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_ 운전은 무조건 000이다.
운전 경력 열 시간 만에 보기 좋게 강사님의 차에 사고를 내버리고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강사님과 남편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는데 다행히도 그들은 나보다 평온해 보였다(이미 차사고를 많이 내 본 것일까?).
강사님은 어차피 초보 운전자들이 이미 여러 군데 망가뜨려 놓은 차이고 안 그래도 팔려던 참이었으니 사천불에 사고 싶으면 사가라고 했다. 13만 마일(약 21만 km)의 2008년도 도요타 세단을 사천불에 사는 것이 합리적일까 하는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고, 뒤 범퍼가 휜 차라도 나에게도 자가용 차가 생긴다는 기쁨이 앞섰다. 또한 문제 수습이 금방 되었다는 안도감으로 사천불을 지급하고 급히 차를 인수했다.
자가용 차가 생기자 나에게는 수업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났다. 더 이상 운전학원에 다니지 않았고 남편을 스승으로 맞이했다. 하루 열두 시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는데 여권 만기일 전에 어떻게든 무사히 실기시험에 통과해야 했으므로 퇴근 후 쉴 틈이 없었다.
배우는 나도 힘들었지만 왕초보 중에서도 가장 형편없는 왕초보를 붙잡고 목숨 바쳐 운전연수를 시켜 주었던 남편의 노고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나조차도 운전은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포기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남편은 끝까지 가르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보행자로 살았을 때의 도로와 운전자가 되고 나서의 도로는 더 이상 같은 도로가 아니었다. 눈여겨보아야 할 표지판도 다르고, 신경을 안 쓰고 살아도 무방하던 운전자의 신호들을 이제는 제 일 순위로 고려하면서 길을 다녀야 했다.
그동안 운전 연수를 해오면서 남편에게 던졌던 나의 황당하고 바보 같은 질문들을 부끄럽지만 가감 없이 공개한다:
1. 길은 구불구불한데 그대는 왜 직진하라고 말하는가.
-> 세상에 직진을 못 알아듣는 운전 연수자가 있을까? 있다. 나는 왜 도로란 전부 동서남북으로 완벽하게 쭉쭉 직선으로 뻗어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휘어 있는 도로에서 자꾸만 직진하라는 남편의 말이 매우 혼란스러워 여러 번 곤욕을 치렀다.
남편의 꿀팁: 직진이란 깜빡이를 켜지 않고 가도 되는 차선을 의미한다. 고로 차선을 바꾸거나 방향을 변경하지 않고 감을 의미한다. 길이 얼마나 곧은 직선인지는 직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2. 어떻게 일방통행 표지판이 두 개 나 붙어있는가.
-> 도대체 일방통행을 하라는 것인지, 왔다 갔다 해도 괜찮다는 것인지, 초반에는 빨리 달리는 운전석에 앉아 이 사인을 똑바로 읽어내지 못했다. 필기시험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의문이 들 따름이다. 역시 책에서 본 것과 현실세계는 천지차이임을 실감한다.
남편의 꿀팁: 도로에 주차된 차들이 있다면 차의 앞 머리가 어느 쪽을 향해 있는지 살펴보고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주차되어 있다면 그것은 일방통행 도로이다.
3. 눈에 보이는 여러 개 신호등 중에서 어느 신호등을 읽어야 하는가.
-> 보행자였던 시절에는 단순히 빨간 불, 파란 불만 잘 지키면서 걸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운전자가 되고 난 뒤, 여러 개 신호등을 교차로에서 한꺼번에 마주할 때면 도대체 어느 신호등을 읽으라는 것인지 헷갈렸다.
남편의 꿀팁: 무조건 내 얼굴을 가장 가까이에서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신호등을 읽으면 된다.
이 밖에도 운전 도중 갑자기 핸들이 쑥 빠져나오지 않을까, 타이어가 펑 튕겨 나가지 않을까, 어딘가에서 휘발유가 새지 않을까, 너무 빨리 달리면 앞범퍼가 들려 앞 유리창이 깨지지 않을까, 매번 자세를 고쳐 앉을 때마다 사이드 미러를 계속 조정해야 되지 않을까, 등의 수 도 없는 바보 같은 질문들을 무식하고 용감하게 던졌다.
시간을 쪼개어 가르쳐 주는 남편한테 "차가 천천히 가므로 나는 차가 막힐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고, 차선을 바꾸려고 고개를 휙 돌려 사각지대를 확인할 때면 핸들도 같이 휙 돌아가는 실수도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결혼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새신랑의 인내심 테스트와도 같았다. (결혼 후 운전연수를 시작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전혀 향상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나의 운전 실력도 꾸역꾸역 잠을 줄여가며 마흔 시간의 연습시간을 채우자 그때부터는 조금씩 운전대를 꽉 잡은 손바닥에 땀이 덜 나기 시작했다. 건조한 운전대를 다 경험하다니! 그것은 내 몸의 근육들이 이제는 조금씩 차라는 공간 안에 적응해 감을 의미했고 이대로 실기시험을 봐도 되겠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전날 밤 열두 시까지 동네에서 운전연습을 하고 새벽 네시에 실기시험 장소에 도착해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시험에 나올 수 있는 모든 변수를 둘이서 대비했다. 페달을 밟는 느낌이 달라지면 강약조절이 힘들까 봐 기어코 연습할 때 매일 신던 신발을 신고 왔다.
아침 여덟 시 반, 내 차례가 돌아오자 더 이상 여기서 나올 문제도 없다는 자신감과 이 차와 내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는 믿음으로 나를 무장했다. 결과가 오후 다섯 시에 나온다고 했지만 10분간의 짧은 시험 시간을 마치고 직감적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실기시험에 무사히 통과했다는 것을! 이 날은 여권 만기 이틀을 앞둔 시점이었다.
형편없는 초보 실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세계의 번화가- 뉴욕 한 복판에서 운전면허를 따고 내린 결론이 있다면, 운전은 무조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옆에 인내심 가득한 참된 스승을 동승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완벽한 자율주행 차가 발명되지 않는 한, 이번생에는 절대로 안될 것 같았던 나도 버젓이 혼자서 차키를 집어 들고 집 밖을 나서는 날이 왔으니, 그대들도 하면 된다!
그 후.
집주소가 적힌 운전면허증과 전기요금, 전화요금, 수도요금영수증 및 혼인신고서를 들고 자국 여권 갱신도 무사히 마쳤다. 혼인신고서를 본 외교관들이 다행히도 여행기간이 지나버렸는데 왜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는지를 캐묻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