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동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을 찾아 아침 일찍 나선 건 매우 매우 논리적인 결론이었다. 머릿속의 로직은 이랬다.
1. 미국은 기본적으로 인건비가 비싼 나라다. (뉴저지 같은 경우만 해도 최저임금이 14달러가 넘는다. 우리 돈으로 13000원 정도다.) 2. 인건비는 비싼데 인력은 우리보다 더 많이 고용한다. 업무가 매우 잘게 쪼개져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은행은 청경이 안내 업무도 하지만, 여기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3. 식당은 매우 매우 서비스 집약적인 사업이다. 4. 고로 비쌀 수밖에 없다.
오케이. 식당은 덜 가면 된다.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을, 특별한 서비스를 받아가며 먹고 싶을 때 가자. 다음.
1. 미국은 땅덩어리가 엄청 큰 나라다. 2. 그 큰 땅에 밀 심고 옥수수 농사짓고, 소 키우는 일차 산업 발달한 건 당연하다. 이런 건 한 100년 전쯤 학교라는 곳에서 어렴풋이 배운 것 같다. 남북전쟁도 목화 농장 때문에 벌어진 거 아닌가. 한국 같이 작은 나라한테까지 소고기 팔려고 무리를 하다 사달이 났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다. 3. 고로 농산물은 분명 쌀 것이다.
육케이. 싸고 풍부한 미국의 농산물을 사서 맛있는 한국 요리를 해 먹자. 근거는 없지만 요리는 나름 자신이 있다.
너무 아픈 기대는 기대가 아니었다. 미국 농산물 물가도 만만치 않았다. 지역마다 다르고 마트마다 달라서 일대일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 품목이 두 배 정도 비싼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시금치 한 단에 3-4천 원 했으면, 스피니치는 6-7천 원 정도. 물론 여기에 세금이 붙는다.
가끔 미국이 싼 것도 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는 전반적으로 저렴하고(저렴하다는 건 우리와 비슷하다는 뜻), 우유 달걀도 비슷하다. 파스타는 다양하기도 하지만 한국보다 싼 것 같다. 소주는 비싸지만 맥주도 싸고, 와인도 괜찮다. 위스키, 럼 이런 건 더 싸다. 주당에게는 어쩌면 천국일지도. 나야 술만 먹고살 수 있지만, 나에게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가족이 있다.
플러스하고 마이너스하고 퉁쳐서 평균 잡으면, 일주일치 장을 볼 때 한국에서 10만 원 들었다면 여기는 20만 원 정도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들었다. 미국은 동네마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라고 장터가 있다고. 여기는 매우 싸다고. 귀가 간질간질했다.
칠케이(여기까지 할 거다). 어디나 살 길은 있는 법이다.
구글에서 검색을 하니까 프린스턴 파머스 마켓은 기차역 근처에서 매주 목요일에 열린다. 영업시간은 아침 10시에서 2시까지. 짧은 영업시간. 역시 근거는 없지만 뭔가 신뢰가 간다. KFC 할아버지 같이 생긴 농부들이 채소와 과일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반값으로, 반의 반값으로 신나게 팔아치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목요일 아침에 바깥 활동을 하시는 두 여성분들 아침을 해서 먹여 보내고 서둘러 시장으로 향했다. 차는 출근을 하시는 분이 타고 가서 걸어가야 했다. 백팩에 장바구니를 세 개 챙겼다. 40분쯤 걸렸다.
여기가 맞는데… 지도에 찍힌 곳은 주차장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찬바람만 부는 주차장 주변을 헤매고 다녔지만 KFC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구글맵에 들어가 보니 분명 OPEN이라고 쓰여 있는데. 기차역에 편의점이 보였다. 한참을 걸어가서 물었다. 웨얼 이즈 파ㄹ머스 마ㄹ켓. 사람들이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요즘 좀 굴리고 있다. 더 못 알아듣는 것 같다. 오버 데어. 노노. 이 사람아. 아무도 없잖아. 에헤이. 오늘은 마켓 없다. 설명을 들어보니 매주 있는 게 아니라 한 달에 두 번 열린다고 한다. 에라이. 구글도 별 수 없군.
하지만 기대는 더 부풀어 올랐다. 5달러 하는 감자를 2달러에 사고, 10달러짜리 사과를 5달러에 사는 꿈을 꿨다. 여기는 천국인가. 일주일 뒤 다시 도전. 보인다. 저기. 미국 영화에서 보던 진짜 미국 시장.
입구에서 한 없이 성실해 보이는 일단의 무리가 노숙자를 돕기 위한 모금을 하고 있었다. 현금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있었다.) 카드도 된다고 한다. 흠. 일단 장을 좀 보면 안 될까요. 시선을 피하고 모금단을 따돌렸다. 물건을 둘러봤다. 싱싱하다. 때깔이 곱다. 탱탱한 토마토가 터질 것 같다. 사과에서 윤기가 흐른다.
가격표를 보면 대개 lb(파운드) 당, oz(온스) 당 얼마라고 쓰여 있다. 뭐냐 너희들은. 어디 소속이냐. 당최 와닿지 않는다. 그렇게 싸지 않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감이라는 건 무섭다. 아쉬운 김에 몇 개 골라 담아서 계산을 해 봤다. 응? 진짜 뭐냐 너희들은. 그날 산 물건은 아래와 같다.
저렴하다고 소문난 파머스 마켓에서 장을 보고 절망에 빠졌다.
아기 주먹만 한 토마토 두 개 6.59달러. 자두 크기 사과 다섯 알 5.32달러. 국 한 끼 끓여 먹기도 힘든 200그램짜리 시금치 한 통 3.5달러. 그러니까 이 토마토 한 알이 4300원이라는 거지? 콩만 한 사과는 한 알에 1400원이고? 시금치는 4500원? 이게 합해서 2만 원? 에라이.
집세(임대료)는 기본 5백에, 외식은 엄두를 못 내겠고, 장바구니 물가마저 비싸면,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더구나 한국에서는 맞벌이였는데 지금은 외벌이. 미국이라는 비싼 동네에서 나는, 우리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노후는? 편의점 알바라도 해야 하나? 주판을, 아니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