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은 슬프지 않았다. 아니,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러리라고, 나 자신도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것만큼 슬프지는 않았다. 장례지도사가 거듭 “마지막 말을 건네라.”, “마지막 인사를 해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이제 너는 슬플테니 어서 슬퍼하거라 하는 것이 나의 슬픔을 틀어막았다.
처음 이 안치실에 왔을 때를 생각했다. 아마도 스무 시간 정도 전이었던 것 같다. 그 전까지 아버지는 응급실 병상에서 누워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렇게 병상 옆에 앉아 있으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옆에 앉아 있었고, 다르지 않았다. 아침, 병원에서 손을 잡으면서 ‘오늘은 손이 좀 차네.’라고 생각했던 정도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나는 좀 더 애틋하게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결정된 운명이었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간격을 좁히며 다가와 오늘 아침에는 그것이 그렇게 머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순간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병상에서 앉아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진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정말로 뜻밖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말로 죽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응급실 안에서의 죽음은 조용했다. 옆에 있는 환자는 지금 옆에 시신이 누워 있다는 것을 알까. 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싶을 정도로. 병상의 커튼을 치고, 오늘 아침부터 그랬던 것과 같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얼굴을 간혹 어루만지며 조용히 앉아 있을 따름이다. 아버지는 밥을 먹지 못한지가 몇개월이 넘었고, 아무 말을 하지 못한지 조금 되었고, 며칠 전부터는 무엇을 인지하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거친 숨을 누워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조금 전과 지금은, 가쁜 숨소리 외에는 다르지 않은 것만 같았다. 나는 여러가지 고민들을 했다. 오전 반차를 내고 나왔는데 길어지는 응급실 대기시간을 보며 회사를 돌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했다. 진료를 보면 여기에 입원을 하라고 할까, 입원을 하라면 순순히 입원을 할까, 예약되어 있는 호스피스에 들어갈테니 그냥 원래 있던 병원으로 돌아간다고 할까. 그리고 그런 고민들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모를 아버지에게 “역시 대학병원 응급실은 오래 걸리네요. 오늘 중에 뭐가 되기야 하겠죠.”라고 간추려 말했다. 그렇게 말했던 조금 전과 지금은 병상의 커튼을 조금 더 신경써서 잘 닫아 놓은 것외에는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없고, 조금 전의 고민들도 이제는 다 없다.
의사가 찾아와 몇 개월 간 아버지 속에 심어져 있던 관들을 꺼내 갔다, 그것이 아버지의 안으로 들어갈 땐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생각했다. 그보다 전에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아버지를 어렵게 했는지를 생각했다. 그중에 가장 아버지를 어렵게 한 것은 나와 누나였을 것이다. 내 키가 120cm도 안되는 때에, 누나는 나보다 더 작았을 때에 아버지는 이불을 부둥켜 안고 우는 나를 할머니 집에 두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아버지는 보일러를 고치고, 도배를 하고, 수도를 고치며 어린 나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쉽게 크지 않는 나를 아버지는 어려워했을 것이다. 아버지 속에 심어진 관들처럼 나는 어렵게 들어가 매끈하게 나왔다. 이제는 아버지가 더는 고민할 것은 없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가 왔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그를 나는 처음에는 의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능숙한 태도로 커튼 속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저를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순순히 그가 지시하는 것들을 했다. 아버지를 살짝 들어 등에 들것 같은 것을 끼워넣고 병원의 침대 시트를 하나 더 끼워넣었다. 간병을 하며 수없이 했을 비슷한 작업을 하며, 다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움직이는 것이 아주아주 조금은 더 가볍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은, 그렇게 아버지를 옮긴 후에는 그 익숙한 병원 시트로 아버지를 머리까지 하나로 감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제야 실감이 났다. 조금 전까지 다름없이 내 옆에 누워 있던 아버지는 이제는 다름없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를 감싼 저 시트를 이제는 내 마음대로 걷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다. 들것에 실은 아버지를, 아니 아버지의 시신을 장례식장 직원과 함께 들고 응급실을 나섰다. 그리고 운구 앰뷸런스에 다시 아버지를 실고 장례식장으로 움직였다. 장례식장은 병원 주차장 건너에 있었다.
차로는 너무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자마자, 아버지는 내려져 안치실로 들어갔다. 거리가 너무 짧아서인지 모든 일들은 너무 빠르게 이뤄지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는 나에게 몇 가지를 안내했고 서명을 요청했다. 그리고는 더는 할 것이 남아 있지 않으니 나가달라고 했다. 나는 모든 것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조금 전까지 나와 함께 병상에 있었고 다름이 없었다. 조금 더 신경써서 커튼을 닫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들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은 감추고 덤덤하게 알았다고 말하고 나가려 했다. 그렇지만 발이 무거웠다. 이제는 정말 아버지의 얼굴과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조금 전 내가 감싼 시트는 그렇게 걷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일러주지 않았다. 다만, “저를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을 따름이다.
뒤돌아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가지마세요.’라는 말은 속으로 했다. 아버지가 아니면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사실은 묻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몇 개의 서명과 함께 더는 말할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얇은 시트 너머로 여전히 아직은 따스한 아버지의 손이 만져졌다. 어제도 잡았고, 오늘 아침에도 잡았고, 나는 조금 이따가 다시 출근을 할지, 병원에 입원하라 하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트가 그렇게 두껍게 덮힌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가지마세요.’라는 말은 속으로 했다. 발은 무겁고 나는 묵묵히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모든 것은 너무 빨랐다. 나는 안치실에서 조금 이르게 아버지의 입관을 치뤄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