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드레비빔밥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든 이후로 어른되기 싫다고 징징거릴 때가 자주 생긴다. 내가 오롯이 감당해 내야 하는 감정과 책임을 마주할 때…
반대로 뜬금없이 ‘나 이제 좀 어른 같네!'라며 스스로 어른스러운 모습이 아주 맘에 드는 날도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을 하나 꼽아보자면, 나물 반찬을 맛있게 착착 먹는 내 모습을 볼 때.
단순히 어릴 땐 먹지 않던 나물을 먹어서라기보단 먹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보물 같은 맛을 알게 돼서랄까.
특히 향이 강한 편인 곤드레나물이나 취나물은 더욱 그렇다. 보들보들하고 연한 곤드레나물은 흰쌀밥에 반찬으로 먹어도, 참기름과 초를 살짝 섞은 고추장이나 양념장에 비벼 곤드레 비빔밥으로 먹어도 참 담백하니 맛있다.
엄마는 우리가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거나, 편식이라며 혼내지 않으셨다. 우리 모두 심하게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었고, 특별히 안 먹는 음식은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물 반찬을 하실 땐, 엄마도 어릴 땐 싫어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좋아졌다고, 너희도 나중에 크면 이 맛을 알게 될 거라며 유독 아쉬워하셨던 게 기억난다. 그 마음을 이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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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육개장 국물 속 가득 든 고사리.
밑반찬으로 자주 식탁에 올라왔던 멸치볶음.
풋풋한 밀가루 내가 나는 수제비와 칼국수.
엄마가 눈 감고 씹으면 달달한 '밤'같다고 했던 콩밥 속 검은콩.
이 보물들을 다 찾아서 다행이다.
계속 못 찾았으면 나중에 얼마나 아쉬웠을까.
곤드레 나물을 맛있게 먹게 된 것처럼, 지금은 버겁다고 느껴지는 일들이 미래 언젠가엔 생각보다 가볍게 느껴질 날을 기대해 본다. 고통스럽고 무거운 시간은 결국 흐르게 돼있다. 우리는 그 시간 앞에 무기력하게 놓여있는 듯 보이지만, 티 나지 않을 뿐 부지런히 힘을 기르고 있는 걸 테니.
<곤드레주먹밥>
재료: 엄마가 만들어준 곤드레 나물, 밥, 초고추장, 통깨
건조된 곤드레를 물에 잘 불리고 충분히 삶아 부드럽게 볶아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한다. 입에 넣었을 때 까끌하거나 뻣뻣한 식감이 없어야 잘 만든 곤드레나물이라고. 엄마는 말린 곤드레를 압력밥솥으로 찌는 방식을 사용하시는데, 사실 내가 만들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밥 한 덩이와 곤드레나물을 조물 조물 잘 비벼준다. 주먹밥 만들듯 중앙에 초고추장을 넣고 커다랗게 밥을 뭉쳐 그릇에 담았다. 통깨를 잔뜩 뿌리고 테두리부터 조금씩 부셔 비벼먹는다. 한정식 집에서 나오는 깔끔한 한상차림 부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