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차즈케
'미룰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뤘다 겨우 해내는 일이 다들 하나씩 있지 않나요?'
나의 경우, 기한이 정해진 행정업무 처리가 그렇다. 그중 제발 오지 않았음 했던 운전면허증 만료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만료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한 달 내내 내 마음을 괴롭혔다. 재발급하는 그 모든 과정이 어떤지 알아서, 쉽지 않을걸 알기에 피하고 싶었다. 빨리 해치우고 나면 될 걸, 그만큼 부지런하진 못해 미루고 미루는 나 자신이 싫어 더 괴로웠다.
미국에는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s)라는 차량 등록과 운전면허를 관리하는 기관이 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당시 신분증과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는데 어찌나 속을 썩이던지. 한국의 신속하고 편리한 행정 시스템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알려준 대로 서류를 준비했는데도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했고, 오고 갈 때마다 두어 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했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3주가 흘렀고 만료일이 정말 코 앞으로 다가왔다. 퇴근길 내내, 다음 날 DMV방문을 생각하며 무거운 맘으로 운전했다. 피곤한 몸을 바로 뉘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자꾸 막힌다. 역시 쉽지 않다. 미리 작성하고 가면 빠르다고 했는데…
신청서는 내버려 두고 필요한 서류를 프린트했다. 실거주지를 확인할 수 있는 두 가지 서류가 필요한데, 혹시 몰라 세 가지를 준비한다.
다음 날, 미리 대기표를 받아두려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뭐가 안된다. 자꾸 에러창이 뜬다. 할 수 없이 가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로 한다.
출발 전 속을 든든히 채운다. 속이 비면 서럽지 않을 일도 서럽기 때문에. 가서 얼마큼 기다리게 될지, 또 얼마나 스트레스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가 구워두신 굴비 한 마리를 올려 오차즈케를 만들어 먹는다. 오차즈케라 하면 녹차에 밥을 말아먹는 일본요리다. 생선, 젓갈, 김, 후리가케 등 고명을 올려먹기도 한다. 몇 주전부터 생각만 하고 정작 쉬는 날 귀찮아 해먹지 못했던 요리이기도하다. 미뤘던 일을 해치우는 김에 미루고 있었던 요리도 함께한다.
솥밥 먹은 후 물 부어 먹는 누룽지에 보리굴비를 올려먹는 것과 아주 비슷한 느낌이다. 정통방법은 아니겠지만, 뜨거운 물에 녹차 티백을 우려내고 구운 굴비 살을 발라낸다. 넉넉한 그릇에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굴비 그리고 약간의 감칠맛을 위해 후리가케를 솔솔 뿌려 마무리한다.
깔끔한 녹찻물에 밥을 부셔 적신다, 굴비한쪽을 올리고 입에 넣는다. 하나도 비리지 않다. 고소하고 쫀득한 굴비와 따뜻한 찻물이 잘 어우러진다.
자극적인 양념이 올라간 무말랭이나 김치 같은 반찬이 당길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대로도 너무 충분한 맛이다.
속이 든든하니, “오늘 안에 해결하고 온다!”하는
의지가 넘쳐, 같이 가주냐는 엄마의 도움도 거절했다.
집 떠난 지 정확히 한 시간 만에 모든 일처리가 끝났다. 내가 준비해 간 서류는 다 보지도 않았고, 집에서 몇 번을 해도 안되던 온라인 신청서는 그곳에 마련된 컴퓨터로 하니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이 참, 나 이거 왜 이렇게 미뤘을까.
왜 그랬을까.
괴로웠던 마음 앞에 너무 머쓱하다.
<굴비 오차즈케>
1인분 기준 재료: 손질된 작은 굴비 한 마리, 녹차 티백 1개, 밥 1 공기, 후리가케 (김가루와 깨소금을 섞어 대체해도 괜찮다)
손질된 굴비를 기름 살짝 두른 팬에 굽는다. 잠시 식혀둔다. 기다리는 동안 뜨거운 물에 녹차티백을 우려낸다. 굴비 살을 발라낸다. 국 대접에 밥을 담고, 우려낸 티백을 밥이 반 이상 잠길 만큼 붓는다. 밥 위에 고명 올리듯 생선살과 후리가케를 뿌린다. 취향에 따라 갓 지은 뜨거운 밥대신 찬밥을 사용해도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