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별똥별의 비밀

by HONG

예진은 궤도에서 처음 이탈했던 날이 기억난다.

초등학생쯤이었을까, 그날따라 저녁 기도 시간이 길고 힘들었다.

주말 내내 몰래 교회를 빠져나왔던 사실이 들통 나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손을 붙잡고 신실하지 못한 나를 용서해 달라며 울며 기도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어린양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예진은 기도하는 척하다 살짝 눈을 떠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가족들의 간절한 모습이 낯설었다.

어쩐지 꼭 모여져 있는 두 손이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기도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깊고 어두운 중력이 느껴졌다.


그렇게 길을 잃은 어린양은 어른이 되었지만 항상 어딘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에 있던 지금 이곳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기분에 헤매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어둠 가운데에 작은 빛들이 수억 개— 그리워하던 별들이

예진은 생각했다 나는 왜 이곳에 떨어진 건지 어떤 중력이 나를 이곳에 이끌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를 그녀는 천천히 우주에 띄워버렸다.

문제들은 두둥실 우주를 유영하더니 이내 보이지 않는 저 멀리로 떠내려간 듯했다.

우주 속에서 유달리 빛나는 별 하나를 향해 손을 뻗어 더듬거렸다.

눈을 뜨니 어지러운 조명 아래 원룸 천장을 향해 쭉 펼쳐진 예진의 한쪽 팔이 보였다.


대부분의 별똥별은 대기권에서 완전히 소멸한다고 한다.

그들은 소행성이나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파편에서 시작되어

우주공간을 떠다니다 지구 중력에 이끌려 대기권에 진입하게 된다.

대기권에 진입한 파편은 빠른 속도로 하강하며,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른다.

뜨겁게 달아오른 파편은 빛을 내며 타들어가는데, 그 줄기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별똥별이다.

누군가의 소원을 가득 싣고 소멸해 가는 별의 조각들, 예진은 그들이 마치 형제자매처럼 느껴졌다.

각자 어디서 떨어져 나와 대체 어디로 스러져가는 걸까.

빙글빙글 대기권을 돌다 결국 도착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파편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녀는 문득 고향에 있는 가족 생각이 났다.

속주머니에 꼬깃하게 접혀있던 담뱃갑을 매만지다 한 개비를 꺼낸다.

한숨 같은 긴 연기를 내뱉는다. 연기는 구름처럼 하늘로 퍼져올라갔다.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며 연기인지 한 숨인지 모를것을 뱉어대다

예진은 언제부터 자신이 '떨어진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생각해보았다.

우주에서부터 덩그러니 떨어져 여기 있는 지금

나는 왜 계속 돌아갈 곳을 찾아 헤매이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밤하늘에 보탠 별 빛을 메마른 손으로 대충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 2 통과 문자메시지가 눈에 띈다.

아버지의 문자였다.

[급하지 않으면 전화 좀 해다오]


"막내 고모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연락했어. 너를 꼭 보고 싶다고 하기에..."

할아버지 때부터 모태신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진의 고모는 이상하게도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덕분에 가장 먼저 가족의 무리에서 떨어지게 된 막내고모는 암에 걸리고 나서야 가족과 연결되었다.

예진의 막내고모가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 겨울이 생각났다.

갑자기 별구경을 시켜준다며 예진을 데리고 옥상에 올라왔다.

대충 펴놓은 돗자리에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누워 막내고모는 옆에 누우라는 손짓을 했다.

예진이 어렸을 때 누웠던 돗자리에 누우니 발이 조금 삐져나오는 게 느껴졌지만

대충 몸을 뉘어 하늘을 바라봤다.

옥상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니 그녀는 꼭 우주에 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알아?"

"들어봤던거같아요"

예진은 어색한 분위기를 떨쳐보려 별똥별을 찾아 이리저리 시선을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우리가 별똥별 같아"

그녀의 대답이 이어지기도 전에 고모는 말했다.

"소행성이나 혜성에서 시작된 파편이 지구로 떨어지면서 불타오르는 현상이 별똥별이래.

우리는 어디로 그렇게 빛을 내며 떨어져 가는 걸까"

"모르겠어요... 저는."

아직 차가운 밤바람이 볼을 얼린 듯 예진의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고모가 어디로 떨어지는지는 몰라도 어디에서 떨어져 나오는지는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병원에 도착하자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안부인사도 할 겨를이 없이 이제라도 둘 다 교회를 다녀보는 건 어떻겠냐며,

막내 고모도 그렇고 예진도 그렇고 지금에라도 교회에 다닌다면 뒤늦게나마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 말했다.

"네 고모가 지옥에 가면 너무 불쌍하지 않겠니? 그리고 너도 말이다."

아버지가 꼭 붙든 예진의 손이 그녀에겐 블랙홀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십 년 만에 본 막내 고모는 아주 말라 마치 오래된 고목처럼 보였다.

환하게 웃으며 어서 앉으라는 손짓을 한 그녀의 손이 부러질 것만 같아 보였다.

가만히 옆에 앉은 채, 예진은 할 만한 말을 속에서 골라내던 중 고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떤 소원을 싣고 살았어?"

"네?"

"별똥별말야..."

고모의 눈동자가 예진을 바라본다, 고목 같은 껍데기 안에서 눈빛이 마치 별처럼 타오르는 것같이 느껴졌다.

"글쎄요.. 제가 뭐 소원을 이뤄줄 만한 처지가 안 돼서"

저는 그냥 중력이 이끄는 대로 떨어지기 바빴어요. 예진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웃음 뒤에 감추며 대답했다.

"그냥... 평생 싣고 갈 소원 하나쯤 있다면 멋있지 않겠니?"

"고모는요?"

그녀의 대답에 고모는 창 밖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예진을 바라봤다.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소원은 남한테 말하면 재미없잖니"

"그럼 고모는 어디로 떨어졌던 것 같아요?"

"눈에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예진은 면회시간이 끝난 뒤 병원을 나와 가족식사엔 에둘러 핑계를 대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발길 닿는 데로 이리저리 걷다 어느 강변에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두운 강물에 도시의 빛이 반사되어 일렁거린다.

어두운 강물에 반사된 빛이 일렁거리며 부서지는게 꼭 별똥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진은 가만히 눈을 감고 아무 소원이나 빌어보려다 생각나는 게 없어 눈을 떴다.

바라는 것도 없이 어디든 내가 있을 곳을 찾아 헤매며 살아왔구나.

앞으로 간절히 바랄 소원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예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그립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이제 눈에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떨어져 보기로 했으니까.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9화멈추지 않는 라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