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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Apr 13. 2024

이 손맛을 대대로 전하게 하라

서울 탕반의 전설 하동관

하동관은 1939년 서울시 중구 청계천변 수하동에서 시작하여 2007년 6월 청계천일대 도시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명동 입구, 외환은행 뒤편으로 이전한 80여 년 전통의 서울 대표 곰탕집이다.


새로 마련한 명동의 2층 집은 수하동 시절 하동관의 나무 대문과 식탁을 그대로 가져왔다. 고층 빌딩이 아닌 조촐한 고옥이어서, 크게 낯설지 않고 수하동 시절보다 분위기는 한결 밝고 편안해졌다.


메뉴는 사골 국물에 한우 양지머리와 사태, 내장을 넣어 끓인 곰탕과 수육뿐이다. 하동관 홈페이지 따르면 “하동관 곰탕은 서올 반가촌의 전통을 그대로 이은 것으로, 한우 암소의 사골과 양지 내장인 곱창과 대창, 양이 들어가고 맛을 더 돋우기 위해 곤자소니(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 많은 부분)가 반드시 들어간다. 하지만 상에 올릴 때는 양지수육과 양포만 갈끔하게 얹어 낸다.”고 설명한다.


곰탕은 사태와 양지머리, 양, 차돌박이가 고명으로 나오며 손님이 선택 가능하다. 주문 시 하동관에서만 통용되는 은어도 있다. 25공, 30공 등 손님들이 만든 ‘맛배기’는 밥의 양을 줄이는 대신 고기를 더 넣는 것을 말한다. ‘깍국’은 깍두기 국물, ‘통닭’은 뜨거운 곰탕 국물에 날계란을 풀어 먹는 것을 말하며, ‘냉수’는 맥주잔(글라스 잔)에 반병 정도의 소주를 담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하동관’의 홈페이지 내용을 보면 “하동관 곰탕은 체력이나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고 몸에 밴 일상의 습관처럼 모든 걸 다 바쳐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동관 곰탕 맛은 정육점과 할머니의 손맛을 거치고 다시 고객들의 입맛으로 이어지는 신뢰의 결실이다. 즉, 하동관 곰탕의 맛은 최상의 한우 암소고기와 할머니의 육감으로 이뤄내서 손님들의 입맛으로 판별된다는 이야기다.”


하동관 곰탕은 중탕 재탕이 없고,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영업한다.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영업을 종료한다. 계산은 선불이고, 포장도 가능하다.


국회의원 선거일 아침 하동관을 찾는다. 명동역 8번 출구를 나와 10여 분 걸어간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명동거리가 한산하다. 오전 7시 30분쯤 하동관 앞에 도착한다. 고층 빌딩 사이 2층 건물이다. 수하동 시절에 사용한 나무 대문과 한문으로 쓴 하동관 나무 간판이 눈에 쏙 들어온다. 옛 흔적이다.


입구 왼쪽 ‘이 맛을 대대로 전하게 하라’는 구호에서 노포의 맛을 오래 유지하려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입구 오른쪽 하동관 나무 간판 위로는 서울 미쉐린가이드 빕 구르밍 선정 빨간 현판도 보인다. 이전 후 얻은 명성이다.


출입문을 밀고 들어선다. 우측 카운터에서 곰탕 일반을 주문하고 선불 계산한다. 남자 직원이 내포를 넣을지 물어본다. “네” 짧게 대답하고 안내한 자리에 앉는다.


식당을 둘러본다. 혼자 온 남자 손님 몇 분이 곰탕을 먹고 있다. 포장을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손님도 있다. 주방 열린 공간으로 놋그릇에 곰탕을 담아내는 할머니의 손길도 보인다.


눈을 돌려 차림표를 살펴본다. ‘국내산 한우만 사용합니다’란 검은 글자에 ‘한우’만 빨간색으로 썼다. 하동관 국 맛의 바탕이 되는 한우를 강조하기 위함인듯하다. 밥양을 줄이고 고기를 더 주는 ‘맛배기’라 부르는 25공, 30공 메뉴 앞에는 엄지를 치켜세운 노란 그림이 그려져 있다. 1인 손님은 합석이 필수라는 글을 읽을 즘 남자 직원이 탁자에 곰탕과 밑반찬을 내려놓는다. 단출하다. 방짜 유기에 담은 곰탕과 깍두기, 배추김치, 썬 대파뿐이다.


음식을 훑어본다. 은은한 황금빛 놋그릇 안엔 뽀얀 밥, 옅은 갈색빛을 띤 맑은 국물, 진갈색 소고기와 검은 띠를 두른 유백색 내포 등이 다소곳이 얹어져 있고, 작은 접시엔 마침 맞게 익은 빨간 깍두기와 배추김치, 흰빛이 섞인 푸른 대파가 담겨 있다. 또렷한 색감이 어우러지며 식욕을 돋운다.


놋그릇 안에 담겨 나온 숟가락을 들기 전에 두 손으로 놋그릇을 살포시 감싼다. 따뜻함과 묵직함이 온새미(가르거나 쪼개지 않은 생긴 그대로의 상태)로 손을 타고 머리로 전해진다.


손을 떼고 숟가락을 집어 든다. 맑은 기름이 감도는 국물만 살며시 떠먹는다. 따뜻함의 여운이 입술을 스치고, 잡내 없는 깔끔한 맛은 담박하고 산뜻함으로 입안에 머물다 내장으로 넘어간다. 몇 번 더 국물만 먹는다. 고기와 내포, 사골에서 우러나온 구수하고 여린 단맛이 그윽하다. 묵직한 깊은맛이 내장에 저장된다.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이 당기는 맛이다. 마음까지 개운해진다.


식탁엔 소금과 후추가 놓여있다. 간 맞춤은 개인의 선택이다.


갈색빛 곰탕에 다진 파를 얹는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에 밀어 넣는다. 갈색빛을 띠는 맑은 국물은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다. 부드럽고 은은한 감칠맛이 입안을 감친다.


마른 밥에 설설 끓는 국솥 뜨거운 국물로 토렴한 밥알에 국물이 배어들며 어금니에 맞대지 않고 씹힌다. 가장 좋은 식감과 따뜻함이란 알맞은 온도를 선물한다.


한 입에 먹기 좋게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게 썬 양지와 내포는 퍽퍽하거나 질기지 않은 졸깃한 식감으로 어금니를 놀린다. 송송 썬 대파는 중간중간 씹히며 아삭한 식감과 아린 맛으로 육수의 마지막 남아 있을 느끼함을 달래며 존재감을 뽐낸다.


곰탕에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번갈아 먹는다. 깍두기는 제주산 무와 배추, 국산 꽃소금과 새우젓, 고춧가루, 설탕 약간만 넣어 담근다. 서울식 깍두기다. 깍두기는 색깔이 선명하면서 싱싱한 질감이 살아 있다. 적당히 물러진 깍두기는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뚜렷하다. 상큼하지만 시지 않고 뒷맛이 달고 감칠맛이 난다.


곰탕에 깍두기 국물을 붓고 섞는다. 갈색 국물이 빨갛게 변하며 새곰달곰한 맛이 더해진다. 놋그릇을 두 손으로 잡고 곰탕 국물을 훌훌 마신다. 깍두기 국물은 무가 소금에 절여지며 스며 나온 순수한 무 국물에 새우젓과 양념이 어우러지면서 알맞게 익어 탕국 국물 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빨간 국물은 사라지고 은은한 황금빛 놋그릇 바닥만이 남는다. 속이 확 풀린다.


한식은 탕반(湯飯)음식이다. ’탕(湯)'은 국물을 뜻하고 '반(飯)'은 밥이다. 밥과 국이 밥상의 기본이자 중심이다.


국물의 기본은 ‘대갱(大羹)’이다. 대갱은 고기 곤 국물, 고깃국물이다. 현재의 곰탕이다. ‘대’는 크다는 뜻과 더불어 으뜸, 시작, 바탕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무런 양념없이 국을 끓이면 대갱이다.


음식 평론가 황광해씨는 경북매일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양념하지 않은 ‘대갱(大羹)’을 으뜸으로 여긴 이유에 대하여 ‘예기 교특생(禮記_郊特牲)’에 “대갱을 조미하지 않는 것은, 그 바탕[質, 질]을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고기를 곤 국물 맛이 바로 대갱의 바탕 맛, 기본 맛이며 고깃국물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하여 조미하지 않았으며  ‘본(本)’은 기본이다. ‘질(質)’은 사물의 근본이다. 질박(質朴), 소박함이다. 본질을 지키는 음식이 바로 곰탕, 대갱이라고도 하였다.


곰탕, 대갱(大羹)은 최고의 국물이다.  황금빛 놋그릇 안 깊은 손맛을 담은 갈색 빛을 띤 맑은 국물이 대대로 전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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