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몸을 데펴주는 음식
약 십 년 전,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 시절의 일이다.
요리에 서툴렀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고사리 나물에 도전했다. 그런데 고사리는 그저 데쳐서 간만 하면 되는 나물이 아니었다.
건고사리를 몇 시간이나 물에 불렸다가, 또 한참을 삶아야 하고, 뜸까지 들여야 하는 고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이마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볶아낸 고사리를 반찬 그릇에 담아내고, 두근두근 남편의 반응을 기다렸다. 남편이 한 입 먹고 맛있다고 하면, 그때 이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감동을 배로 만들 참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남편은 고사리 나물을 보더니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대충 한 젓가락 떠넣고는 "응." 한마디. 그리고 끝.
다시 말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나는 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평소 같으면 맛이 없으면 없다고 솔직히 말할 남편인데, 왜 오늘은 저렇게 어정쩡한 반응인가? 전에 만든 두부조림이 너무 많이 구워서 딱딱하다고 단칼에 거절했던 사람 아닌가? 결국 꿍한 마음으로 고사리 나물 한 접시를 혼자서 다 먹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남편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고사리가 정력에 안 좋대..."
순간 나오려던 눈물이 싹 들어갔다. 남편은 어릴 때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듣고는 그때부터 고사리를 멀리했다고 한다. 혹시라도 정력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그 말을 듣자마자, 섭섭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나는 오히려 남편 정력의 충직한 수호자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식탁에서 고사리는 사라졌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고사리가 정력에 안 좋은 걸까?
알고 보니, 오해도 이런 오해가 없었다. 고사리는 오히려 성질이 따뜻하고, 나물 중에서도 단백질 함량이 높은 데다 기력 회복에도 좋은 음식이었다.
그제야 나는 다시 고사리를 식탁에 올렸다. 남편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더니, 먹으면 먹을수록 고사리의 깊고 진한 맛에 빠져들었다.
고사리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두려워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쩌면, 우리는 두려움을 핑계 삼아 어떤 기회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깊어가는 오늘, 나는 따끈한 고사리 무국을 끓였다.
고사리도, 무도 속까지 따뜻한 성질을 지녔다.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기운을 품고 있어, 이런 날 한 그릇 뜨끈하게 떠넣으면 몸이 훈훈해지고 속까지 든든해진다.
건고사리를 미리 삶아서 불려 놓거나, 아니면 아예 삶은 고사리를 구매한다.
냄비에 파를 손가락 길이로 썰어 넣고, 무는 나박하게 썰어 들기름과 함께 약불에서 볶아준다.
어느 정도 익으면, 삶은 고사리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넣고 함께 볶는다.
여기에 국간장, 된장, 생강가루, 고춧가루를 살짝 더해 감칠맛을 살린다.
이때 중요한 팁 하나! 된장 & 생강가루의 양을 조심할 것!
된장이 너무 많으면 된장찌개인지 고사리무국인지 헷갈리게 되고,
생강가루가 과하면 다른 맛들을 모조리 덮어버린다.
(2인분 기준, 된장 1티스푼, 생강가루는 정말 손톱 때만큼!)
물을 붓고 (가능하면 쌀뜨물) 다시마 한 조각을 넣고 끓인다.
10분 정도 끓이다가 다시마를 건져내고, 멸치액젓과 소금(죽염)으로 간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들깨가루를 한 큰술씩 넣어 고소한 맛을 더하고,
감칠맛이 부족하다 싶으면 갈색 설탕을 한꼬집 (정말 몇 톨만!) 넣어준다.
국그릇에 옮겨 담고, 마지막으로 들기름 한 큰술을 살짝 둘러준다.
이 들기름이 바로 강한 감동을 남기는 강력한 한 방이다.
겨울 한복판에서, 따뜻한 국 한 그릇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