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의 시대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면 할수록 고향의 기억도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점차 엷어지는 추억과 기억들은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서 더 깊게 느껴지면서 그리움이 되어 간다.
새로운 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곳에서의 삶도 새로운 기억들로 가득 차고 즐기게 되었지만 한국에 뿌리를 둔 이민자로서 삶을 균형 있게 이어가며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지도 모르겠다.
이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유형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민 2세, 3세들을 포함하여 현지에 완전히 동화되어 문화나 언어는 물론 사고방식도 모두 새롭게 장착하고 사는 사람들, 오랜 이민 생활에도 고향에서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는 사람들 그리고 각 문화의 특징을 동시에 수용하며 사는 하이브리드 스타일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아마 각자가 생각하는 정체성 기준의 차이인 것 같다.
정체성은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로서의 법적인 지위나 사는 지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화적 가치, 언어, 사고방식이나 가치관등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두며 보존하며 살아왔는지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것 같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키우면서 항상 잊지 않도록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는 이상적인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 관련된 부분이다. 아이들에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양쪽의 문화요소를 모두 품고 여러 문화나 국가의 특징을 동시에 수용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서로 다른 사회의 다양한 면들을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값진 자산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과 같이 민족과 국가 간의 갈등이 빚어낸 비극들도 건강한 공동체로서 나아갈 길과는 거리가 먼 퇴보의 선택들일 것이다. 비단 해외생활 뿐 아니라 연간 2천만명이 해외 여행을 하는 시대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높인다면 새로운 관점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평화로운 방법들을 모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 세상의 주역이 될 다가올 세대에는 이기심이나 이해 부족으로 인한 분쟁들과 증오 대신, 공생하고 함께 번영하는 일들이 모두의 주된 관심사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