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고를 받았다. 나는 내심 기뻤다. 장례식장의 향 냄새와 곡소리, 소란 속에 숨겨진 슬픔의 냄새를 맡고 싶었다.
장례식장에 가니, 과연 그곳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곳은 화장장과 납골당이 장례식장과 모여있는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마침, 명절이 머지않아 이르게 꽃 한 다발을 전하려는 성급한 사람들이 몇 있었다. 나는, 산 사람으로 산 사람의 삶을 살다가 오랜만에 죽은 사람들을 위한 곳에 오니 좋았다. 아버지는 산 사람의 곳에 있지 않고 죽은 사람들의 공간에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또 퇴근하고, 주말의 계획을 세우다 이곳에 오니 위로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멀리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식날, 나는 곧잘 농담도 건네고 밥도 잘 먹었다. 요즘의 장례란, 상주가 잠도 푹 자고, 밤에는 돈통도 정리하며 보내는 행사인 것이다. 나는 3일장의 이틀을 빈소에서 잤다. 조문객들이 모두 떠나고, 친척들이나 가족들도 모두 떠나고, 나랑 아버지만 남아서 빈 향로를 채우는 시간이 좋았다. 자다 깨다 하며 빈 향로에 향 하나씩을 혼자서 채우는 것이 좋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자는 것처럼 좋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은퇴하였을 때, 어디 아파트의 시설 관리 자리 나 얻으려고 만들었을 궁색한 이력서를 위한 증명사진이 있었다. 그걸 언젠가 핸드폰으로 흔들리게 찍은 사진 하나는 커다란 영정사진으로 만들어져 왔다. 장례에 이르러 ai의 눈부신 발전에 감탄했다. 첫 손주의 돌잔치에도 등산복을 입고 와서 나에게 한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그 모든 증명사진도 다 등산복 차림이었지만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흔들린 기색도 없이, 버젓한 정장차림이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오랜만에 아프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이 반가웠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이제는 아프지 않아서 좋았다. 마치 아버지가 건강해진 것만 같았다. 너무 오랫동안 아프던 모습을 보아, 아프지 않았던 아버지가 불과 십몇개월 전만 하더라도 있다는 것을 잊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는 커다란 사진 속에서 환한 꽃장식 사이에 있었다. 아버지를 알던 사람도 아버지를 모르던 사람도, 아버지를 한번 보고, 절을 하고 갔다. 아버지를 자주 보지 못한 사람들도 이날만은 아버지를 찾아왔고, 잊고 지내던 사람들도 아버지를 말하고 갔다. 아버지의 결혼식 이후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위해 모인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례식 밤에는 미리 짐을 챙겨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 자리를 비워줘야 했고 옷을 벗어 반납해야 했다.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챙길 짐들은 적지 않았고, 마치 다음날 일찍 공항으로 출발하는 여행의 마지막날처럼, 마지막 밤을 분주히 정리했다. 그렇게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또 들어가 부족한 잠을 잘 사람들은 자러 가고 또 한 번 건강한 아버지의 영정사진과 나 혼자만 남았을 때, 이제는 정말로 아버지의 시간이 끝이 나는 것을 알았다. 이제 몇 시간 뒤면, 아버지를 찾아온 수많은 손님들은 온데간데없고, 또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척들과도 헤어지고,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가 이제는 더 이상,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갈 일도, 매일 점심 알람을 맞춰 아버지에게 전화할 일도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픈 일 년 동안, 아버지는 적어도 우리 가족들, 친척들 사이에서는 주인공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어느 정도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곧 끝이 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아버지의 빈소 앞에서 잠을 깨다, 자다 하면서 몇 번의 향을 더 피우면, 더는 아버지의 시간이 아닌 것이다.
모든 마지막인 것들은 안타깝다. 지는 꽃들도, 지는 잎사귀들도. 그것이 그래도 꽤 많이 가까웠던 아버지라면, 더 많이 안타까운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참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 하나같이 어려웠던 시간은 이제는 내가 기억하는 반쪽들만 남았다가, 언젠가는 그 반쪽마저 사라질 것이다. 나는 종종 내 딸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테고, 그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 딸은 언젠가 나 마저 사라질 때에나 한번쯤 그 이야기를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시간이 곧 끝이 난다.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옆에 빈소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노래도 부르고 하던데, 아버지의 종교가 따로 없는 것이 아쉬웠다. 나는 가사도 모르는 멜로디가 왠지 슬프고 좋아서 웅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버스를 타고 장지로 갔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부족한 잠을 잤다. 산사람은 자야 한다고 했고, 나는 자고 싶지 않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와서는 검은 상복을 모아 실었다. 나중에 반납할 이 옷들이 하나라도 숫자가 맞지 않으면 변상해야 했다. 상복의 셔츠와 치마, 자켓과 저고리의 개수를 세면서 장례식은 끝났다. 아버지의 시간의 끝났다.
집에 돌아오니 어린이집에 갔던 딸이 돌아왔다. 이제 막 두 돌이 된 딸은, 시간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해맑은 미소로 시간은 잠시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시간, 일 분, 일 초를 쉬지 않고 삶을 사는 그녀는 삶과 시간의 여신이다. 슬픔은 시간이 흘려보낸다.
오래지 않아, 장례식이 또 있어서 반가웠다. 아직은 다 흘러 보내지 못한 장례식의 추억이 그곳의 냄새로 남아있었다. 우거지 해장국을 반쯤 먹고 나오는 길에 쓸쓸한 추모담과 이르게 꽃을 들고 찾아온 몇몇과 상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며 세상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어 반가웠다. 그 모든 것들이 비슷하게 보였고, 이제는 지나간 장례를 추억하게 해 주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