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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Apr 03. 2024

놓이는 순간

회상1

한여름이었다.


그날의 일은, 아마도 내가 그렇게 잘 기억하고 있다면 당사자들은 놀랄 테지만, 한장 한장의 사진처럼 아주 선명하게 남아져있다. 나는 그때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한참 뒤까지 그 날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했지만 내 안에 무언가가 분명히 뭔가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살 던 나는 마당이 넓고 집은 작은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고 천정이 아주 낮고 파리가 많은 방에서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나는 그 전에도 심심치 않게 방문했을 많은 순간들 중에 유일하게 그 날의 기억이 남아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때까지 난 그저 누나와 함께 잠시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집을 찾았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의 그 순간만큼은 정지된 사진처럼, 아니 아이폰의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몇 프레임의 동영상처럼 남아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가 가진 기억은 매일같이 착실히 하루 하루를 세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열밤. 매일 하루 씩을 열에서 빼며 서울에 돌아갈 날을 세었고, 그 결과를 할머니에게 빼놓지 않고 말해두었다. 아홉밤, 여덟밤, 일곱밤, 여섯밤, 정확히 열밤 뒤에 서울에 가야 한다는 철없는 손자의 얘기를 매일 같이 들었을 할머니의 마음이 어떻게 무너졌을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열밤이 다 지났을 때, 내가 어떤 식으로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이해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만이 나에게 사진처럼 남아있는 것은, 내 삶이 더 이상이 같을 수 없음을,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떨어졌음을,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 80년대 생년월일을 가지고, 90년대의 풍요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IMF 이후에 또 각자의 사정을 가지게 되고, 입시 고민과 예전같지 않다는 대학생활을 보내는, 내 주변에 가득가득한 그 들과는 영원히 같아질 수 없는 곳에 놓이는 순간이었음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직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사는 부모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입시 고민을 했고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는 대학생활을 보냈고, 항상 심각하다는 취업난을 거쳐 그나마의 취업을 하고 몇 푼 월급을 처음받고 기뻐하고 그 돈으로 고기도 사먹고 했으니깐 말이다. 엄마가 없다는 말은, 크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굳이 숨겨야 할 이유도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느껴지는 아주 잠시의 어색함.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자연스럽게 뭐 그럴 수도 있는거지. 라는 반응이 나오기까지, 그 작은 침묵을 경험하기 싫어 굳이 꺼내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만큼 나는 내 또래,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들과 영원히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내 키가 채 1m가 안되는 때에, 누나는 나보다도 더 작았을 때에 나는 내가 알던 세상과는 다른 곳에 떨어졌고, 그 뒤로는 다시는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누나가 떠나는 순간이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는 여름방학이 끝나 학교에 가기 위해 고모네집에 갔다. 누나가 떠나는 길에 나는 시골집 앞 우물가까지 나가 크게 울었다. 그보다 더 울은 날은 없었다. 그날은 밤까지 울었다. 집에서는 크게 울지 않고 섧게 울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낮에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마당은 넓고 집은 작은 집에서,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없고, 또 유치원도 없고, 놀어터도 없고, 또래 다른 아이도 없는 곳에서 하루종일 무엇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울었다. 울지 말라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에, 나는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엄마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다고 믿었던 나는 자는 방법을 까먹었다.

'잠을 어떻게 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잠을 잘 줄 모르는 나는 크게 울지는 않고 매일 울었다. 왜 우는지는 모르고 계속 울기만 했다. 그런 나를 할아버지는 달래느라 라디오에 트로트도 켜주고 뉴스도 들려주고 하다가 울기를 그치자 않으면 화를 내며 일어나 앉았다. 나는 계속 울고 어두운 방에 속상한 할아버지가 빨간 불빛을 내며 담배를 피우면 나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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