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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Jun 11. 2024

커 보였던 선배들

얼마 전 안전관리자 교육을 다녀왔다. 10년 전 신입사원 때 나의 관리자 위치에 있던 선배들이 뒤에 앉았고, 나는 앞자리에 앉아 경청하고 있었다. 잠시 후 뒷열이 소란해졌다.


이제는 40대 중반의, 당시에 대단하다고 느꼈던 선배들이 잡담을 하며 떠들었다. 강사님의 습관이나 제스처를 따라 하거나 교육과 무관한 사설들로 시끄러워져 결국 자리를 옮겼다.


내가 신입사원 때 그 선배들의 위치에 올라오고 보니 거대한 빙산 같았던 선배들은 없었다. 조그마한 돌무덤의 그림자가 짙었을 뿐, 그들에게서 더는 어른스러움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업무를 배웠지만 입사 초기에 있던 부서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초반부처럼 격변의 시기를 겪었다. 책과 달리 우리 부서는 점점 정화되어 갔기에 다행이었지만.


당시에 우리 부서는 신입사원이 들어오고 2~3년 이상 지내야 1명 몫을 했고, 매년 회사에서는 선임급을 신규 부서로 보내야 했기에 오래 남는 사람이 귀중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소수의 지배세력을 위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불과했다.


지금은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정도로 후배 양성에 인색했고 본인들이 가진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을 꺼려했다. 후에 시스템으로 구축된 것과 비등할 정도의 데이터 베이스도 그들의 하드디스크에만 머물렀을 정도로.




어리바리함으로 가득했던 신입사원 때의 나에게는 견디기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지나고 보면 순간처럼 느껴지지만,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두꺼운 책을 읽는 기분이랄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당연하게 여기며 시간만 흘러갔다.


게다가 군 입대보다 입사를 먼저 했기에 더더욱 선배들은 나에게 교육하는 시간을 아까워했다. 같이 온 전문대졸, 대졸 신입사원들에게만 기회가 갔고 몸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들이 많았기에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졌다.


그렇기에 더욱 선배들은 커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들은 그림자의 크기를 키웠을 뿐이라는 걸. 이후에 군 입대가 차량 전복사고로 무산되었고 어깨너머로 하나씩, 퇴근 시간 후에 남아 다음 교대조 선배에게서 하나씩 야금야금 성장한 나는 가려져 보이지 않던 현실을 점차 깨달았다.




당시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인색하면서도 과도하게 억압하고 욕설과 비방이 많았기에, 몇몇은 인사팀에 불려 가기도 했다. 이후에는 하나, 둘 부서 이동 발령이 났고 부서장은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흉터는 남았지만 고름이 짜이는 듯했다.


그들에게 배운 저 연차 선배들은 다행히 답습하지 않고 나쁜 기억들을 씻겨냈다. 내가 다른 부서로 이동할 즈음에는 의지 있는 신입사원의 경우 1년 정도면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용어와 그림을 보며 지레 겁먹곤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빙산처럼 보이도록 만들어낸 상황일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개구리를 우물 안에 가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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