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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May 18. 2024

하얀 서리꽃을 녹인 시골순대국밥

추위가 덜하던 1월 중순 무주공용버스터미널 뒤 제일의원 건너편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무주덕유산리조트로 향한다. 스키장에는 겨울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오른다.


설천봉에 내리니 안개도 많이 끼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 바로 앞을 보기 힘들다. 설천봉 레스토랑에서 따뜻한 어묵꼬치 국물로 추위를 달래고, 무주구천동 쌀막걸리로 아침을 대신한 후 향적봉으로 향한다.

설천봉 상제루/아침으로 먹은 어묵꼬치와 막걸리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 주위로 나무들 줄기와 잎, 바위 등이 눈 내린 채로 얼어 있다. 상고대의 아름다움이 추위를 잊게 해주며 덕유산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이어지게 한다.

얼어 버린 솔잎/주목 상고대/얼어 버린 바위

무주 덕유산 정상 향적봉은 무주 구천동 33경 중 제33경이다. 향적봉 주변 바위는 하얗게 얼어 버렸고 안개가 자욱해 경치를 즐길 수 없었다. 정상 표지석의 글씨는 희미하고 알림판의 향적봉 해발 1,614m라 쓰인 글만이 덕유산 정상임을 알게 해준다.


백련사로 하산한다. 백련사 대웅전은 무주 구천동 33경 중 제32경이다.


구천동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며 무주 구천동계곡의 겨울풍경을 즐긴다.

무주 구천동 33경 제30경 연화폭, 제25경 안심대, 제20경 다연대

구천동 버스 정류장에서 무주행 직행버스를 타고 무주 공용 버스터미널에 내려 반딧불 시장으로 걸어간다. 남대천에는 섶다리가 놓여있고 물은 느릿하게 흐른다. 검은 산 뒤로 노을이 옅다. 어둑해진 무주는 차분하다.


소문난시골순대는 무주 반딧불 시장 안에 있다. “3대째 이어온 75년 전통”이란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을 정도로 오래된 순대국밥 전문점이다.


돼지 뼈로 우려낸 육수에 된장을 섞어 끓인 국물로 토렴한 시골순대국밥이 대표 메뉴이다. 밥을 따로 내주는 따로국밥, 머리 고기 국밥, 오소리감투 국밥, 새끼보 국밥, 막창 국밥 등도 맛볼 수 있다. 돼지 내장 수육과 전골 등도 판매한다.


무주 반딧불 시장 안은 환하지 않고 인적도 드물다. 소문난시골순대집 앞에 다다른다. 식당 안 밝은 불이 손님을 반긴다. 식당 문 위에 붙여진 ‘원조, 3대, 75년’ 플래카드를 보며 음식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끌어 올린다.


따뜻하게 끓여지는 국밥 솥 아래로 고양이들이 쉬고 있다. 뜨내기 겨울 여행객도 추위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순대국밥을 주문한다.


여사장님이 뚝배기에 밥을 담고 돼지 뼈로 푹 곤 육수에 된장을 풀어 끓인 국물로 토렴한다. 돼지 내장과 피순대도 체망에 담아 뜨거운 국물로 토렴해 얹고 육수를 한가득 붓는다. 파란 썬 대파와 빨간 다진양념을 올려 마무리한다. 아리지 않은 시원한 양파, 매콤한 고추, 시금하고 아삭한 김치, 새우젓, 된장 등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주문한 기본 순대국밥은 뚝배기 한가득 푸짐하다. 투박하고 묵직함이 눈에 쏙 들어온다. 중앙에 얹어진 빨간 다지기를 섞지 않고 국물만 한 숟가락 떠 입에 넣는다. 돼지 뼈와 집된장이 어우러진 국물은 엇구수하고 산뜻하다. 저절로 국물만 몇 차례 떠먹는 숟가락질이 이어진다. 추위와 허기로 지친 속이 스르르 풀린다.


속을 달랜 후 건더기로 눈을 돌린다. 파란 대파와 빨간 양념 주위로 갈색의 돼지 내장과 검은 피순대 서너 개가 보인다.


젓가락으로 피순대를 집어 맛본다. 비릿하거나 잡내가 나지 않는다. 입안엔 구수한 국물이 흐르고 돼지 창자는 졸깃함으로 어금니를 놀린다. 피순대 속 선지는 녹진하게 혀와 입안을 감친다. 피순대는 진득하고, 고소하게 씹히기도 하고 부드럽게 녹아내리기도 한다. 한국 맛 초콜릿이다. 중간중간 초콜릿 속에서 파가 사근사근 씹힌다.


뚝배기 중앙에 넉넉하게 얹어진 다진 양념을 휘휘 저어 섞는다. 옅은 갈색빛 국물이 불그스름하게 변한다. 국물을 한술 뜬다. 감칠맛과 매운맛이 더해지며 진하고 깊어졌지만 깔끔한 국물 맛은 여전하다.


숟가락을 뚝배기 깊숙이 넣어 토렴한 밥과 건더기를  떠먹는다. 따뜻한 육수가 스며든 하얀 쌀밥은 먹기에 알맞은 온도 맞춰진다. 알알이 보드랍게 씹히며 여린 단맛이 은은하다. 곱창, 오소리감투, 염통 등도 밥알 사이에서 ‘졸깃졸깃’, ‘살캉살캉’, ‘존득존득’, ‘보들보들 다양한 어찌씨(부사)  식감을 어금니에 각인시킨다.


숟가락질은 쉼 없이 이어지고 시나브로 뚝배기는 바닥만 덩그러니 드러난다. 비움은 묵직함으로 마음에 저장된다.


투박하고 수수한 시장표 순대국밥은 큼직한 솥에 오랜 시간 끓여낸 정성, 식재료 손질과 수제 피순대를 만든 손맛, 적절한 온도를 맞추는 토렴의 조리법, 넉넉한 양등으로 겨울 뜨내기손님의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해준다.


따끈한 순대국밥 한 그릇에 겨울 덕유산 하얀 서리꽃이 녹아져 내린다. 황간역에서 본 시구처럼 바람 잘 털어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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