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반진반 Feb 24. 2023

친절한 스미스 씨②

별은 내 가슴에

(우당탕탕 미쿡 일기6)


(앞에서 이어집니다.)

뉴저지의 운전면허 시험장은 꽤나 외딴 곳에 있었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니 덩치가 산만 한 경비원이 입구에 앉아 있었다. 몸피에 비해 너무도 작아서 낚시 의자쯤으로 보이는 물건에 거의 누운 것처럼 기대 있었다. 저 자세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묘기였다.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예약을 했는지 따위를 물어보고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지시를 내렸다.


시험장은 말 그대로 인종 박물관이었다. 나처럼 동양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노란 사람들은 비교적 소수였다. 스패니쉬를 사용하는 남미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피부가 검은 아프리칸 어메리칸도 적지 않았다. 인도, 파키스탄 쪽이나 중동 쪽도 자주 보였다. 이상한 건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백인은 거의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운전면허는 이민자들만 따나? 미국 본토 사람들은 따로 시험을 치나?  미국 사람들은 어릴 때 다 따서 그런 걸까? 그러고 보니 경비원과 창구 직원,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유색인종이다.


예약 명단을 체크하는 직원이 종이 양식을 한 장 주면서 빈칸을 채워서 반대편 창구 앞 대기석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바로 옆에 서류를 작성하는 책상이 있어서 다가갔다. 헤이. 아이 세드 유 해브투 블라블라 오버 데어. 저리로 가라는 얘기다. 오케이 오케이. 아 윌 고 데어 저스트 애프터 아이 컴플릿 디스.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살이 찐 직원은 힘겹게 허리를 펴고 나를 노려봤다. 집게 손가락을 세워 와이퍼처럼 돌렸다. 노노. 손가락으로 다시 나를 찍었다. 방향을 돌려 반대편 책상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라는 뜻이었다. 여기나 거기나 책상은 많이 비어 있었다. 아이 저스트… 직원은 아예 눈을 감고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두번 돌렸다. 다시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어차피 비어 있는 책상을 잠깐 사용하는 게 문제인 건지, 지시를 빨리 이행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건지, 직원은 내가 자리를 옮길 때까지 뒤통수에 레이저를 쐈다.


운전면허 시험은 인내력 테스트였다. 20분쯤 줄을 서서 아이디 체크라고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번호표를 줬다. 대기석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창구에서 시험을 등록했다. 인터넷으로 예약할 때는 30분 단위로 시간을 정하게 돼 있었다. 한 달 전에 아침 9시에 예약을 한 건 도대체 무슨 소용이었을까.


막상 필기시험 자체는 어렵지도 않았고,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패쓰. 이제 끝이구나. 당당하게 창구에 가서 말했다. 아이 패쓰트 더 테스트. 직원은 의사가 차트를 쓰는 듯한 글씨체로 서류에 이것저것 적었다. 그리곤 다시 아이디 체크를 하러 가라고 지시했다. 아이 올레디 디드 아이디 체크. 아이 노. 유 해브 투 어겐. 다시 줄을 서서 아이디 체크를 받았다. 다시 번호표를 준다. 대기 번호는 아침보다 더 길었다. 두 시간을 더 기다렸다. 창구에서 마지막 서류 체크. 아침 9시에 왔는데 오후 2시가 넘어야 일이 끝났다.


진이 빠졌다. 아침 점심을 모두 굶어서 배가 고팠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아이디 체크를 왜 두 번 하는지, 시간을 예약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같은 걸 여기에서 또 저기에서 왜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묻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불합리한 시스템을 다들 아무 말도 없이 참아내는 이유는 당연하다. 딱 한 번만 참으면 내 일이 아닌 게 돼 버리기 때문이다. 군대 같은 거다.  


위압적인 경비원의 분위기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한 행정시스템은 운전면허 시험장 말고도 여러 곳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사회보장번호라고 부르는 SSN을 신청하러 SSA(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 갔을 때, 그린카드 관련해서 USCIS(Citizenship and Immigration Service)를 방문했을 때도 비슷했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이민자들이 주요 민원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고 미국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를 상대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오랜 경험에서 '강압적인 태도가 효율적'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원인이 무엇이건 이민자의 나라, 이민자가 세운 나라는 이민자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함바집 같이 생긴 이곳이 뉴저지 운전면허 시험장이다.


한국에 하이패스가 있다면 미국에는 이지패스(EZ PASS)가 있다. 톨게이트 비용을 자동으로 정산해 주는 시스템이다. 이지패스 없이 뉴욕에 갔다가 돈을 낼 수 있는 톨게이트가 없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이지패스 없으면 공짜인가? 그럴리가. 나중에 어김없이 빌이 날아온다.

 

어쩔 수 없이 이지패스를 신청해서 설치를 했는데 기계에 문제가 생겼다. 물어보니 우편으로 보내든가 사무실로 가지고 오라고 했다. 딸 아이가 USCIS에 가서 지문을 찍어야 하는 일이 생겨서 겸사겸사 근처 이지패스 사무실에 들렀다.    


날이 추운데 문 앞에 10여 명이 줄을 서 있다. 디스 라인 이즈 포 이지 패스? 그렇단다. 줄이 줄어들 생각이 없다. 이지패스 정산이 잘못되거나 문제가 생긴 민원인들인 모양이다. 직원이 한 명 나와서 손가락 세개를 세워 흔들면 쓰리라고 말했다. 세 명 더 들어오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한 시간을 기다렸다. 내 앞에 앞에 흑인 남녀는 부부로 보였다. 바로 앞 사람은 히스패닉. 내가 뭐 좀 물어보겠다고 말을 걸었더니 나보다 더 영어를 못 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 직원이 나와서 쓰리를 외쳤다. 우리가 쓰리였다. 쓰리는 고했다.


건물에 들어가니 바로 창구가 있는 게 아니고 복도에서 다시 대기해야 했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야 창구가 있었다. 그래도 따뜻한 온기가 반가웠다. 쓰리를 외친 직원은 줄을 세우는 게 업무인 모양이었다.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전화로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차. 쓰리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눈이 마주쳤다. 그래. 나도 미국 짬밥 한 달이다. 씩 웃으면서 눈인사를 보냈다.


쓰리는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좌우를 둘러 봤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나한테 하는 이야기였다. 아이 세드 쓰리. 그러면서 눈동자를 밖으로 튕기면서 나를 나가라고 지시했다. 응? 아이 노 유 세드 쓰리. Those two are one team. So one, two, and me, three. 쓰리는 집게 손가락을 들어 다시 와이퍼를 그렸다. 여기서 가리늦게 <별은 내 가슴에>가 유행했나? 다들 차인표였다. 아이 세드 쓰리 퍼슨스. 아웃. 복도는 쓰리가 아니라 식스 정도는 기다릴 정도로 넓었다. 별 수 없었다. 쓰리는 나갈 때까지 나를 노려봤다. 바깥 공기는 차가웠다. 젠장. 10분 정도를 밖에서 더 기다렸다. 실제로 민원을 해결하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지 패스 민원실은 이민자들의 공간이 아니다. 그럼 여기는 분위기가 왜 이럴까. 추정하면 이렇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민원을 해결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부당한 요금을 따지는 사람은 인터넷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게다가 몇 푼 되지도 않는 요금을 따지려고 1시간 동안 줄을 서는 사람의 경제 수준은 매우 낮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런 분위기’는 이민자에 대한 것이 아니고 경제적 약자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 동네 학교라는 곳을 둘러싼 공간에서 교사와 경찰은 주민에게 한없이 친절했다. 이건 혹시 내가 사는 마을이 비교적 부유한 동네여서가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불특정 다수에 대해서는 친절하지만 사회적 약자로 그룹핑이 되는 순간 그 대상에게는 친절할 필요가 없다는 모종의 사회적 묵인이 미국에 있는 건 아닐까. ('작은 완장 효과'도 분명 작동했을 거다. 작은 완장이 부여하는 권력은 작지만 달콤하다. 그런데 약자는 절실하다. 절실한 자는 불평하지 않는다. 권력을 강압적으로 행사해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권력을 휘두르면 일이 편해진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친절해도 그만 안 친절해도 그만이라면 사람은 편한 쪽을 선택한다.)


그렇다고 미국이 유별나게 이중적인 사회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조선족이나 동남아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나, 임대주택 거주자나 기초생활대상자 같은 경제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자. 한국이라고 다를 게 있나. (10년 전 쯤 옷을 좀 험하게 입고 다닐 때, 여의도 증권가 빌딩에 화장실을 쓰러 들어 갔다가 대판 싸우고 쫓겨난 적이 있다. 거기 경비도 아마 직원이나 투자자에게는 친절한 사람이었을 거다.)


미국이 친절하다고 과도하게 감동할 필요도 없고, 불친절하다고 필요 이상으로 비난할 필요도 없다. 미국이나 우리나 작동하는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친절 편 끝)

이전 05화 친절한 스미스 씨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