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 빛 Jun 29. 2023

14.99불짜리 웨딩드레스

2021년 9월 4일_미국에 온 지 765일째


성격 급한 우리 둘은 사귀자마자 동거를 시작하더니 이제는 프러포즈를 승낙하자마자 결혼식 준비에 서둘렀다. 그만큼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서로에게 강하게 들었고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눈물겨운 연애들에 둘 다 이제는 종지부를 찍고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오직 외국 여권 하나만으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터라 공공서류를 발급받는 데 있어서 그동안 무수한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의외로 천만다행이게도 여권 하나로 혼인신고가 가능했다. 또한 아무리 미국에서 자격증(license)이 중요하다고 한들 혼인신고까지도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지는 처음 알았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실 단어가 거창하게 혼인 자격증(Marriage license)이지 발급에 어려운 점은 없었다. 전에는 예약을 하고 대면으로(in personally) 밖에 발급해 주지 않던 이 자격증을 지금은 팬데믹 기간이라 그 이름도 귀여운 NYC Cupid (뉴욕시 큐피드)라는 웹사이트에서 화상 인터뷰로 발급해 주니 더없이 편리했다.



우리의 결혼식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우리를 제일 사랑하는 양가 부모님과, 하객분들이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팬데믹 기간이라 나의 부모님을 멀리 미국에까지 모셔올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남자친구의 부모님도 엘살바도르에 계셔서 참석을 못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 만은 사랑을 듬뿍 주고받으며 살기를 바라시는 양가의 진심 어린 응원이 전해져 우리 둘 다 서운한 점은 없었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축하해 주러 먼 걸음을 해달라는 것도 무리일 것 같아 하객분들이 현장에 없이 Zoom 생중계로 결혼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장소를 어디로 정하면 가장 낭만적일까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다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옥상을 택했다. 우리가 가장 꿈꿔왔던 멋진 뷰를 가진 아파트이고, 둘이서 살림을 꾸리기 시작한 첫 보금자리이고, 아직 그 누구도 결혼식을 올린 적이 없는 희소한 장소라니, 이보다 우리 둘에게 더 특별한 장소는 없었다. 우리 둘은 이곳에서 날씨 좋은 날 증인 한 명, 주례사 한 명 을 포함한 단 네 명이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했다.



약간의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둘이서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며칠을 뉴욕시내를 헤매고 돌아다녔는데 아무리 골라보아도 우리의 마음에 쏙 드는 드레스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매번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다가 해탈한 상태로 SPA 브랜드인 H&M에 들렸는데 우리 둘의 마음에 쏙 드는 14.99 불짜리 흰색 드레스를 발견했다! 바로 이거다.



둘 다 그 드레스를 보자마자 이제 마음 편히 잘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면서 누가 채 갈까 황급히 결제를 하고 환희에 찬 마음으로 매장문을 나섰다. 단 돈 14.99 불 짜리 옷에 환성을 지르는 우리는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커플임에 틀림없다.




결혼식 당일날 14.99불짜리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하염없이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던 남자친구의 모습을, 아니 이제는 남편이 된 두 눈이 퉁퉁 부어있던 사랑스러운 그대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비싼 예식장도, 거창한 선물도, 두툼한 축의금 봉투도, 화려한 드레스도, 꽃 장식도, 객석을 가득 메운 하객도, 장엄한 음악도, 으레 결혼식의 기본 요소라고 하는 것들이 전부 빠져 있었지만 오로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모든 빈자리가 메꾸어진 우리 둘만을 위한 결혼식을 성황리에 마쳤다!





뉴욕시 혼인 자격증(Marriage license)을 발급받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하기 웹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고 $35을 결제 후 화상으로 배우자와 서기(City Clerk-이를테면 동사무소 직원)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한다. 서기도 재택근무 중인지 인터뷰 내내 반려견이 짖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 주변소음이 다 들리는 다소 황당하고 편안한 인터뷰였다. 

인터뷰는 10분 안에 끝나는데 간단한 신분확인 정도이다. 부모님 성함이 무엇이지 전에 결혼한 적이 있는지, 있다면 전 배우자와 어떻게 결별했는지 등 기본 정보들과 함께 "축하합니다"를 끝으로 혼인 자격증을 발급받는다.


말 그대로 자격증이지 아직 정식 혼인신고는 아니다. 공인된 주례사와 최소 한 명의 증인과 함께 이 혼인 자격증이 만기 되기 전, 즉 60일 이내에 결혼식을 올리고(군인일 경우 예외) 주례사가 시청에 신고를 해 주어야 비로소 혼인신고가 완성이 된다! 혼인신고 서류는 집주소로 우편배달이 가능하다.

웹사이트 주소:  https://projectcupid.cityofnewyork.us/app/cupid#/display/5 ea1 d0 bda46 ab1020 e1659 f4

이전 22화 결혼할 결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