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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Sep 01. 2024

다시 모든 것의 처음으로

마지막 시간으로

아버지가 응급실에 갈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마지막이구나. 아버지는 응급실에 갈 때마다 한 가지씩을 잃었고 그것이 낯선 나는 이내 마지막을 떠올렸다. 그렇게 몇 번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알았다. 마지막은 훨씬 더 느리게, 천천히, 오래 걸려서 찾아온다.


아버지가 삼키는 것을 잃어버리고 더는 콧줄 외에는 식사를 하지 못하게 되자, 금요일 저녁의 면회에도, 주말의 면회에도 더는 아버지에게 사갈 것이 없었다. 더는 내 손에 든 것으로 아버지를 위로할 것이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활짝 웃는 딸과 같이, 아버지는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삶에 마지막에 이르러 아버지에게는 그토록 열심히 일해 모았던 어떤 것도 아닌, 나만이 남았다. 나는 아주 잠시 나를 보고 반가운 눈빛을 보내고 이내 초점을 잃고 잠이 드는 아버지에게 무엇이라도 말해보려 했다. 이제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아버지가 초점을 잃은 어느 일요일, 병원 대신에 딸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다. 아이의 첫 놀이동산이었다. 그렇게 한주의 면회를 거르고, 그다음 주말이 되어서야 아버지를 찾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놀이동산 이야기를 전하기가 미안했다. 아버지의 면회 대신, 이 어렵고 무거운 병실 대신, 환하고 즐거운 곳에 다녀온 것이 잘못인 것인 양, 아버지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는 놀이동산 이야기를 듣자, 잠시 시야가 환해졌다. 그 순간, 아버지는 나와 누나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던 어떤 순간으로 잠시 다녀왔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몇 가지 질문들을 더 던지자 아버지는 다시 시야의 초점을 놓고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점점 더 시야를 잃고 조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최대한 의자를 크게 눕혀 아버지를 앉힌 다음 한숨 푹 잠이 들면 대전까지,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라고 했었을 그곳까지, 다녀오는 계획이었다. 그 여행길에 아버지는 잠시도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도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옆자리에 지친 누나가 아버지에 기대 잠이 들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잠시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여행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고 아버지는 손과 발이 차가운 채로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날밤 아버지는 다시 응급실로 실려갔다. 흡인성 폐렴이었다. 그 후로 호흡기 내과에서 치료를 받고 아버지는 다시 퇴원했으나 아버지는 한번 더 깎이고 말았다. 아버지는 말하는 것, 걷는 것, 삼키는 것에 이어 이제 숨 쉬는 것을 어려워했다. 다시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 때, 아버지는 다시 안 좋아지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그리고 마지막은 더 느리게 온다는 것 모두를 알았다. 요양병원에서는 응급실로 아버지를 다시 내몰려고 했으나 나는 응급실을 거부했다. 대신, 조용한 마지막을 준비할 호스피스를 찾았다. 이제는 정말로 아버지의 마지막이 가까이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다시 생각하던 늦은 밤, 새벽 고속도로를 달려 아버지를 찾아 어두운 밤 속에 아버지를 만났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몇 시간 있다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나는 처음 아버지를 응급실에서 만나고 돌아가던 길이 생각났다. 그 때 보다 더 깊은, 더 진한 어둠의 터널을 지나갔다.


아버지가 더 어려워지자 나는 이불과 베개를 가지고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DNR, Do Not Resuscitate, 연명치료거절에 대한 서명을 했다. 병원에서 먼저 말하고,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이었다. 어린 딸이 좋아하는 병원 바닥의 노란색, 보라색, 녹색 가이드 선을 지나, 아버지의 병동을 찾아가는 걸음은 어려웠다. 살아있는 아버지의 죽음에 서명하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서명을 하고 아버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대로 호스피스로 가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또다시 끝없는 기다림과 허무한 처방뿐이라도 다시 응급실로 가보기로 했다.


새벽,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자리도 없이 복도에서 아버지를 뉘이고 기다렸던 다른 새벽들보다는 조금 빠르게 병실에 자리를 얻었다. 다만 그뿐, 끝없는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숨을 거칠게 쉬었고, 그 바람에 입이 바싹 말라있었다. CT를 찍기 위해 물포함 금식이던 아버지에게 거즈로 물을 축여 입을 닦아 드렸다. 물을 많이 축여 아버지의 입에 물이 꿀꺽꿀꺽 들어가게 했다. 거의 의식이 없는 아버지는 물을 마시자 잠시 초점이 돌아왔다. 나는 새로운 거즈를 구해 아버지에게 한번 더 입을 축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한 다섯 시간쯤 걸려 CT를 찍었다. 그리고는 또 한참을 그저 기다리기만 할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역시 대학병원은 오래 걸리네요. 뭐가 어떻게 되기야 하겠죠.'라고 간추려 아버지에게 말했다. 시간은 점심때가 다가왔고, 아무래도 모든 것은 오래 걸릴 모양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잠시 두고 지하 편의점으로 내려가 도시락을 하나 샀다. 이제 막 먹으려는데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보호자 분이 올라와야 할 것 같다는 전화였다. 나는 먹으려던 도시락을 버리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무도 다급하게 나를 찾지 않았지만 달려갔다. 응급실에 도착해 아버지의 침상을 찾자 의사가 말했다.


"2023년 12월 5일, 오전 11시 55 분부로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거즈를 생각했다. 한번 더 아버지의 입을 적셔드리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뒤늦게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조금 전까지 거친 숨을 몰아쉬던 아버지의 온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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