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타들어 갈 땐 늘 비릿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것이 마치 살을 태우는 냄새 같았다. 추억을 태우는데도 이렇게 살 냄새가 날 줄 몰랐다.
"글쎄, 지수라는 애가 우리랑 같이 있었다고?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지수라는 사람이 우리 모임에 있었어?"
"오랜만에 연락해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한 사람을 찾고 있다.
마음이 맞는 동창들끼리 모인 작은 모임에서 선희는 새로 산 사진기를 자랑하며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사진기의 이름은 '헤모리 카메라'로 혈액(Hemo)와 기억(Memory)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이거 그 혈액 넣어서 찍는 카메라 아니야?" 다른 한 명이 관심을 보이며 물어보자 선희는 한껏 과장된 목소리로 광고 문구를 읊어주었다.
"사진 한 장과 혈액 한 방울로 원하는 때에 잠시동안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때 멋지지?"
설명을 들을수록 나는 그 카메라가 너무나 괴상하게 느껴졌다.
"아직은 그 순간을 재연시켜 줄 스캐너가 개발 중이라고 하는데, 개발되면 사진 찍을 당시의 순간을 감쪽같이 보여준다나 봐, 거기서 대화도 할 수 있고 대박이지?" 선희는 카메라를 톡톡 두드리며 웃어 보였다.
"그 사진기 좀 이상하지 않아? 좀 불안하다해야하나... 별로인데"
친구 한 명이 난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부정적인 대답에 동의라도 구하는 듯 다른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모임의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흘러가자 슬그머니 동조하는 목소리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반응에 휩쓸린 걸까 아니면 정말 내 생각인 걸까 정확히 모르는 채 괜히 나도 한마디 보태었다.
"사진에 우리 영혼이 붙잡히는 느낌이라 좀 무서워"
선희는 영상이나 사진이나 우리 모습이 남는 건 똑같은데 뭐가 다르다며 열심히 모두를 설득시키다 이내 포기한 듯 내 옆자리에 털썩 앉더니 말했다.
"얘들아. 나 암 말기다... 그나마 건강할 때의 모습이라도 너희랑 남겨두고 싶어서 그래. 정 그러면 찍고 싶은 사람이라도 좀 찍어주면 안 될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스캐너도 안 나왔을 텐데"
일순간 모두의 눈빛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거렸다.
대체 무슨 일인건지, 어떤 암인 건지, 왜 대체 일찍 말 안 한 건지, 묻고 싶은 말들을 모두 약속한 듯이 그 모든 질문들을 약속이나 한 듯 묻어버렸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려 모일 때마다 선희의 허리 언저리까지 내려오던 비단결 같던 검은 머리칼이 점점 저녁 그림자처럼 옅어졌다.
사진을 찍을 때만은 모두들 환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그 순간이 재연된다는 것에 마음이 쓰이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선희가 준비하는 마지막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나는 쓰지 않는 얼굴 근육들이 이상하게 움직여져 항상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찍힌 사진들이 이상하게도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선희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헤모리 카메라로 찍은 모든 사진들을 앨범으로 만들어 전해주었다.
그녀의 장례식이 끝나자 선희의 어머니는 내게 마지막으로 헤모리 카메라를 전달해 주셨다.
"친구들 중에 네가 가장 선희랑 친했잖니, 이 카메라는 너에게 주고 싶구나."
차에 도착해서 조수석 옆에 얌전히 내려놓은 카메라를 들고 괜스레 카메라 구멍에 눈을 갖다 대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카메라 너머 선희가 친구들 가운데서 해맑게 웃고만 있을 것 같아서 어쩐지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도저히 사진기와 앨범을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혈액을 머금은 사진 속 선희가 생생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는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것들을 예쁜 철제상자에 넣어두고 침대 밑에 밀어 넣었다. 가끔 선희의 꿈을 꾸기를 바라면서.
선희와 가장 친했던 나는 더 이상 선희가 사라진 모임에 참석하고 싶지 않아 졌다.
처음 몇 년은 간간히 모임에 오지 않는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연락이 왔지만 어느새 연락도 모임 그 자체도 물속에 풀린 먹물처럼 천천히 흩어지고 어느샌가 자연스레 사라진 듯 연락이 끊겼다.
우연히 기억 속에 잠겨있던 선희의 앨범이 떠오른 것은 스캐너의 출시소식 덕분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마치 태닝기처럼 생긴 스캐너는 헤모리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기기 옆 콘솔에 스캔한 뒤 사용자가 스캐너에 누워있으면 사진을 찍었을 당시의 상황을 똑같이 재연하며 사진 속 인물들과 간단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기계로 헤모리 카메라를 먼저 구매한 사람에 한정하여 먼저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스캐너를 구매했다.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사실 아무것도 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과 선희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잔뜩 뒤섞여 있다는 것을 스캐너를 산 후에야 깨달았다.
방의 빈 공간을 거의 모두 차지한 거대한 스캐너가 배송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했지만 어떤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듯 내 손은 전원선을 연결하고 작은 콘솔에 나의 생체정보를 입력했다.
침대 밑 먼지 쌓인 철제상자의 뚜껑을 열자 비릿한 쇠냄새가 마치 피 냄새처럼 느껴졌다.
앨범의 아무 장을 펼쳐 사진 하나를 들어 올렸다.
십여 년이 흐른 세월 동안 빛바램 하나 없는 사진이 마치 어제 찍은 것처럼 생경하고 그 속에 웃고 있는 아직 야위지 않은 선희의 모습과 친구들 그리고 나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콘솔에 사진을 올리기 전 경고문구가 떠오른다.
[스캔한 사진은 재사용할 수 없습니다. 스캔하시겠습니까?]
손 끝이 가만히 콘솔의 액정 위를 맴돈다.
나는 '네' 버튼을 누르고 스캐너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사진이 타들어 갈 땐 늘 비릿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것이 마치 살을 태우는 냄새 같았다. 추억을 태우는데도 이렇게 살 냄새가 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