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염을 위한 음식
“아야야!”
화장실에서 남편이 비명을 질렀다. 얼마 전 내과에 가서 남편의 폐렴이 거의 다 나았음을 확인한 후 한시름 놓고 있던 나는 깜짝놀라 화장실로 뛰어갔다.
"왜 그래요?"
달려가 물으니 남편은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변기에서 일어나다가 갑자기 무릎이 너무 아파...”
화장실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는 한 발짝 걷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 있었다. 황당함도 잠시, 우리는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하필이면 또 일요일 저녁이었다.
지난번 폐렴이 발병했던 새해 첫날에 이어 이번에도 병원이 거의 문을 닫은 날이었다. 겨우 문을 연 정형외과를 찾아갔지만, 엑스레이밖에 찍을 수 없었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내일 MRI를 찍어보세요”라는 말만 남겼다.
"오빠 몸이 병원 문 닫는 날들만 골라서 아픈 가봐요. 하하"
나는 남편을 부축하면서 나름대로 농담을 해가며 웃어 보였다.
"그러게 말이야."
남편은 마지못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좀 더 큰 병원에서 MRI를 찍었다. 결과는...
남편의 무릎 안쪽 연골이 찢어져 있었고, 그 연골에서 생긴 염증이 무릎에 물을 차게 한 것이었다.
주사기로 무릎에서 물을 빼내니 노란 물이 12ml나 나왔다. 그제야 왜 남편이 다리를 펴지 못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남편은 서울에 다녀오며 무거운 롱패딩을 입고 2만 보를 걸었다.
"무릎이 좀 불편하네" 하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막연히 좋아지려니 하고 생각했던 우리는 초기에 병원에 가지 않았고 사태를 키우고 말았다.
남편은 연신 소염제를 먹으며 무릎을 쉬었지만, 그로 인해 다른 문제들이 이어졌다.
하루 종일 앉아만 있다보니 당연히 소화력이 떨어졌고, 달달함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
며칠 만에 배가 부풀어 올랐다. 무릎이 조금씩 나아지는 대신 전체적인 몸의 염증은 점점 심해지는 듯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오래전 만났던 ‘야채 스프’가 떠올랐다.
그래, 지금 남편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거다!
항암제 연구로 노벨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셨던 마에다 히로시 교수님의《최강의 야채수프》를 읽었을 때, 야채가 병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잡는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겨울이라면 브로콜리 스프가 딱이라고 했다.
브로콜리 기둥을 껍질 벗겨 작게 잘라 올리브유 1t 를 더해 약불에서 볶고, 비슷한 크기로 자른 양파, 당근, 양배추, 무와 함께 물을 부어 센불에서 끓였다가 물이 끓은 후 뚜껑을 닫고 약불에서 30분 동안 끓였다.
하지만...
“맛없어. 뭐 하나 딱 잡히는 맛이 없어.”
남편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 후 찾은 배우 문숙 님의 야채 스프 레시피는 완전히 달랐다.
양파를 캐러멜라이즈하는 과정이 이 스프의 핵심이다. 냄비에 코코넛 오일과 양파를 넣고 약불에서 천천히 볶아주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파의 고소하고 달달한 향이 퍼지기 시작하면 성공이다.
그다음, 같은 크기로 썬 당근, 샐러리, 단호박(또는 고구마)을 넣어준다. 천천히 볶으면서 채소들이 자연스러운 단맛을 내도록 돕는다.
소금을 더해준다.
한 시간 정도 불려둔 렌틸콩과 토마토(생토마토나 토마토 퓨레)를 추가하고, 재료가 고루 섞이도록 가볍게 볶아준다.
물을 자작하게 붓고 센 불에서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이고, 월계수잎을 넣어 은은한 향을 더한 뒤 20~30분간 천천히 끓인다. 국물이 채소의 풍미를 충분히 머금었다면 완성이다. 다진 파슬리(혹은 건조된 파슬리)를 위에 뿌려준다.
파스타 면 중 펜네 면을 렌틸콩 대신 넣어서 만들어 보았을 때는 맛은 좋았지만, 파스타 면이 익을 때까지 냄비 바닥에 눌러붙지 않도록 내내 저어주어야 해서 조금 피로한 감이 있었다.
이 야채스프 위에 체다 치즈 한 장을 얹거나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뿌려 먹어도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자. 이번엔 어때요?"
뜨끈한 스프 한 그릇을 남편에게 내밀었다.
스프를 한 입 떠먹은 남편의 얼굴을 보니 이번엔 드디어 합격이었다.
"맛있어. 캬라멜라이즈된 양파에서 나오는 풍미도 있고, 씹는 맛도 있고, 고구마에서 나온 단 맛과 토마토의 신맛의 조합도 좋아."
"당분간은 달달한 음식이 당길 때마다 설탕 들어간 음식 대신 이 야채스프를 드세요. 몸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계속 만들어 드릴게요."
맛없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겠다는 남편의 철칙(?) 덕분이다.
몸에 좋으면서 맛도 좋은 요리를 찾고 연구하게 되는 건.
고마워요 남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