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전화였다. 그 전화가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지나고나면 확실한 것들이 그 당시에서는 다 뿌옇게 보였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고, 나의 첫 고민은 기차를 탈지, 차로 운전해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선택은 차였다. 기차가 빨리 도착하기는 하겠지만, 하루나 이틀뒤, 퇴원을 할때를 생각하면 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을 해서 마주한 것은 응급실의 아버지였다. 그 때, 내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상황은 모든 것이 기억나는데, 나의 감정, 내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생에서 마주하기 어려웠던 모든 상황에서 마찬가지다. 정확히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서 일정한 기억과 감정을 지워버린 것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습관처럼 감정을 지우고, 침착해야해, 라는 문장을 되뇌이며,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했다.
아버지의 주된 진단은 외상성 뇌출혈이었다. 의사는 그저 그렇게 말했다. CT의 화면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을 이같은 상황을 처음 겪는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줄 생각은 애초에 없어보였다. 신경외과. 종합병원, 앞으로 일년반이라는 시간을 함께할 그 곳에서 친절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만약에, 당신이 이제부터 신경외과로 진료를 시작해야한다면, 아마 지금까지 이비인후과나 정형외과 같은 진료를 보는 것과는 다른 경험을 시작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토록 단순한 감기나, 일시적인 질환에 대해서는 친절한 설명, 충분한 간호, 때로는 과한 처치가 이루어지는데 반해, 극도로 위중한 질병에 대해서는 환자가 받을 수 있는 설명이나 케어는 물류창고에서 배송을 기다리는 우편물과 다름없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다. 기껏해야 항히스타민제나 소염진통제를 처방받을 때는 약사가 하나하나 약에 대해 설명해주지만, 대학병원에서는 펜타닐을 맞더라도 그저 진통제, 라는 수준의 설명이 전부였다. 입원했던 병원만 일곱군데였으나, 그 어느 곳에서도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다.
그러니 환자들은 공부부터 해야한다. 교수들은 마치 신경외과 질환에 대해서 사람들이 모두 장염이나 독감 정도의 사전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료를 위해서는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투병을 시작하면 진단명 별로 가입해야하는 인터넷 카페들이 있고, 거기서 정보들을 얻는다. 의학정보를 카페에서 얻는다는 사실에 부정적인 반감이 들었던 나도, 선행 학습의 결과가 있은 후로, 의사의 짧은 시간의 설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각 질병 별로 만들어져 있는 카페는, 의사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질병의 대체적인 진행과 경과, 환자와 보호자가 매 다음 단계를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자연주의 치유나 대체의학 등의 광고만 가득한 그런 곳이라기 보다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전, 그리 친절하지 않고, 또 응당 다 알고있으려니 하고 진행하는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한글공부에 가까웠다. 그러니, 이제 막 응급실에 도착한 사람이라면, 먼저 해당 진단에 대한 카페에 가입하고 정보를 얻는 것부터 할 것을 추천한다.
그러나 학습되기 전 나는, 그 진단이 대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