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다 뿌옇게 보였다

by 한여름

“119에서 전화가 왔어. 아빠가 자전거를 타다 사고가 났는데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대. 지금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데 네가 가볼 수 있어? 나는 지금 외근 나와서 바로 갈 수가 없어.”


어느 오후,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에게 119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과, 아버지가 술을 마셔서 많이 취했다는 것과, 자전거를 타다 다쳐서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는 것을 전했다. 그것은 뜻밖이었다. 아버지는 몇 시간 전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그날 서울로 오겠다고 했다. 갑자기 아버지가 취했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걱정보다는 불편, 다소간의 짜증이었다. 나는 우선 기차를 탈지, 차를 가져갈지 고민을 했다. 기차가 빨리 도착하기는 하겠지만, 하루나 이틀 뒤 퇴원을 할 때를 생각하면 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려가는 내내, 아버지의 조심성 없음을 어떻게 타일러야 할지 생각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잠든 것 처럼 누워 끊임없이 무언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나, 이상한 풍경이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좋지 않은 상황인 것을 예감했다. 아니, 그때, 내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상황은 모든 것이 기억나는데, 나의 감정, 나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생에서 마주하기 어려웠던 모든 상황에서 마찬가지다. 정확히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서 일정한 기억과 감정을 지워버린 것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오랜된 습관대로 감정을 지우고, ‘침착해야 해.’라는 문장을 되뇌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아버지의 진단은 외상성 뇌출혈이었다. 의사는 그저 그렇게 말했다. CT 촬영 화면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줄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였다. 친절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으나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의사가 보여주는 화면과 진단이 대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단지 궁금했던 것을 어렵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쯤 퇴원하게 될까요? 주말에는 퇴원을 하게 될까요?”


나의 질문에 대한 의사의 대답에는 약간의 조소가 섞여 있었다. 나의 무지가 잘못인양 그는 입원은 한 달일 수도, 두 달일 수도 있으며 완전한 회복은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항상 최악의 상황을 말하는 의사의 직업적 특성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막연한 기대를 했다. 아니면 여전히 나의 시간표에 들어와 있지 않은 아버지를 밀어내려고 하는 것이거나. 아버지는 계속해서 술취한 듯 잠꼬대를 하고 있었으나, 곧 깨어나면 별일없이 머쓱한 기색을 내비치며,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한 수고를 웃으며 이야기할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오늘 밤 중환자실에 지낸다 했지만 하루가 지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 같기도 했다.


중환자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버지는 다음날 낮이 되어서야 병실로 내려왔다. 배정된 병실에서 미리기다리던 나는 네댓 명의 간호사와 함께 나타난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중환자실에서 이제 막 내려온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한 듯, 잠에 취한 듯했다. 이동식 침대에서 병동 침대로 아버지를 옮기기 위해 많은 간호사가 동원되었고, 아버지는 저항했다. 모든 것이 잘되진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보다는 조금은 의식이 있어 보이는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았고, 본인의 이름도 기억하고 말할 수 있었으나 그 밖에는 무엇도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도, 여기에 본인이 왜 있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말했으나,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가 잘 못 되었다. 그 어딘가가 어디까지 닿아 있는 것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그 후로 일어날 모든 일처럼, 당시에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 하루도 되기 전 어느 오후에 나는 이곳에 퇴원을 생각하며 차를 운전해 왔다. 그 차는 계속해서 주차 요금이 더해지고 있었다. 이토록 길게 이곳에 있게 될 줄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정확히 낙관적이었는지 비관적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모두였던 것 같다. 이 시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깊은 터널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시간이 이미 멈췄다는 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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