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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n 02. 2024

돌싱공화국 - 5

이혼하면 어때 #37

만나요.


대담하게 만남을 청하는 '일챗'이 왔다. 일챗은 통상 온라인 카페의 채팅서비스로 회원 간 채팅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추진되는 만남을 '일벙'이라고 그랬던가.


카페 가입 후, 독서 클럽 회원을 제외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다. 만남을 신청한 회원은 게시글도 없어 정체를 알 수 없었고, 나에게 보낸 출생 연도와 사는 지역 정도가 다였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것.


서로에 대한 괜한 실망과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어떤 사람인지, 외모는 대략적으로 어떤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염치없게도 나의 부족함은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하지만 그녀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만남에 대한 즉답을 피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친분을 맺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카톡으로 대화를 해도 될까요?"


최소한 카톡을 공개할 정도면 사기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요."


어쩌면 무례할 수 있는 내 요청에 흔쾌히 알았다고 대답하는 그녀. 그렇게 우리는 카톡 친구로 등록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나의 망설임을 눈치챈 그녀는 선수 쳤다. (다른 의미로도 선수였고.)


"키는 170이고, 이 사진이 최근 모습이에요. 어디서 외모가 못나다는 소리는 안 들어요."

"헛. 제가 못났는데 그걸 걱정한 건 아니고요. 제가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정곡에 찔린 나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메신저로 전송된 사진을 보고 있었다.

헐.

다시 한번 확대해서 보고.

이렇게 이쁘다고!!

말도 안 되게 이뻤다. 연예인 뺨치는 비율과 귀여운 얼굴은 내가 왜 고민하고 있었는지 원망할 정도로.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사진전송. 열 장 정도 보낸 그녀가 말했다.


"다 제 사진이에요."

"... 너무 이쁘신대요. 인기 많을실 것 같은데. 왜 저에게... "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왜 이런 미인이 이렇게 적극적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태세전환.

나의 간사스러운 마음은 곧 대화의 질로 나타났다.


"정말 현명하시네요. 저는 한번 정하면 변하지 않는 일편단심의 의지, 바다와 같은 마음과 선량한 심장을 지닌 대한민국 남자로서..."


대화가 계속될수록 나의 호감은 커져갔다. 주섬주섬 잘 나왔다고 생각되는 사진을 몇 장 찾아 카톡으로 보냈다. 누가 봐도 볼에 바람 집어넣은 아저씨 사진 몇 장을.

그녀는 나의 못난 사진에 개의치 않았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제 망설이지 않고.


"그럼 오늘 만날까요?"

"훗. 네. 다만 오늘 근무 복장임을 이해해 주세요."


왠지 오늘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만남을 청했지만 오늘은 아니었을 것이다. 벼락치기로 만나는 이 짜릿함이 나의 마음을 20대로 복귀시켰다.


퇴근 전까지 그녀와의 만남을 상상하며 뜻밖의 행운에 감사했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흡연실만 들락날락 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40대의 나이에 어쩜 이리 고운지. 이혼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별의별 상상과 망상 중에 퇴근 시간이 되어 후다닥 회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보다.

같이 주문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약 십분 후.

저 도착했어요.


카톡 알림이 왔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저는 보이는데.

그녀의 두 번째 카톡 알림.


다른 층이 있는 카페인지 몰라 주변을 돌아봐도 단층 카페였다.

분주하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누군가 쳐다보는 시선을 느껴 고개를 돌렸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사실과 정보의 불일치가 나에게 혼란을 주었다.


사진과는 다른 여자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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