아주 작고 귀여운 목표였다.


시간을 거슬러 이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코로나가 터지고 갑자기 백수가 된 나.


2020년, 3년간 근무했던 외항사 승무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남은 건 손때 묻은 유니폼과 캐리어 그리고 700만 원의 자금뿐이었다.


두 달 동안 엄마 집에 얹혀살았다. 집을 떠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곤욕이었다. 엄마도 슬슬 이직을 권유하였고 나는 50개가 넘는 이력서를 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한없이 작아졌던 시기였다. 나름 3년간 외항사 승무원으로 비행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가졌던 난데. 주변을 돌아보니 2년제 전문대에서 서비스 전공을 한 내가 들어갈 만한 회사는 없었다.




외항사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나





공백 기간이 길어지자 내 자존감은 바닥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회사는 많지만 계약직 비서, 중소기업 경영지원 업무가 싫었다. 현실에 좌절하며 불평만 늘어놓았다.


어느 날, 평소처럼 저녁을 먹으며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 운동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은 없고.. 아침에 일어나서 해 볼까?”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모험을 시작했다. 아침잠도 많고 일과 후에 즐기는 맥주도 좋아했던 내가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폼롤러에 중독된 나



우리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온라인 운동 수업을 참여했다. 그때 거실은 마치 필라테스 센터를 방불케 했다. 어떤 날은 땀을 뻘뻘 흘릴 정도의 고 강도의 수업도 있었다.

시작과 마무리는 항상 폼롤러로 뭉친 근육을 풀었는데 이때부터 폼롤러의 맛을 알아버렸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의 목표는 이루어졌다. 한 달 동안 새벽 다섯 시 반에 운동하기.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만 했는데 나는 뭔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뭐든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얼마 후 나는 이직에 성공하여 첫 출근을 하였다. 서울에 원룸을 구하고 다시 독립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출근 후 6개월 정도 지났을까, 나는 다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9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하면 내 시간이 도통 없었다. 야근을 하는 날은 8시, 집에 오면 9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회사만을 위해 사는 노예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엄마와의 새벽 운동을 다시 떠올렸다. ‘아, 나에게는 새벽 시간이 있었지.’ 다음 날부터 바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일어나기 너무 힘든 날은 건너뛰기도 하고 일주일을 쉬어 버린 날도 있었다.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 나와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너무 달콤했다.


더 이상 회사의 노예가 아닌 내 삶을 이끌어가는 사장님이 된 느낌이었다. 내 인생의 사장님은 나지 누구인가.


이때부터 다시 나의 표정, 말투, 일을 대하는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감사, 열정, 새로운 목표가 마음속에서 절로 생겨났다.



브이로그로 남겨둔 새벽 기상의 흔적







그렇게 나는 이 시간을 활용해서 많은 걸 이뤘다. 중국어 강의 듣고 hsk5급 따기, 이직하고 싶은 회사에 이력서 제출하기(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친구 결혼식 식전 영상 만들기, 오픽 공부하고 시험 보기, 유튜브 촬영하고 편집하기 등등. 퇴근 시간이 늦음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걸 해냈다.


이것이 내가 새벽 기상을 하는 이유이다. 새벽 시간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친구 같은 존재이자 나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다.


나는 오늘도 새벽이라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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