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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Mar 18. 2024

병식, 지남력, 섬망

외상성 뇌출혈 발생 일주일의 간병

"소변주머니가 이 눈금 위로 차면 여기 밸브를 열어서 소변통으로 소변 주머니를 비워야 해. 비우고 나면 여기 관을 알콜솜으로 닦고, 소변통은 밖에 오물처리실에 버리면 돼, 소변 주머니는 항상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바닥에 끌리지 않게 해야 해.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깐"

누나는 능숙하게 소변 주머니를 처리하는 법을 나에게 설명했다. 하루 만에 누나는 병원 생활에 베테랑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나 며칠이면 병원생활의 몇 가지 것들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중에 배설물 관리는 병동에서 가장 기본적인 소양중에 하나였다.


아버지는 부쩍 회복되었다. 여전히 언어는 무너져있었으나, 말하는 톤만큼은 안정되었다. 술에 취한 주정거림에서 좀 더 일반적인 대화의 리듬으로 변해갔다. 다만, 그 안의 단어들은 모두 뒤죽박죽이어서 문장 자체로는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쓰는 사람과도 말투, 몸짓, 눈빛으로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듯이, 말투, 몸짓, 눈빛으로 어느 정도 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었다. 물론 아버지는 왜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궁금해했고, 무엇인가를 불편해했고, 무엇보다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당장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아니, 힘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을 수 있다. 불과 이틀 전까지 노동을 하던 근육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으니. 다만, 걷는다.라는 행위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움직임을 아버지는 통째로 잊어버렸다. 수많은 근육을 이완하고, 수축하는 프로그램이 망가져서 걸을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신의 언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도, 무엇인가 잘못되어 지금 병원에 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병원의 표현으로는 '병식'이 없었다.


특히, 아버지는 자신에게 꽂혀있는 수많은 주삿바늘들을 불편해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힘들게 꽃은 주삿바늘을 뽑았고, 그러기에 보호자는 단 10분도 환자 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주삿바늘을 뽑을 때까지도 보호자가 감지하는 것을 놓친다면, 그다음은 낙상이었다. 아직 한 발짝도 걸을 수 없는 아버지가 침상 아래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 외상성 뇌출혈 환자에게는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기에 나는 하루종일 말이 통하지 않는 아버지와 대화 아닌 대화를 계속해야 했다.


아버지가 주삿바늘과 링거줄을 왜 그리 신경 썼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끝없이 매만지고 있었다. 마치, 어린 아기가 위험한 물건을 만지작 거리는데, 그것을 뺏을 수는 없어서 초조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것을 지켜보며, 아버지, 그거 주사니깐 빼지 마세요. 를 끝없이 말했다. 그러다 한 번은 링거줄을 붙여놓은 반창고가 떨어져서 다시 그것을 정리해서 붙였는데, 그것이 몹시나 마음에 들었는지 아버지는 꼭 그 위치와 방식으로 반창고를 붙이기를 원했다. 행여라도 교대한 간호사가 오면 링거줄을 고쳐 붙일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것을 지켜보았고, 정말로 링거줄을 고쳐 붙이기라도 하면 병실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도대체 왜 그렇게 주삿바늘에 집착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주삿바늘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현실 속에 유일하게 뚜렷하게 보여지는 현실 그 자체였는 지도 모르겠다. 떨어진 인지력으로 이해할만한 유일한 것은 주삿바늘이었기에, 그렇게 하루종일 그것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그렇게 간병하는 시간을 하루종일 주삿바늘과 링거줄과 씨름하며 보냈다.


그리고 병원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이르면 오후 다섯 시, 늦어도 오후 여섯 시에는 식사를 하고 여덟 시, 늦어도 아홉 시에는 소등을 한다. 불이 꺼지고 사방이 조용해지면, 일단 아버지도 자리에 누웠다. 실상은 하루종일 누워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내내 뒤척였다. 아버지는 낮과 밤의 구분이 아직 없었다. 마치 통잠을 자지 않는 백일 전의 아이처럼, 아버지는 선잠을 조금 자다가 뒤척이고를 반복했다. 시간의 지남, 낮밤의 지남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병원의 표현으로는 '지남력'이 없었다.


낮과는 다른 주삿바늘과의 씨름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주삿바늘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침상을 몇 바퀴를 구르며 잠들었다. 그러면 링거줄이 온몸을 칭칭 감아 주삿바늘이 뽑힐 테니, 자는 동안에 계속해서 링거줄을 정리해야 했다. 링거줄도 오죽 많아서 30분 간격으로 일어나 엉킨 링거줄을 풀어내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을 자고 나면, 지금이 낮인 듯 눈을 뜨고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물어보는 아버지의 엉킨 질문들에 답하고, 걷지 못하는 다리로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는 듯한 행동을 제지하는 일들을 반복했다. 그러나 여덟 시부터 시작된 병원의 밤이 새벽 두 시, 세시를 지날수록 간병하는 사람도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항상 새벽 네시나 다섯 시쯤엔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캄캄한 밤중에 아버지가 침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소변이 보고 싶은데 소변줄이 꼽혀있으니 어쩔 줄 모르는 것이다. 졸린 목소리로 "아버지, 그냥 하시면 돼요. 다 그렇게 되게 되어있어요"라고 말했으나, 아버지는 좀처럼 눕지 않았다. 잠이 좀 깨어 주변을 살펴보니, 이미 꼬여버린 링거줄은 어디선가 빠져 수액이 여기저기 흘러넘치고, 주삿바늘에서 역류한 것인지, 어딘가의 주삿바늘이 빠진 것인지 피도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어서 아버지를 진정시키고, 피곤한 당직간호사를 불러야 했다. "아버지, 누. 우. 세. 요. 누. 우. 세. 요" 깊게 누르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눕히려 하였으나 아버지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다 허공에 대고 "뭐여. 넌 뭐여" 라는 말투로 무언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새벽 네시나 다섯 시께에 더 크게 찾아오는, 돌발적인 정신적 각성상태, 병원의 말로 '섬망'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또 병실의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다 깨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누우시라구요! 누우세요!" 나의 외침과 아버지의 고함이 병동을 흔들었다. 간호사 호출 버튼을 달칵달칵달칵달칵 연달아 눌렀다. "아버지 누우세요. 누우세요. 제발요." 이제는 적의가 나에게 돌아왔다. 지금은 나를 알아보는 시간이 아니었다. 몇 가지 욕설과 고함과 알 수 없는 단어들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소란이 시작되었다. 힘으로 아버지를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양팔을 잡고, 다른 간호사들과 함께 팔을 양쪽 침상난간으로 가까이 대었다. 손목에 벨크로가 잠기고, 억제대가 침상 난간에 묶였다.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리 없는 아버지는 침상이 덜컹거리도록 저항하나 도저히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억제력에 지쳐갔다. 묶여있는 아버지를 보기 어려워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간다. 당직 간호사의 항상 억제대를 해야 한다는 지침에 제가 항상 같이 더 잘 돌보겠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에이 진짜 병실을 바꾸던가 해야지" 나직이 불 꺼진 침상 여기저기에서 불평이 들려왔다. 너무 크지는 않되 모두가 들리는 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보조 의자에 누웠다. 섬망의 혼란보다 큰 간병의 피로가 나를 급히 재웠다. 억제대를 계속해야 한다는 지침을 들었으나, 내일 아침에는 다시 억제대를 풀을 것이다. 이런 소란은 오늘로 끝나고 내일은 아버지가 조금 더 회복할 것이다. 내일은 좀 더 대화가 될 수도 있고, 일어나 걷는 것도 그렇게 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 밤 생각하며 몇 날 며칠을 보냈다. 몇주가 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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