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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굳이,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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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Sep 30. 2023

내가 못나 보이는 날엔 오이두부비빔밥

오이두부비빔밥


나는 항상 또래보다 키가 컸다. 초등학생 때까진 웬만한 남자아이들보다도 한 뼘은 컸다. 그래도 평균체중을 넘어간 적은 없었다. 오히려 중학생이 돼서는 키 160cm 후반에 50kg 정도 나가는 마른 편이었다. 하지만 유학생활 시작 반년만에 10kg가 쪘다. 식습관과 생활습관이 바뀌며 살이 안 찐다고 믿었던 내 체질도 변했다.


그 이후로 운동과 식이조절에 대한 스트레스가 조금씩 날 따라다녔다. 일 년에 한 번 방학이 되면 한국에 갔다. 한, 두 달 운동과 식단조절로 원하는 몸무게를 만들어 돌아왔다. 또다시 한, 두 달 원하는 몸무게로 살아간다. 하지만 금세 요요가 와 통통한 나로 돌아갔다. 심각한 과체중이었던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면 볼살 빵빵, 동글동글 귀여운 내가 있다. 지금은 귀엽다 말하지만 그땐 그런 내 모습이 참 싫었다.


몸무게는 숫자에 불과하다. 보통, 통통, 뚱뚱이란 단어들도 지극히 주관적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내 키에 이상적인 몸무게’를 정해논 이상, 그 숫자를 벗어나면 거울 속 내가 너무 못나보였다. 옷장 속 어울리는 옷이 하나도 없어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종종 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순식간에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겉모습과 상관없이 나는 소중해’라는 말을 돼 내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동시에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독하게 다이어트는 못하는 내가 답답했다. 하루, 이틀 유행하는 다이어트를 따라 하다 포기하길 반복했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이야!’라는 순간의 다짐과 그 긍정적 다짐에서 나오는 호르몬은 오늘의 폭식을 불러일으켰다.


이 악순환을 끊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건강한 나로 돌아가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허함, 우울함, 불안함으로 부터 나를 지키는 마음의 근육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운동으로 몸의 근력을 차근히 쌓아갔다. 그리고 30대를 코앞에 둔 지금, 나는 아직 이 근육을 쌓아가는 중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순간, 1kg 체중변화에도 기분이 가라앉는 순간, 그래서 우울한 마음이 드는 순간, 그래서 유행하는 절식 다이어트에 마음이 혹하는 순간. 그 순간이 오면 생각을 멈추고 주방으로 내려가 건강한 한 끼를 요리한다. 아, 중요한 게 빠졌다. 건강하고, 아주 맛있는 한 끼. 플레이팅도 정성스레, 먹을 때도 꼭꼭 씹어 천천히. 내 몸에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채워주고 기분 좋게 운동을 하러 간다. 물론 나는 아직도 넘어진다. 그래도 조금씩 단단해지는 근육이 참 고맙다. 그리고 크게 외친다.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

<오이두부비빔밥>

1인분 기준 재료: 두부 1/4모, 오이 1/3개 (두부와 비슷한 양 추천), 계란 1알, 참기름 1스푼, 간장 1스푼, 올리고당 1스푼, 고춧가루 1/2스푼, 후리카케 혹은 김가루


반으로 갈라 씨를 파낸 오이를 작게 깍뚝썰기 한다. 오이껍질이 두껍고 거칠다면 껍질을 벗겨도 좋다. 비슷한 크기로 두부를 썬다. 팬에 구울 거라 부드러운 찌개용보다는 단단한 부침 두부가 좋다. 하지만 냉장고에 찌개용 두부가 있다면, 굳이 사러 나갈 필요는 없다. 자른 두부를 약간의 기름과 함께 뒤적뒤적 굽는다. 수분이 날아갔을 때쯤, 간장을 팬 모서리에 넣고 부르르 끓어오르면 두부와 함께 섞는다. 약불로 줄인 후 올리고당과 고춧가루를 넣어 잘 섞으며 볶아준다. 계란 프라이는 취향껏. 좋아하는 그릇에 밥, 계란, 오이, 두부 순으로 넣고 중앙에 후리카케를 뿌린다. 도시락김을 부셔 올려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 바퀴 둘러, 비벼먹는다. 아삭한 오이와 부드러운 두부, 짭짤하고 달달한 양념과 담백한 계란이 참 잘 어울린다. (도시락 메뉴로도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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