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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굳이,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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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Oct 05. 2023

안도하는 마음과 들기름 막국수

들기름 막국수

일주일 중 많게는 6일 내내, 적게는 하룻밤을 호텔에서 보낸다. 내겐 호텔에 혼자 있는 시간이 승무원이란 직업의 최대 장점이다. 자유롭고 마음 편한 시간. 손발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오래도록 욕조에서 멍 때릴 수도 있고, 슬픈 영화를 보다 잠시 일시정지 누르고 펑펑 운 후에 다시 이어 볼 수도 있다. 누가 볼까 걱정하지 않고 일기장을 펼쳐둔 채 잠들 수도 있다. 그래서 집 떠나 있는 게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가끔씩 혼자 있는 이 시간이 무섭게 외로울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이 고독함 속에 한 없이 우울해진다. 그럴 때면 입사하고 얼마 안돼 접한 한 승무원의 비보가 떠오른다. 자살이라고 했다. 파리 체류 중 호텔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다음 날 픽업시간이 다되도록 내려오지 않아 방으로 올라가 보니 죽어있었다고 했다. 그날 밤 그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게 뭐였을까. 혹시 이 원인 모를 외로움이 그 이유 중 하나였을까. 이렇게 깊은 생각에 빠졌을 때, 눈을 꼭 감고 가만히 기도한다. 이 어둡고 두려운 마음으로부터 나를 지켜달라고.


다음날 비행을 마치고 먼 길을 운전해 집에 도착했다. 현관을 여니 켜져 있는 주방불 하나.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모두 잠들어있다. 조용조용 잠 잘 준비 마치고 침대에 눕는다. 양 옆에 동생 한 명씩.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집이다. 

늦은 시간 집은 고요한데, 고독하진 않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늦잠 자고 일어난다. 침대에 누워 들리는 소리,

달그락달그락 엄마 설거지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동생들 떠드는 소리

집이다.


이불을 박차고 1층 주방으로 내려간다.

"우리 점심에 들기름 막국수 해 먹을까?"


함께 있는 시간이 있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고독한 시간이 있기에 모여 떠들 수 있는 시간이 감사한 건데,

이 중요한 걸 자꾸 까먹는다. 잘 적어두고 잊지 말아야지.


친한 언니네서 얻어먹고 온 후 눈에 아른거려 다시 만들어본 막국수. 좋아하는 참기름과 달리 들기름 향은 느끼해 늘 피했었다. 그런데 이게 뭔 일, 너무 맛있었다. 들기름향이 이렇게 꼬숩고 감칠맛 나는 거였나?

<들기름 막국수>

1인분 기준 재료: 메밀면 120g, 올리고당 1/2 숟갈, 액젓 1/2 숟갈, 들기름 2 숟갈, 진간장 1 숟갈, 깨 왕창, 파&김은 취향껏


메밀면은 충분히 삶아 찬물에 헹군다. 메밀면 자체에 간이 되어있으니 양념장을 1/3정도 남긴 후 비빈다. 간을 한 번 보고 기호에 맞게 나머지 양념장을 추가한다. 고소한 향내가 잘 올라오게 깨를 으깨 넣는다. 깨는 손바닥만 사용해도 잘 으깨진다. 파는 생략하지 말고 꼭 넣어야한다. 자칫 기름향에 느끼할 수 있는 맛을 파의 아릿함이 잘 잡아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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