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 119에서 전화가 왔어. 아빠가 자전거를 타다 사고가 났는데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대. 지금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데 너가 가볼 수 있어? 나는 지금 외근나와서 바로 갈 수가 없어."
시작은 전화였다. 누나가 전화를 해서 나에게 아버지가 다쳤다는 것을 전했다. 119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과, 아버지가 술을 마셔서 많이 취했다는 것과, 자전거를 타다 다쳐서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는 것을 전했다. 그 전화가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지나고 나면 확실한 것들이 당시에는 다 뿌옇게 보였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고, 낯설었다. 확실한 것은 병원으로 아버지가 이송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전화를 받는 나의 첫 고민은 기차를 탈지, 차로 운전해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나는 차를 선택했다. 기차가 빨리 도착하기는 하겠지만, 하루나 이틀뒤, 퇴원을 할 때를 생각하면 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착을 해서 마주한 것은 응급실의 아버지였다. 그때, 내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상황은 모든 것이 기억나는데, 나의 감정, 내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생에서 마주하기 어려웠던 모든 상황에서 마찬가지다. 정확히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서 일정한 기억과 감정을 지워버린 것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습관처럼 감정을 지우고, 침착해야 해,라는 문장을 되뇌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잠든 것처럼 누워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했다. 119는 술을 마신 것 같다고 했다. 응급실로 가는 길에도 그것이 무슨 얘기인지 궁금했다. 조금 전 나와 통화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술을 마셨다는 건가. 차라리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신 것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술에 취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아버지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린 누나와 나를 먼저 재우고, 방과 다름없는 거실에서 맥주를 딱 한 병 마셨다. 하루종일 나와 누나를 데리고 서울 구경을 한 뒤, 조용한 방에서 맥주를 한 병 마셨다. 한 병, 그것이 나와 누나와 하루를 보낸 후에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한다는 말은 처음부터 잘 못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응급실의 아버지는 술에 취한 듯 소리를 지르다가 횡설수설하다가 잠들었다가 했다. 오늘 퇴원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의 진단은 외상성 뇌출혈이었다. 의사는 그저 그렇게 말했다. CT의 화면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줄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였다. 신경외과. 종합병원,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할 그곳에서 친절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의사가 보여주는 화면과 진단이 대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단지 궁금했던 것을 쉽게 풀어 물었다.
"그래서 언제쯤 퇴원하게 될까요? 주말에는 퇴원을 하게 될까요?"
바로 퇴원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았지만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늦은 퇴원은 주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주말쯤엔 퇴원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입원은 한 달일 수도 있고, 두 달일 수도 있고... 그리고 완전한 회복은 영영 못할 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의사의 말에는 약간의 조소가 섞여있었다. 나의 무지가 잘못인양 조소하는 그의 말을 되짚으며 그의 대답이 항상 최악의 상황을 말하는 의사의 직업적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직은 낯선, 앞으로는 그전과 전혀 똑같아질 수 없는 하루를 좀 더 쉽게 맞이해 보려고 했다.
응급실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수없이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몰랐다. 아직은 코로나가 한창이었고, 병원들은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몇 시간 동안 전화를 돌려보고 나서야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119를 타고 이송된 이 낯선 도시의 낯선 병원에 남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밤,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보내졌고, 다음날에서야 다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버지는 다음날 낮이 되어서야 병실로 내려왔다. 아버지가 배정된 병실에서 기다리던 나는 네댓 명의 간호사와 함께 나타난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중환자실에서 이제 막 내려온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한 듯, 잠에 취한 듯했다. 이동식 침대에서 병동 침대로 아버지를 옮기기 위해 많은 간호사가 동원되었고, 아버지는 저항했으나 많은 이들을 모두 이기지 못했다. 아버지의 모습은 술에 잔뜩 취한 할아버지 같았다. 할아버지는 종종 술에 크게 취하셨고, 거친 욕설을 뱉으며 잠꼬대를 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한 할아버지처럼 욕을 하고 간호사의 처치에 저항했다. 왜 이렇게 많은 간호사들이 함께 동원되었는지를 알았다.
나 역시 아버지를 옮기는 일에 동참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버지의 몸이 단단한 것을 알았다. 예순다섯을 넘은 아버지는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순간, 나의 뜻에 저항하는 아버지의 몸이 얼마나 단단하고 강한지를 알았다. 아버지의 노동이 나의 노동보다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지를 알았다.
병실에 돌아온 아버지가 거친 저항을 마무리하고 안정을 찾자 조금씩 아버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어제보다는 조금은 의식이 있어 보이는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았고, 본인의 이름도 기억하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밖에는 무엇도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도, 여기에 본인이 왜 있어야 하는지도, 그리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말했으나,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무서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가 잘 못 되었다. 그 어딘가가 어디까지 닿아있는 것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그 후로 일어날 모든 일처럼, 당시에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하나,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모든 어려운 예감들을 소리 내 말하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누나에게도 어렵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말을 좀 이상하게 하고, 지금은 안정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누나가 이윽고 도착했을 때 누나는 크게 울었다. 우는 누나를 두고 나는 아버지를 퇴원시키려고 가져온 차를 혼자 운전해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아버지가 살던 집 근처를 지나갔다. 내가 운전한 길로 아버지는 119를 타고 이송되었을 것이다. 문득, 이번 주말이 지나고 다음주가 지나도 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정확히 낙관적이었는지 비관적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모두였던 것 같다. 이 시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두웠다. 깊은 터널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