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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n 02. 2024

돌싱공화국 - 6

이혼하면 어때 #38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마음은 실망으로 가득 찼지만 내 몸은 여태 살아온 대로 그녀를 맞이했다. 국민학교 시절 바른생활 과목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괜찮은 여자였다. 밝은 성격과 좋은 매너, 그리고 적당한 유머를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했던 외모도 계속 보니 사진과 비슷해 보였다. 아마 사진은 당시 유행했던 어플로 보정이 된 상태였겠지. 받은 사진에 대여섯 살 정도 더하면 지금 보고 있는 외모와 비슷하겠다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신 뒤 식사를 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되자 그녀는 나의 피드백을 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Go 냐, Stop이냐를 묻는 것 같았다.


난감했지만 확실히 해야겠지.

나의 기준에서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지인으로 좋은 사람.


애인으로 발전하기에는 미묘한 실망감이 계속 뇌리에 남아있었다. 다만 모임에 나가면 많은 남성들이 좋아할 것이 분명했기에 안타까운 마음마저 생겼다.


"당신은 좋은 분이에요. 외모도 이쁘시고요. 다만, 저는 아직 사귈 생각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단호하게 말을 했지만 그녀는 수긍하지 않았다.


"그냥 만나 보는 건 괜찮잖아요? 저 괜찮은 사람이라며요. 다시 한번만 생각해 봐요."


그녀는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만나는 사람이 없고 시간은 흐르니까.

그녀는 슬픈 눈으로 다시 말했다.


"... 우리 몇 번만 만나봐요. 생각이 바뀔 수 있잖아요."


이런 상황은 나이와 관계없이 어색했다.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럼... 그냥 알고 지내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보통 이런 멘트는 여성이 하는 것인데. 내 주제에 이런 말을 할 줄이야. 결국 애매한 여지를 남기고 그날 우리는 헤어졌다.

긍정적이지 못하게 헤어졌지만 우리는 꽤 가까워졌다.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던 나는 그녀의 보조에 맞추었다.


몇 주를 보내는 동안 연락이 잦았다. 그 사이 세 번을 따로 만나 식사를 했다.

나는 충분히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첫 만남의 괴리감이 해소되지 못했다.

남자 입장에서 사귀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설픈 마음은 그녀에게도 좋지 않을뿐더러 결국 끝이 좋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의 만남을 더하고 진전되지 않는 마음을 전달하기로 각오했다. 처음 의도처럼 그냥 아는 사이로는 만족 못하는 그녀. 그렇다면 내가 결론을 내줘야 했다.


***


인생은 알 수 없는 우연의 반복이다.

당장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고 그것에 대항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다만, 살면서 체득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가까운 미래를 최대한 현명하게 예측하고 가장 긍정적인 설계로 만드는 것이 지금 현 시간에 내가 하는 일이겠다.


한 시간 뒤, 하루 뒤, 그리고 일 년 뒤, 십 년 뒤.

점점 시간을 늘려가며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설계해 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허황된 미래가 아닌 실현가능하고 준비된 행복을 맞이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했다. 혹자는 늦었다고 할지도 모르는 중년의 나이에 수능을 앞둔 수험생처럼 매일매일 준비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남은 인생에 대한 행복을 설계하기 위해.

그날의 서러움을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샤워를 끝내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그리고 남겨진 메시지 한 통.


-시간 되시면 커피 한잔 해요. 제가 **역으로 갈게요.


몇 달 동안 못 봤던, 온라인 카페 생활의 처음을 열어주었던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이 메시지를 한참 쳐다봤다. 나는 이 여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가.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고 또 고민해 보고.


-네. 알았습니다.


답장을 보내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전신 거울에 옷매무새를 정비하고 바라본 내 모습.


그런데,

입꼬리가 웃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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