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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반진반 May 20. 2023

'엉망진창' 심쿵 오케스트라

자습을 했던 나의 고딩 음악 시간이 떠올랐다

(미국일기 #19)


아침부터 딸아이가 바쁘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새벽부터 설치고 있다. 내 하얀 블라우스 어딨어? 한국에서 아직 짐이 도착 안 했잖아. 그럼 카디건을 입어야 하나? 뭐 상관없겠지? 흰 옷을 입어야 한단다. 오늘 학교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다. 엄마 아빠도 가야겠네? 안 와도 돼. 오고 싶으면 와도 되고. 쿨병에 걸린 딸아이는 쿨하게 대답했다.


미국에 와서 처음 학교에 갔더니 오케스트라 수업이라는 게 있었다. 상담 교사는 딸아이가 무슨 악기를 다룰 수 있냐고 물었다. 피아노는 곧잘 친다고 말했다. 교사는 곤란한 표정이었다. 오케스트라에 피아노 자리는 없단다. 딸아이 꼬맹이 시절 바이올린을 두어 달 배운 적이 있는데 지금은 도레미파도 못 친다. 더듬더듬 영어로 얘기를 하니까 덜커덕 적어 넣는다. 바이올린. 학교에 바이올린이 있으니 따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오케스트라 시간은 고역이었다고 한다. 이미 진도가 많이 나간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멍하게 앉아 있었다는 말을 나중에야 들었다. 교사가 신경을 쓴다고 쓰는 것 같지만 워낙 많은 아이들이 있는 오케스트라에서 학생 하나하나를 모두 개인 교습을 할 방법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오케스트라 수업은 특히 그랬다. 할 수 없이 일주일에 한 번 개인 교습을 받았다. 교습을 하는 선생은 다른 공립학교 교사였다. 여기는 교사도 과외를 할 수 있다.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바이올린 소리가 꽤 좋아졌다. 어느 날부터 오케스트라 수업이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한 달 30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발표 연주회를 한다.


아차. 부모도 정장을 입어야 하나. 그래도 연주회인데. 생각해 보니 정장이 없다. 10년 전 KBS에서 뉴스타파로 옮기면서 양복을 한 벌만 남기고 싹 버렸다. 기자를 그만두면서 마지막 양복도 버렸다. 더구나 한국에서 짐이 아직 오지 않아서 재킷 비슷한 옷이 하나도 없었다. 겉옷이라고는 등산 점퍼 하나, 츄리닝 윗도리 하나.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골랐다. 그래도 등산복이 낫네.


기우였다. 사람들은 정말 아무 옷이나 입고 왔다. 반바지도 있었다. 날도 쌀쌀한데. 그리 작지 않은 강당은 관객으로 꽉 찼다. 연주하는 아이들은 드레스 코드에 맞게 여자는 흰 옷, 남자는 검은 옷을 입었다. 제법 그럴듯했다. 지휘를 하는 선생님은 베를린 필 하모닉 수석 지휘자처럼 멋진 옷을 입고 있었다.

 

공연은 세 팀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6학년으로 보이는 아직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팀, 비교적 잘하는 아이들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 팀, 그리고 8학년 모두 참여하는 팀. 중간 팀의 소리는 비교적 들을 만했다. 딸아이는 마지막에 등장했다. 연주 인원이 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엄청난 인원이 등장해서 자리 잡는 데에만 꽤 시간이 걸렸다. 조율을 하는 소리도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연주는 정말 엄청나게 엉망이었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부모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환호했고, 아이들은 발을 구르면서 화답했다. 아이들 볼이 빨갰다. 드디어 1년 수업을 마무리한 오케스트라 교사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다.  


무대에 서는 경험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고 나는 생각한다. 어둠의 경계 바깥쪽 밝은 곳에 서서, 숨죽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의 눈을 마주치는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벅차다? 신비롭다? 아름답다? 1년 동안 열심히 연습한 테니스 선수가 첫 서브를 위해 공을 머리 위로 던질 때와 비슷하다고 할까. 무대에 서면 평소 연습할 때 실력의 반도 안 나올 수도 있고, 오히려 150% 넘어설 수도 있다. 연습과 전혀 다른 실제 상황.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는 절체절명. 그리고 무대 조명이 꺼진 뒤의 뿌듯함. 허무함. 오래 지속되는 여운. 나는 이런 느낌을 대학 때 잠시 경험했다. 딸아이는 이걸 더 일찍 더 많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이 대기실에서 하나씩 빠져나온다. 표정들이 밝다. 부모와 포옹하는 아이들. 뭔가를 이뤘다는 포만감. 안 틀렸어? 엄청 틀렸어. 괜찮아 사람이 많아도 표도 안 나. 기념사진이나 찍을까. 됐어. 쿨병에 걸인 아이는 시크하게 학교 정문을 빠져나간다. 그래도 좋은 기분을 숨기지는 않는다.


초중고 12년 동안 음악 시간에 연주한 악기는 리코더가 전부였다. 다음 중 음악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다음 중 작곡가와 곡의 연결이 바르지 않은 것은? 중학교 연합고사 때 주로 나오는 문제였다. 고등학교 때도 다르지 않았다. 정해진 교과 과정을 이수해야 할 뿐 음악 시간은 다른 의미가 없었다. 가고파나 고향생각 같은 아름다운 가곡을 배운 것이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 고3이 되면서 음악시간은 자습 시간이 됐다. 어느 날인가. 늙은 음악 교사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들을 보더니 갑자기 피아노로 최신가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최신은 아니었다.) 이선희, 김범용, 조용필…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가요를 합창했다. 당시 학교 신문반에 있었던 나는 이런 게 진짜 음악 시간이라고 짧은 칼럼을 썼다. 신문반 담당 교사가 교무실로 호출했다. 선생은 담배를 피우면서 남자는 세 끝을 조심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충고를 했다. 그렇게 나의 음악 시간은 끝이 났다.

동네 극장에서 본 저글링 공연. 내가 본 공연들 중 어이없기로는 다섯 손가락에 들어간다. 덕분에 신나게 웃었다.

지금 사는 곳은 작은 도시에 불과하지만 그럴듯한 극장이 여러 개다. 한 백 년은 넘어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다. 클래식부터 재즈, 블루스, 연극, 스탠드업 코미디, 댄스 등등 레퍼토리가 다채롭다. 극장 주변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공연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관객들은 언제나 (지나치게) 열정적이다. 아마 학교에서 경험한 게 클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을이면 딸아이의 고등학교 1학년이 시작된다. 고등학교에는 오케스트라만 서너 개 있고, 재즈 밴드도 몇 개 있다. 4월에 오디션을 봤다. 연주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보냈다. 중간 수준의 오케스트라에 합격했다. 한국에서 딸아이는 언제나 안쓰러웠다. 여기서는 가끔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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