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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반진반 May 25. 2023

아무튼 테니스  

미국에서 운동하며 느끼는 기쁨과 슬픔

(미국일기 #20)


만나는 사람마다 미국에 가기 전에 골프를 배우라고 난리였다. 특히 미국에서 연수를 하거나 유학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구동성이었다. 미국 골프장은 한국에 비해서 너무 싸다. 경치는 얼마나 좋고 공기는 또 얼마나 좋은가. 부부가 같이 치면 그만한 취미가 없다. 나는 태생이 팔랑귀다. 출국 전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골프 레슨을 했다.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한 2001년은 그야말로 골프의 전성기였다.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연못에 뛰어 들어가 멋진 샷을 날린 게 1998년이다. 골프의 골자도 모르던 사람들이 새벽에 일어나 TV로 중계를 보던 시절이었다. KBS에 들어가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신입 기자들이 골프연습장을 다녔다. 선배들은 골프 부킹에 눈이 벌겠다. 대기업 홍보실과 부처 대변인실은 기자님들 부킹 청탁에 골머리를 앓았다. 부장들은 빗자루든 효자손이든 손에 잡히는 물건이 있으면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스윙을 연습했다. 부장님, 나이스 샷.    


그게 꼴 보기 싫어서 골프는 손도 대지 않았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 비싼 돈을 주고 환경을 파괴해 가며 골프를 쳐야 합니까? 라는 말은 골프를 치지 않는 나를 위한 사후적인 정당화였을 뿐이었다. 그냥 싫었다. 골프를 치는 무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출입처에 가면 으레 물었다. ‘김 기자, 골프 얼마나 치지?’ ‘안 치는데요.’ 어릴 때는 골프로라도 취재원과 친밀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골프 치면서 취재한다는 말은 말짱 뻥이라는 걸.


이제는 기자도 아니고, 내 돈 내고 내가 치는 데, 굳이 안 칠 게 뭐 있나? 북악산 골프연습장에서 드디어 골프채를 잡았다. 레슨을 하는 프로는 꽤 잘 친다고 칭찬을 했다. 입에 발린 말이겠지만 굳이 안 믿을 필요가 있나. 물론 골프는 생각보다 어려운 운동이었다. 가만히 있는 공을 제대로 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리고. 미국에 왔다. 그런데. 미국에서 골프를 치기에는 너무나도 큰 장애물이 있었다.


집 주변을 산책하다 보니 테니스장이 너무 많은 거다. 15면에 라이트까지 구비된 커뮤니티 파크 테니스장은 집에서 5분이면 간다. 뛰어가면 3분이다. 가득 찬 걸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칠 수 있다. 근처 프린스턴 대학에도 테니스장이 있는데 주민들에게도 개방돼 있었다. 고등학교 테니스장도 이용이 가능하다. 웬만한 동네에는 누가 관리하는지 모르는 테니스장이 있고, 누가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 대부분 비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런. 너무 좋잖아.


테니스를 치게 된 건 뉴스타파 동료들 덕분이었다. 아직 3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테린이’다. 한참 재미있을 때다. 당구를 처음 배우면 수업 시간에 칠판이 다이로 보인다고 하지 않았나. 유튜브를 봐도 테니스를 보고, 인스타에서도 테니스만 본다. 아니 알고리즘 때문에 보인다. 막대기만 잡으면 포핸드로 휘둘러 보고, 백핸드도 연습한다. 빗자루로 골프 연습을 하던 부장이 그렇게 꼴 보기 싫더니 딱 그 꼴이다.


재미는 있지만 서울에서 테니스장을 잡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온라인 예약이 열리는 꼭두새벽에 모두 일어나 광클릭을 해야 한다. 운 좋으면 한두 개는 잡을 수 있다. 일대일 레슨은 꽤 비싼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그렇게 꾸역꾸역 테니스를 쳤다. 재밌으니까.


미국에서 테니스를 같이 치는 사람에게 하소연을 했다. 한국은 테니스 치기가 참 힘들다. 웃으면서 대꾸한다. 뉴욕에 가면 똑같다. 대부분 1시간에 100달러 넘는다. 그래도 예약하기 힘들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 많은 곳은 모두 헬이구나.


요즘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쓴다기보다는 쓰려고 준비한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아침에 바깥양반과 딸아이를 아침 먹여서 보내면 8시. 대충 설거지를 하고 책상에 앉아본다. 아. 졸리다. 여기서 침대로 기어들어가면 하루가 끝이다. 잠도 깰 겸 라켓을 들고 커뮤니티 파크로 가본다. 벽치기를 한다. 땀이 난다. 날씨가 좋아져서 요즘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가끔은 아무도 없을 때가 있다. 코트에 가서 서브를 넣어 본다.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다.


야구를 할 때 투수와 포수의 거리가 18미터 좀 넘는다. 테니스는 상대방과 23미터 떨어져서 시작한다. 실제로 서 보면 아득한 거리다. 단식을 하면 가로 10미터 세로 10미터 넓이를 혼자 지켜야 한다. 서브를 할 때도, 리턴을 할 때도 외롭다. 중계를 보면 테니스 경기장에는 코치마저 들어오지 않는다. 페더러도 나달도, 그리고 나도, 테니스장에서는 오직 혼자일 뿐이다. 그 느낌이 달콤하고 또 쌉쌀하다.


혼자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서 묻는다. 같이 칠래? 와이 낫. 혼자 하는 경기지만 반드시 상대가 필요하다. 사는 게 그런 거 아닌가. 그렇게 테니스를 같이 치는 미국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닌 이상한 미국 생활에 테니스가 없었으면 아마도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 아마 골프채를 살 일은 없을 것 같다. 테니스가 있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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