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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PD 빅대디 May 31. 2024

내가 재미있어야 남들도 재미있다.

내 사랑 짚신 영감

인간극장 조연출도 어느덧 반년을 향해 가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매튜 편을 시작으로 제법 조연출로는 사고 없이 무난하게 일을 잘 배우고, 잘 처리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을 즈음, 인간극장에 처음 오신 피디님과 함께 5번째 인간극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가 3주를 연속으로 인간극장을 제작하는데, 2번째 텀에 들어가는 방송이었어요.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1번, 3번 텀인 촬영장에는 도움을 드리러 갔었지만 덕분에 오히려 제가 조연출하는 촬영 현장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래서 더 죄송하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던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편집을 함께 도와드리면서 그때까지 했던 어떤 인간극장보다도 재미를 느꼈던 저만의 레전드 편이었습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노부부 케미가 넘쳤던

[내 사랑 짚신 영감] 편


전남 곡성의 짚풀 공예 장인인 임채지 할아버지의 이야기였습니다. 짚풀 공예에 대한 얘기를 하면 한없이 진지해지던 이야기가 집에 돌아와 할머니와 케미가 보이게 되면 갑자기 유쾌한 (어쩌면 코미디로까지 보이는) 이야기로 바뀌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어요. 특히 할머니의 입담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처음 의도와는 다른 새로운 재미가 있었습니다.


당시 연출이셨던 피디님의 건강 상의 문제 때문에 많은 양의 본편 편집을 도와드리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예고나 다음 이야기의 리듬과는 완전히 다른 ‘진짜’ 인간극장의 편집을 해 볼 수 있었죠. 느릿느릿, 여유롭게, 누군가의 걸음을 자르지 않고 따라가며 공간을 보여주고, 인물을 설명하는 특유의 템포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촬영본에 잡힌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며 거기에서도 이야기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도 참 좋았고요.


인간극장을 완성해 가는 건 어쩌면

영상보다도 말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영상 속에서는 출연자의 삶의 외형이 드러나지만, 그 깊이 담긴 생각과 철학은 결국 말을 통해서 나오거든요. 그림보다도 말에 더 귀 기울이며 편집을 하는 습관이 생긴 것은 어쩌면 이때 처음 경험했던 말의 힘을 느끼면서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따로 있을 때의 모습도 굉장히 의미가 있었지만, 저는 두 분이 만나서 나누는 대화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때로는 싸우는 말들조차 너무 정겹게 느껴졌거든요. 투닥투닥 서로의 흠, 아쉬운 부분들을 이야기 나눌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안에 느껴지는 세월의 정이 신기하게 따뜻한 감정을 일으키는... 조금 높은 고성이 오가더라도 이상하게 제 입에는 미소가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가님이랑 말소리 하나하나를 연결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참 즐거웠습니다.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 생각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할아버지의 고집스러운 짚풀 공예에 대한 애정과 마음이 할머니의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태도와 부딪히며 나오는 찌릿하고 유쾌한 케미가 이 편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전 조연출 하면서 다음에 소개할 편과 이 편이 제일 재미있었거든요. 그리고 당시에 이 편이 시청률도 꽤 높게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아, 내가 재미있어야 다른 사람도 재미있겠구나.’


물론 내가 재미있다는 게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재미있을 거라는 보장은 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부터 재미있어야 남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달까요? 그러면서 출연자를 선정하는 기준을 내가 연출을 한다면 그렇게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만나자!


그리고 이 바로 다음에 진행한 인간극장을 통해서 조연출로 만난 인간극장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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