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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PD 빅대디 Jun 14. 2024

남들이 뭐라 한다고 해도

돌아온 흥부네

인간극장 조연출을 마치고, 다른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의 조연출을 하다가 KBS <글로벌 성공시대>를 통해 연출로 입봉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학교, 오케스트라를 만나다>라는 특집 다큐를 한 편 선배와 함께 공동 연출하고 잠시 쉬던 찰나였어요. 팀장님이 저에게 오셔서 회사의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인간극장 연출을 해보겠니?”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어서 조금 망설여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기로 작정한 프로그램이기도 했고, 또 언제 이 기회가 나에게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컸던 터라 고심 끝에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5년도 되지 않았던 경력에 맡기에는 조금 버겁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어요. 진짜 좀 두려웠거든요. 5부작을 모두 합치면 2시간 30분. 거의 영화에 가까운 내용이 나와야만 하는데,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경험으로 그 길이를 채울 내용들을 찾아내고 발견해 올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연출로 첫 번째 맡을 작품을 찾기 위해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가게 되었던 곳이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의 한 가족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흥부네 집으로 알려진 김정수 아저씨네 집. 회사 선배가 했던 11남매 다둥이 집이었죠. 그런데 이 가족에 새로운 2명의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과 함께 첫째 아들 가정에 또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삼촌 조카가 함께 있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어 다시 이야기를 하기에 충분한 변화가 있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다만,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10남매 이상의 다둥이 이야기는 인간극장을 통해 여러 번 소개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소재이기도 했거든요. 생각 없이 애들만 많이 낳아놓고 뭘 하는 거냐는 등의 충분히 납득할 만한, 하지만 부정적인 피드백도 많이 들었던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인간극장에 소개되는 게 이 분들에게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흥부네 11남매> 편을 연출한 선배도 연락드려서 만나 조언을 구했고, 함께 한 작가님과도 여러 방향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그런 고민을 가진 채로 연출로 맡은 첫 번째 인간극장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집은 늘 시끌벅적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대로 자라고 있고, 많은 아이들 안에는 자기들만의 규칙과 위계가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도 뭐든지 더 주기 어려운 형편이 늘 미안해 하지만,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죠. 분명 넉넉한 형편으로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사는 건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정서적인 풍요로움 또한 분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가 3일 정도 지속이 되다 보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진짜 괜찮은 걸까?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이어갈 ‘꺼리’가 어디에 있을까 고민했지만, 잘 보이진 않았어요. 그래서 회사에 여러 번 전화도 했었습니다. 이거 될지 모르겠다고... 지금이라도 다른 이야기를 찾는 게 낫진 않을까 싶다고...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좀 더 들여다 보고, 관찰해 봐.

그 안에 분명히 답이 있어.”


그렇게 며칠을 더 지켜봤습니다. 아빠가 일하는 물류 창고에도 계속 가고,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갖고 있는 아빠의 무게감과 가족들을 위하는 마음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다니는 학교도 드나들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고민들이 있는지 듣게 되면서 아이들이 갖는 각자의 이야기들 또한 드러났습니다. 그러면서 숨겨져 있던 풍성한 이야기들을 하나둘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제대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하게 되었고, 엄마가 가지고 있던 병도 이번 기회에 치료하게 되었고요. 당면 대신 라면이 들어가는 만두, 주말에 진짜 짜파게티 요리사가 되는 아이들. 서로가 서로에게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어주는 아이들까지...


그러는 동안 겨울의 끝물이었던 계절이 조금씩 봄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겨우내 깔아놨던 짚을 걷어내자 그 밑에 숨어 있던 마늘 싹들이 드러나고, 길가에는 하나둘 들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방치된 것 같던 곳에서 자라는 생명들

그리고 온실 속 꽃과는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어여쁜 길가의 들꽃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흥부네 아이들은 들꽃들이구나!


그때부터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촬영 내내 저를 누르고 있던 건 세상의 일반적인 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낡은 집에, 좁은 공간 안에서 복작대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불편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갖게 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들이 진짜 행복할까?’에 대한 편견과 혼자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편견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맑고, 밝고, 예의 바른, 정말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흥부네 집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들꽃처럼 예쁘게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도 우려했던 반응들도 꽤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의견도 모두 존중합니다. 겉모습만 봤을 때는 분명히 우려가 될 만했으니까요. 심지어 저희 제작사 대표님도 외부의 시선과 다르게 너무나 평화로운 가족들의 이야기가 긴장감을 주는 느낌이라고 자평하셨으니... 시청자들은 오죽했으랴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3주라는 시간 함께 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 것은, 아이들 모두의 모습이 참 기특했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다른 친구를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아는 아이들로 (가족 밖에서의 모습도요), 사랑 많은 아이들로 자라고 있다는 거였어요.


남들이 뭐라고 해도... 누구보다 서로에게 배려가 넘치고 사랑이 가득한 흥부네 가족. 박씨를 물어다 주는 제비가 설령 없다고 해도, 들꽃 같은 이 아이들이 계속해서 예쁘게 잘 자라기를 지금도 계속 기도합니다.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인간극장 <돌아온 흥부네> 1부 다시 보기

https://youtu.be/jkrBt4OiK9Y?si=uWs1-ARQO3zhW1U8

인간극장 <돌아온 흥부네> 1부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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