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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굳이,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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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Sep 01. 2024

나 바다수영 좋아하네

Honolulu, HI

나 수영 좋아하네

나 바다 좋아하네

맞아 나 원래 바다수영 좋아했지

잊고 있었네


호텔 객실에 비치된 작은 메모장에 적은 글이었다.

한바탕 수영을 하고 방으로 돌아와 씻은 직후 눈이 반쯤 감겨 휘갈기듯 적은 글.

다음 날 일어나 한참을 바라봤다.

-


근처 마트에서 산 수박 두쪽, 망고맛 콤부차 한 캔, 밥에 구운 생선을 올려 후리가케를 잔뜩 뿌린 돈부리 하나를 챙겨 바닷가로 나선다. 수영복으로 가려지지 않는 다리와 팔에 선크림을 잔뜩 바른 채로. 해변가에 수건을 펼쳐 짐을 두고는 바로 물로 향한다. 뜨거운 모래사장을 지나 물에 발이 닿자마자 온몸이 서늘해진다.  심장이 놀라지 않게 조심조심을 되뇌며 가슴어깨에 물을 적신다. 어느 정도 차가움이 익숙해졌다 싶을 때 온몸을 담근다. 목만 내밀고 ‘십 초만 참자, 십 초만’을 속으로 외치다, 시릴 만큼 차갑던 물이 금세 따뜻하게 느껴져 기분이 좋다. 초등학교 때 다녔던 ‘금호 스포츠센터’에서 평행까지 마스터하고 중학생 땐 학교 수영대회도 나갔던 나였다. 기억나는 건 모든 동원해 이리저리 헤엄쳐 다닌다. 숨이 차오르면 물을 침대 삼아 가만히 떠올라있는다. 떠있을 뿐이다.


그렇게 물을 좋아했는데 너무 오랜만에 수영을 해서일까, 낯선 나를 마주한 것 마냥 신기하다.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난 건지, 새롭게 발견한 건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게 뭐 중요한가, 알게 돼서 다행이지. 나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은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기에, 이번 24시간 레이오버는 더욱 값지다. 그리고 혼자서 치는 물장구에, 기어 나와 한 입 베어문 수박에, 그리고 탁 쏘는 콤부차 탄산에 행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쌓이면 좋아하는 건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조금 불편하게 여기는 건 한 번 더 고민하기도 하고, 살짝 피해 갈 수도 있다. 겁은 많지만 모순적이게 도전정신은 있는 나에게 푹신한 쿠션역할을 해주기도, 단단한 디딤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생이 가도록 끝나지 않을 진로고민에 꼭 필요한 자양분이 된다. 고등학생일 땐 대학교 전공을 정하면 진로고민이 끝날 줄 알았다. 대학생 땐 학교 졸업을 하는 순간 끝날 줄 알았고, 졸업 후에는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면 그 고민이 끝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한 곳에서 일정시간이 지나면 머무름과 변화 사이를 고민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향한 갈망과 익숙한 곳에서의 정착을 저울질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좋아하면서, 잘하는 그 교집합의 영역을 찾고 싶어 한다. 결국 그 어떤 조건보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모든 사람이 받은 이 두 가지 선물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에겐 기쁨이자 유익이 아닐까.


지금까지 삶 속 다양한 여행을 통해 승무원이란 직업이 내게 참 잘 맞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여행 중 발견한 '나'에 대해 쌓인 데이터를 몇 개 적으면 이렇다.


나는 오지랖이 넓다. 자칫 단점처럼 보이는 이 성향은 ‘다른 사람의 필요가 눈에 잘 보인다’는 승무원에겐 꼭 필요한 자질이 된다. 나는 인정받고 칭찬받길 좋아한다. 서비스업은 내 노동에 대한 피드백을 승객의 반응으로 바로 볼 수 있기에 나는 내 일터에서 쉽게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서비스업이 좋다. 나는 정해진 틀을 지키는 걸 중요하게 여기고 실제로 잘 지킨다. 따라서 안전과 보안 관련 규정이 많은 기내 환경은 내게 플러스 요소다. 그 순간에는 별 것 아닌 듯 보여도 쌓이면 '내’가 된다.


이렇게 쌓인 '나'는 누군가 물었을 때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다.


"저 바다수영 좋아해요.

콤부차 좋아하고

혼자 노는 거 좋아해요.

해 아래서 몸 데우는 것도

찬물에 머리까지 담그고 식히는 것도 좋아해요."


다음에 누가 바다 좋아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해야겠다.


오늘 여행으로 잘 알고 있다 생각했던 나에 대해 이렇게 또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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