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위 매튜의 장모님 사랑해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힌 이후로 제 꿈은 <인간극장>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인간극장 조연출 채용 공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바로 지원서를 냈고, 면접도 봤습니다. 그리고 덜컥 인간극장 조연출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편집 프로그램도 새로 배워야 하고 방송에 대한 경험 자체가 전무했기에 한 달 정도 배우고 실전에 투입되기로 했었죠. 그런데 함께 들어오셨던 분이 2일 만에 다른 회사로 가서 갑작스럽게 바로 실제 프로그램에 투입되었습니다.
매튜는 <서프라이즈>와 몇몇 드라마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던 한 가정의 영국인 사위였습니다. 오랫동안 태권도를 배워 수준급 발차기를 자랑하고, 한글도 열심히 배워보려고 노력하던 좀 거대한 귀요미 느낌의 영국 사람이었어요. 이 가정에 닥쳐온 시련은 장모님의 췌장암 진단. 단단하고 강인한 분이셨던 장모님의 투병은 사위였던 매튜에게도 여러 생각을 던졌고, 장모님을 위한 ‘To-Do-List’를 만들어서 하나씩 실천해 가는 모습을 담았던 편이었습니다.
영어가 조금 된다는 것 때문에 연출 선배님의 통역을 도와야 했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촬영장을 함께 갔습니다. 카메라 뒤에서 목소리만 나오는 제작진이 인간극장의 특징인데요. 저는 처음이라 그게 참... 어려웠습니다. 앵글 안에 엄청 걸렸어요. 카메라가 언제 돌아가는지, 언제 누구를 찍는지 전혀 감이 없었으니까요. 편집 시간에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하아, 기석아!’ 였어요. 실제로 어쩔 수 없이 방송에 들어간 컷도 몇 개 있었죠. 그렇게 미숙했습니다. 처음은 다 그런 거니까라고 생각하려고 하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래도 현장을 함께 하며 선배가 어떤 부분을 고민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개입하고, 어떤 생각을 끌어내려고 애쓰는지, 어떻게 애쓰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조연출 때 촬영 현장 전체를 볼 수 있었다는 건 지금 돌아보면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인간극장은 정말 보통 사람들을 촬영합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두면 우리가 아는 보통의 날들이 그냥 흘러가 버립니다. 그렇다 보니 촬영하는 순간 이외에도 출연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촬영에 녹여볼 만한 ‘꺼리’를 찾아내고, 그 ‘꺼리’를 방송에 낼 수 있게 출연자와 상의하며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단 걸 알게 되었습니다.
첫 방송이 감사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처음 만든 예고가 나가는 걸 식당에서 밥 먹으며 TV로 봤던 순간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인간극장의 백미인 다음 이야기도 만들어서 붙이고 앞뒤 타이틀에 들어가는 짧은 컷들도 골라서 내보냈습니다.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스크롤에 나오는 영상도 만들고, 차근차근 배워갔습니다.
첫 인간극장에서 저는 여러 모로 삐걱거렸지만, 꿈을 산다는 즐거움에 피곤도 잊고 참 행복했습니다. 작은 성공의 경험도 적잖이 얻었고요. 나쁘지 않은 첫걸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인간극장의 일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