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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 빛 Jul 01. 2023

세계의 번화가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법

1부_ 서류 준비를 마치다


결혼식 이후 닷새만에 혼인관계 증명서(marriage certificate)가 집 우편함으로 배달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혼인신고인지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저 채색으로 된 A4용지 한 장이었다. 우편으로 온 것이라 자칫하면 스팸메일로 치부해 버릴 수 도 있었지만, 사람의 촉이란 참 무섭다. 왠지 중요한 문서일 것 같아 둘이서 조심스레 일층 우편함 앞에서 뜯어보고 선 채로 난리 블루스를 떨었다.



12층 원룸(studio)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꽉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까지 내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리 결혼했어요!(We got married)"라고 미친 척(어쩌면 정말로 미친 것일 지도) 하늘색 종이를 머리 위로 번쩍 쳐들고 흔들었더니 살아서 그런 박수갈채를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처음으로 받아보았다. 12층에 도착해서 우리가 내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이웃들이 환성을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내주어서 나의 민망함이 조금은 무마되었다. 착한 사람들.



결혼하고 나서도 달라진 점은 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당번을 짜지 않았고, 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서로 자기가 좀 더 손해를 보고 상대에게 대접을 해준다 - 에 모든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옥신각신 소소한 것으로 따지거나 얼굴을 붉힐 일이 없었다. 그가 양말을 뒤집어도 내 속은 뒤집히지 않았고, 치약을 대충 짜도 눈물을 짜며 싸울 일이 생기지 않았다.



굳이 변화가 있다면 나에게는 나를 증명할 서류가 외국여권 말고도 하나 더 생겼다는 점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의미한다. 여자친구였을 때는 렌트계약서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당당히 혼인관계 증명서를 보여주고 거주인 #2로 우리 집에 등록되어 있다. 따라서 공과금 영수증에도 내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이는 알뜰폰 소유자에서 월 별 명세서(monthly statement)를 발급받을 수 있는 정규 통신사의 가입자가 될 수 있음도 의미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편과 같이 발품을 팔아가며 사정사정하면 예금은행에서도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공동 계좌를 개통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체이스 은행(JPMorgan Chase Bank, N.A.)에서 내 이름으로 된 계좌를 개통시켜 주었다. 도미노처럼 첫 조각을 밀치자 버티고 서있던 마지막 조각까지 우르르 순조롭게 넘어지는 모습을 불과 일주일 사이에 지켜보았다. 이 모든 것이 여권 만기 19일 전에 벌어진 사건이기도 했다.



요즘 나의 최우선순위는 뉴욕시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다. 공과금 서류들이 준비되기 바쁘게 온라인으로 운전면허 필기시험(New York DMV written test)을 치렀다. 주입식 교육에 전사같이 단련되었는지라 필기시험은 하루 만에 가벼이 통과했다.



나는 자가용 차가 없으니 개인 운전학원에 등록하여 일대일 수업을 받았다. 처음 등록할 때는 열 시간 강습이면 충분히 실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고 강사님께서 말씀하시어 400달러를 지불하고 퇴근 후 남는 모든 시간을 운전수업에 할애하여 일주일 만에 열 시간을 채웠는데 시험은커녕 아직 선회(Cornering)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여권 만기 19일 이내에 실기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체감상 마흔 시간 수업을 채워도 실기시험에 통과할 것 같지 못했다. 벽을 타던 내 몸이 이렇게나 둔한 몸이었던가! 아니다. 팔다리만 둔한 것이 아니다. 시야도 운전대를 잡은 내 두 손만 보인다. 말 눈가리개를 해 놓은 것 마냥 조수석에 앉아있는 강사님 조차도 보이지 않고 멀리 앞을 내다보는 것은 당연히 사치이며 바로 앞 차만 똑바로 응시할 수 있어도 감사할 따름이다. 양쪽 사이드 미러나 백미러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 조차도 낯선 이 모습을 남편이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 열 시간 중 마지막 수업에 같이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생명을 무릅쓰고 뒷좌석에 앉아 한 시간 동안 고문을 당해 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것에 대해 아마 그는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으리라.



뒷좌석에 그를 태우자 너무 긴장이 된 나머지 자동변속기의 "R"이 그날따라 후진하기(Reverse)가 아니라 사람이 타기(Ride)로 착각이 되어 목청을 높여 "자, 갑니다 (Let's go)!"를 외치고 액셀을 밟아 힘차게 후진해 차사고를 내버렸다.



인간이라면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당연히 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 자동변속기를 움직이는 어설픈 내 오른손을 주시하지 않았던 강사님과 뒷좌석의 남편은 급히 "스톱!!! STOP!!!!!!!!!!!!!!!!"이라고 고함을 질렀고 나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정차(Parking) 상태에 돌려놓고 셋 다 차에서 내려 바사삭 부서진 강사님의 차 뒤 범퍼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도 바사삭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수습이 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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