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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Mar 08. 2023

이혼이 이렇게 반가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연애 때도 못 느껴본 지금 나의 세상은 핑크빛입니다.

연애 때도 못 느껴본 지금 나의 세상은 핑크빛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나이 서른에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을 걱정합니다.


"혼자서 어떻게 애 키우면서 살려고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내가 조금조금 모아놓은 돈도 어찌 알고 기가 막히게 얻어내 갑니다. 아들 먹으라고 남겨놓은 마지막 소시지 반찬도 지입으로 날름 집어넣는 사람입니다.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내 인생에 방해꾼입니다.


이혼이 확정되고 나는 족쇄를 풀고 나온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쓰지도 않고 본 적도 없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도박빚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벌어서 계획 있게 쓴다면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 사람 하나만 정리가 되어도 나는 정신적으로도 삶의 질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제 비로소 지구상에 산소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난 창피하거나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누구보다 정직하게 살았고 아이들에게 헌신하며 앞으로도 살아 갈 겁니다.


"이렇게 간단 할 일이면 진작에 헤어지지 그랬어~"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날 걱정해서 겠죠.

그렇지만 난 이 말이 가장 맘에 아픕니다. 그렇다면 나는 둘째를 못 만났을테니까요..

그간의 나의 고생은 철없던 사람이 아직 엄마가 되기엔 부족함이 많아 몸소 느끼란 큰 뜻을 가진 신이 나에게 내려준 가르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신의 계획이 맞다면 정말 위대한 신임을 자부합니다.



남편이 내게 아이들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됩니다. 솔직히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직장도 없는 사람이 무슨 돈으로 양육비를 보낼까요. 혹시 운이 좋아 도박으로 번 돈으로 양육비를 보낸데도 난 그런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런 돈으로 내 아이를 키우고 싶진 않습니다.


이혼이 이렇게 반가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연애 때도 못 느껴본 지금 나의 세상은 핑크빛입니다.


이제 아이 앞에 싸우지 않아도 되고, 술 취해 들어와 자고 있는 사람을 더 이상은 볼 일이 없습니다.

양육비도 못 받고 있고 위자료도 없습니다. 살던 집을 팔아 내 손에 남은 1500만 원이 그간 나의 고생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빚 없이 헤어지게 된 것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두려움은 남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밤늦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지레 겁을 먹습니다. 물론 잘못 걸린 전화이지만 난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이런 두려움은 아마도 오래오래 갈 것 같습니다.


이혼 후 몇 년간은 아직도 나에게 그 사람은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른 뒤 나는 그 사람의 행복도 빌어줍니다.

건강하고 행복해서 더할 나위 없다면 나와 아이들을 생각해 내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에게 미안함 마음도 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철없던 젊은 시절 그러려니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사과하고 싶다는 말로 연락을 한다면 전 더 싫습니다.


혹시나 그 옛날 내가 했던 마음 아팠던 말들도 잊어주길 바랍니다. 

그 시기에 그 누구도 나보다 너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 그랬으려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그 사람도 본인의 행복을 찾아 그 사람의 인생을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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