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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Aug 09. 2024

나쁜 사람 되기

학창 시절에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면 금 친구가 되었다. 사소한 부분도 함께였기에 장난도 치고 즐거움을 키웠다.




굳건할 것 같았던 우애들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최근의 관계들은 지지부진하다. 억지로 이어가고, 그나마 취미가 맞으면 오래 보는.


더 깊은 관계를 갈망하는 상태도 뜨듯 미지근한 관계들이다.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두터울수록 좋다고 배웠기에, 질보다 양을 채우려 이리저리 흘려 다녔다.


늘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모두에게 나이스하고, 그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그런. 불가능한 이상을 좇을수록 지나고 남은 것이 없는, 흩어지는 시간들만 가득해졌다.




내 결혼식에 부르지 않을 지인들의 결혼식을 다니고, 생일을 축하하며 정작 중요한 사람들은 놓치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감을 느낀 건, 너무 늦었을 때였다.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관계에서 나쁜 사람이 되기로 했다.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해 만남을 이어가는 연인들처럼 끓는 점보다 어는점에 가까운 관계가 는 싫었다.


내가 먼저 시작한 연락이더라도 이어갈지, 그만할지는 상대에게만 주어진 권한이 아니다. 나에게도 굳은 마음의 칼을 빼어든다면, 충분히 관계를 끊어낼 수 있다.




시간이라는 용해제가 관계의 굵기를 얇게 해주기도 하지만, 기다림에는 많은 대가가 따른다. 그렇기에 나는 나쁜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더 소중한 나를 움켜쥐기 위해서.


'누군가, 혹은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질타를 받거나 나쁜 평가가 내려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가벼운 떨림이 느껴진다.


해보지 않은 일은 떨림이 따라온다. 이 느낌은 두렵다고 느끼면 두려움이 되고, 설렌다 느끼면 설렘이 된다. 그렇기에 내딛기로 한다. 설렘일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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