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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통피디의 인간극장 체험기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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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보통PD 빅대디 Jun 07. 2024

출연자를 이해한다는 것

화성에서 온 모차르트

이번에 얘기해 보려는 편은 제가 조연출로 6번째 만났던 작품이었습니다. 매튜를 함께 했던 피디님과 다시 한 팀이 되어 진행했던 인간극장이었는데요. 이번에 만난 친구는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어요.

발달 장애 천재 작곡가, 남걸이의 이야기

[화성에서 온 모차르트]

남걸이는 자기만의 세계가 너무나도 확실한 친구였습니다. 주변의 소음에 굉장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변성기가 되어 변해가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에 굉장히 큰 고민을 가지고 있었죠. 그때 제가 생각했던 건 모든 소리를 바로 듣고 피아노로 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음감이었던 남걸이에게 모든 소음들은 음계로 들리기에 어쩌면 스트레스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소리도 자기가 좋아하던 음의 소리가 나고 있었는데 다른 음으로 들리기 시작하는 게, 그리고 그 음으로 내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걸이는 분명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남걸이는 정말 특별한 능력이 많았습니다. 연월일을 말하면 바로 요일을 알려주기도 하고, 자기가 보다가 기억에 남겨야겠다 싶은 것이 생기면 언제든 카메라를 켜고 영상으로 남겨두는 친구였어요. 그 때가 2011년이었으니까 진짜 시대를 앞서 간 거기도 하죠? 그리고 자신만의 나라를 마음 속에 진짜 만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언어도 만들어놨죠. 한구둠어라는 언어였어요.

저와 남걸이가 마음을 통하게 되었던 게 이 한구둠어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한구둠어의 비밀을 찾아냈거든요. 어느 날 밤 촬영을 마치고 잠시 피디님이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저는 남걸이와 한구둠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 이름을 한구둠어로 알려주었습니다. 남걸이는 또 그걸 정확히 읽더라고요. 덕분에 저는 남걸이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남걸이는 그 누구보다도 밝고 맑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남걸이의 가족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남걸이의 세상을 ‘존중’해주는 분들이었습니다. 무시하거나, 바로잡으려 하거나, 가치절하하지 않았습니다. 남걸이의 세상이 남걸이답게 자라갈 수 있도록 단단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족이었습니다. 덕분에 남걸이의 세상은 침해받지 않고,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걸이의 세상을 튼튼하게 지지하고 보호해 준 남걸이네 가족들

남걸이는 이 편을 함께 하면서 <목이 쉬었어>라는 곡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음악이 나올 수 있었던 건 가족들의 사랑과 존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송을 하고 난 수년 후에 남걸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다녔던 대학의 작곡과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요. 그래서 약속을 잡고 한번 만나볼 수도 있었는데, 어엿한 성인이 된 남걸이의 모습은 참 새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근처에 제가 좋아하던 식당에 가서 식사도 하고 조금 더 인연을 이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남걸이를 보면서 정말 좋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불완전해 보일 수 있지만, 누구보다 단단하고 튼튼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해주는 든든한 가족이 있는 사람. 인간극장에서 딱 찾고 있는 사람이 남걸이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었더랬죠.

대학을 졸업한 남걸이는 지금도 자신의 세상을 스스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며 살고 있습니다. 계속 그 세상 속에서 발견되는 많은 영감들을 음악으로 만들어내면서 평범하게, 하지만 특별하게 살고 있습니다.

남걸이를 만났던 경험은 저에게 많은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피디는 누군가의 세상에 깊이 들어가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출연자 스스로보다도 그 세상을 잘 이해하고 해석해서 세상에 아름답게 꺼내줘야 할 책임 또한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