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항염 음식
한국 사람의 뼛속에는 된장찌개가 깃들어 있는 게 아닐까. 삼국시대부터 서민 양반 할 것 없이 밥상 위에 올려 왔던 음식이니까 말이다.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마다 엄마가 해주던 된장찌개에 대한 보글보글한 추억들이 서려 있는 것 같다.
된장찌개는 만드는 방법이 복잡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단순하지도 않다. 집집마다 '우리집 된장찌개'의 고유의 맛이 있다. 서울의 엄마라면 담백하고 간결한 맛의 된장찌개, 강원도의 엄마라면 산나물과 들나물을 넣은 된장찌개, 충청도의 엄마라면 재료를 많이 넣지 않은 간소한 스타일의 된장찌개를 끓이는 경우가 많다. 같은 지역에 살아도 우리집과 옆집의 된장찌개 맛이 또 다르다. 이탈리아의 엄마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파스타를 만들어 가는 것처럼, 한국 엄마는 '나만의 된장찌개'를 만들어 간다.
내게는 엄마의 된장찌개가 그 어떤 된장찌개보다도 맛있었다. 엄마는 전라남도 보성의 사람으로, 된장찌개 하나에도 풍성함을 담았다. 엄마의 된장찌개는 고기며 야채가 넘쳐났고, 국물은 걸쭉하며 진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끓여 놓으신 된장찌개가 식탁 가운데 놓였을 때의 푸근함과 반가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집 안에서도 다시 집 안에 들어선 것 같은 따뜻함이었다.
걸쭉한 된장찌개를 듬뿍 떠서 밥 위에 얹고, 슬슬 비벼 먹으면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었다. 비빈 밥을 김에 싸먹기도 하고, 김치를 한 조각 얹어서 먹기도 하고, 김치 잎사귀에 싸먹기도 하고, 그냥 먹기도 하고.
엄마의 된장찌개로 차려진 식탁은 그야말로 미각의 놀이터였다.
엄마가 해주던 된장찌개를 먹고 자란 탓인지, 나도 된장찌개를 진하게 끓이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끓이는 된장찌개는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엄마는 소고기를 넣고 끓였고 나는 고기를 넣지 않고 끓여서인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엔,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많은 비결들 중 하나는 제철 채소를 넣는 것이다.
봄에는 봄나물을 넣은 된장찌개,
여름에는 애호박 같은 여름 야채들을 넣은 된장찌개,
가을에는 시래기나 연근 같은 뿌리 채소들을 넣은 된장찌개,
그리고 지금같은 겨울에는 무와 배추, 그리고 겨울에 특히 맛있는 느타리 버섯과 팽이 버섯을 넣은 된장찌개를 끓인다.
겨울에 끓이는 된장찌개는 움직임이 적어지는 때에 몸이 소화가 잘 되도록 도와주고, 체온이 내려가면서 쉽게 심해지는 염증도 잡아준다고 한다.
냄비나 뚝배기에 참기름을 여유있게 넣고 1cm 길이로 자른 파를 약불에 천천히 볶으면서 파기름을 낸다.
파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다진 마늘을 넣어 볶아 향을 돋운다.
전체 사용할 된장의 1/3 정도와 진간장, 조청, 그리고 멸치액젓을 넣고 볶는다.
다시마를 불려둔 쌀뜨물을 처음에는 자작하게 부어 센 불에 끓이다가, 물이 끓으면 나머지 쌀뜨물을 넣고 끓인다.
익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야채부터 순서대로 넣어 끓인다.
무우가 부드러워질 때쯤 감자를 넣고,
그 뒤로 양파, 배추, 느타리 버섯, 팽이 버섯을 넣고 끓인다.
나머지 된장과 생강가루(1/4 꼬집 정도만)를 물에 풀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야채들이 다 익으면 불을 끄고 10~20분 정도 두면 국물이 더 맛있어진다.
먹기 직전에 두부를 넣고 한 소끔 끓인 후 다진 파와 약간의 참기름을 둘러주면 완성이다.
"내가 먹어본 된장찌개 중 가장 맛있다."
남편이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했던 가벼운 칭찬 한마디에 마음이 찡해졌다.
남편은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해주려고 괜시리 허튼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걸 아니까.
엄마의 된장찌개가 내 안에 있는 것처럼,
엄마의 산소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내 안에 있는 그 맛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엄마의 정겨운 식탁에 언제든지 가서 앉을 수 있을 것처럼,
아내만의 된장찌개가 있고, 그 된장찌개가 가장 맛있다는 건,
남편의 마음 속에 된장 맛으로 기억되는 우리의 집이 지어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